▲버스운전
정누리
첫 장내 교육 날. 혼자 쭈뼛거리며 서 있다. 내가 몰 버스가 저 멀리서 온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여자라고 무시하면 어쩌지?', '다리 짧아서 페달 못 밟는 것 아냐?', '스틱 운전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러는 사이 노란 버스 한 대가 선다.
눈 앞에 있으니 세 배는 크다. '내가 이걸 몬다고?' 떡두꺼비처럼 생긴 강사님이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계단을 밟고 자연스레 승객석으로 향한다. "에헤이. 어디 가. 운전석에 앉아야지." 아, 이제야 실감 난다. 내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운전석에 앉으니 헛웃음이 난다. 핸들이 무슨 훌라후프만 하냐? 기어도 꼭 대형 면봉 같다. 시야는 어릴 적 아빠가 업어주던 그 높이다. 승용차에서 못 보던 것들이 훤히 보인다. 조금은 무섭다. 1시간 동안 기어 바꾸는 연습만 한다. 1월인데 땀이 뻘뻘 난다. 어깨뼈가 나갈 것 같다.
"자, 이제 주행해 볼 건데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요. 운전해 봤다고 자만하지 말고. 자기 버릇대로 하면 연석 밟는 거야. 저기 가드레일에 묻은 노란색 페인트 보이죠? 저번주에 수강생이 박은 거야."
강사의 말에 울상을 지으며 핸들을 꽉 잡았다. 그는 내가 경직되어 보였는지 이어서, "여자라고 못 하는 거 아니예요. 저번 주에도 화물 회사 다니는 아가씨 2명 1종 대형 합격했어. 연봉 더 올려준다고." 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사람은 배짱이 있어야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미사키가 어디 표정 한번 흔들리던? 후진은 없다.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왼쪽 사이드 브레이크 내리고. 그래요. 조이스틱처럼 생긴 거. 자, 브레이크 떼고. 클러치로 천천히. 자, 가자."
버스가 거대한 굉음을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따로 노는 팔다리를 상하좌우로 어색하게 움직인다. 장내에서 함께 돌고 있는 2종 승용차들을 내려다본다. 장난감같다. 나도 5년 전엔 저 차를 타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곳에서 제일 큰 차를 몰고 있다. 세상은 모를 일이다.
오르막, 굴절, S자, T자, 평행주차, 가속까지 마치고 나니 확실히 자신감이 붙는다. 큰 차가 주는 파워가 있다. 슬슬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함께 동행한 강사님도 초반보다 훨씬 누그러워진다.
수업이 반복되자, 갑자기 승객석에 앉아 있던 강사님이 자기 얘기를 늘어놓는다. 이 학원에서 자기가 직원들을 관리하는데, 이맘때만 되면 계약직과 정규직의 갈등이 심해진단다. 여간 피곤한 게 아니란다. 또 저번 주에 합격한 수강생 중엔 은행장이 계셨단다. 은행이 정년퇴직이 빨라서 제2의 인생을 찾기 위해 1종 대형을 따셨단다. 아, 그렇군요. 난 핸들을 돌리는 데 열중하며 대충 맞장구를 친다.
이런 광경 왠지 익숙하다. 학교 다닐 때 마을버스에서 본 장면이다. 항상 기사 뒤 승객석에 앉아 자기 얘기를 늘어놓으시던 할아버지. 귀찮은 내색 없이 맞장구를 쳐주시는 기사님. 할아버지는 정류장이 다가오면 후련한 얼굴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기사님도 흔쾌히 손을 흔들어 준다. 버스는 승객이 남긴 잡념을 싣고 떠난다. 이동하는 상담소.
모두가 혀를 내두른 내 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