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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빠져 '농놀' 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장동건, 손지창의 1994년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보다

등록 2023.02.15 17:04수정 2023.02.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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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잡지나 이미 수명이 다 한 물건, 잊힌 사람들을 찾아 넋 놓고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궁금하고, 궁금해서 찾아볼 수밖에 없는 사람의 '이상한 구경기'를 시작합니다.[편집자말]
1994년 2월 1일 경향신문의 '드라마 <마지막승부>, <농구대잔치> 여파 청소년 농구열풍'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 같은 농구 신드롬은 SBS가 방영하는 NBA농구와 농구경기를 소재로 한 일본만화 <슬램덩크>, 그리고 <마지막 승부>로 이어지면서 열기를 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청소년들이 학원도 빠졌다고 하니,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기점으로 <슬램덩크> 덕질이 풍부해지는 지금 <마지막 승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농놀('농구놀이'의 준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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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모은 슬램덩크 관련 물건들 ⓒ 황소연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슬램덩크>에 빠졌고, 영화 4차 관람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리마스터링된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는 점과 전권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챔프> 슬램덩크 특별판으로 대강의 줄거리를 익혔음을 밝힌다. 오래된 <슬램덩크> 덕후는 아니지만, <슬램덩크>의 여운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농놀' 친구로서 <마지막 승부> 속 농구를 소개해본다.

드라마 삽입곡 '마지막 승부'의 마법

사실 처음부터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가 겹쳐보였던 건 아니다. 옛날드라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마지막 승부>는 문턱이 있었다. 스포츠를 다룬 작품도 잘 안 보는데, 1994년에 방영한 농구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승부>를 정주행 했다. 그리고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집에 가는 길에 김민교가 부른 '마지막 승부'를 찾아들었다(곡의 표절 여부 및 이후 벌어진 해프닝은 이 글에서는 생략해야 할 것 같다).

'힘이 들면 그대로 멈춰 눈물 흘려도 좋아, 이제 시작이란 마음만은 잊지 마, 내 전부를 거는 거야, 모든 순간을 위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강렬한 사운드트랙만큼이나 북산의 모든 멤버에게 어울리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N회차' 관객들에겐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두근거림이 차오르는 귀갓길에 '마지막 승부'를 들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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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 속 경기 시작 후 선수들의 모습 ⓒ MBC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곡인만큼, 드라마는 OST를 십분 활용한다. 농구부원들이 학교에서 연습 할 때도, 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기합으로 운동장을 몇 바퀴나 뛸 때도, 한 회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마지막 승부'의 도전적인 인트로는 그 장면을 뮤직비디오로 만든다.


피아노 등 다른 악기로 연주하거나 BPM에 변화를 주어 구슬픈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질리지 않는다. 장면 곳곳에서 OST의 흔적을 찾는 것도 드라마를 감상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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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의 한 장면 ⓒ MBC


농구가 하고 싶어요

시원시원한 OST가 주는 첫인상과 달리, <마지막 승부>는 적극적으로 인물들의 비극을 그린다.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한 가지는 철준(장동건)이 속한 한영대학교와 동민(손지창)이 속한 명성대학교 간 대결구도다.

과거의 어떤 일로 농구를 하지 못하게 된 철준과 성인이 되어서까지 농구를 하는 동민은 드라마 내내 비교된다. 두 인물의 '인생 그래프'가 드디어 교차하는 때는 바로 철준이 한영대 농구부를 찾아가 "농구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수많은 경기에서 고전하던 한영대 농구부는 이 때를 기점으로 활력을 되찾는다. 여기에, 역시 과거의 어떤 일로 앙숙이 된 선재(이종원)와 철준의 관계도 개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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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킹받지만(열받지만) 당시엔 각광받았을 <마지막 승부> 속 동민의 포즈 ⓒ MBC


승자가 불 보듯 뻔했던 가을농구 대학 리그가 재밌어질 타이밍인데, 안타깝게도 이 생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난 그렇게 훌륭한 선수가 아냐. 4년 내내 벤치에서 지낼지도 몰라." 오랜만에 농구공을 잡은 철준의 자조와 달리 문제는 실력이 아니다. 한영대 농구부는 어떤 사건으로 출전정지라는 수모를 겪는다. 그 여파로 농구부가 해체되고, 철준은 크게 좌절한다.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게 원래 이렇지 뭐. 내가 뭘 하려고 한 게 잘못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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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 속 철준(장동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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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 속 동민(손지창) ⓒ MBC


'제0감각'이 말해, 이젠 농구뿐이라고...

농구부 해체 후 철준은 건설현장에서, 선재는 어둠의 조직과 연결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다른 부원들은 당구장 등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좋아하던 농구로 한 번 이상 아픔을 겼었다. 특히 농구로 여러 번 삶의 경로가 바뀐 철준과 선재는 그 두려움으로 농구부 재창단을 하자는 동료들의 설득에도 코트로 쉽게 복귀하지 못한다.

다시 정주행을 하는 동안 이 부분에서 자꾸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정대만과 송태섭이 떠올랐다. 하지만 청춘들은, 적어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농구뿐이다. 어렵게 농구부를 다시 꾸리는 과정이 중요하게 그려지고, 해체 후 공백기동안 체력은 물론 멘탈 관리도 안 되어있는 한영대 농구부는 전지훈련으로 각오를 다진다.

드라마는 이렇게 농구 경기 자체보다는 경기를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 농구가 너무 그립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슬픔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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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의 한 장면 ⓒ MBC


이후 방황하던 이들은 농구라는 구심점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일상의 루틴을 되찾는다. 총 16회차 드라마에서 12회에 와서야 한영대 농구부가 부활하는데, 고된 훈련을 마친 부원들은 머리까지 짧게 자른 채다. 드라마의 대단원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남은 5회 안에서 운명의 역전을 하는 건 가능할까? 그건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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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의 한 장면 ⓒ MBC


물론 드라마를 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선재와 철준, 그리고 한영대 농구부는 운이 없다. 이들은 할 수 있는 게 농구뿐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농구가(사실은 운명이) 자신의 노력을 배반한다고 느낄 때 크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부원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훈련으로 맞선다. 약한 팀에 마음이 가는 이들이라면, 스토리에 이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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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의 한 장면 ⓒ MBC


사실 <마지막 승부>는 <슬램덩크>와 달리 의외로(?) 농구 지식을 얻기도 어렵고, 장르 특성상 경기가 다양한 각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농구공에도 사이즈가 여러 개 있다는 걸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덕질을 통해 알게 됐듯, <마지막 승부> 속 동민이 <슬램덩크> 속 해남의 홍익현처럼 고글을 쓰고 경기한다는 걸 발견했듯 농구 팬이라면 자신만의 '이스터에그'를 찾을 수 있다.

또, 삶의 한때 농구가 너무나도 절실했던 사람들이 나온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원작 <슬램덩크>로 그 절실함에 공감했다면 <마지막 승부>는 분명 흥미로운 작품일 것이다. 한영대 농구부 감독은 다시 코트에 입성한 선수들을 이렇게 격려한다.

"우리가 다시 여기 서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잊지 말자.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 우리한텐 이게 시작이야."

마지막이기도, 시작이기도 한 승부의 표정을 <슬램덩크>로 배운 이들에게 <마지막 승부>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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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의 한 장면 ⓒ MBC

#슬램덩크 #슬덩 #이노우에타케히코 #마지막승부 #더퍼스트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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