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산정정자 마루에서 바라본 풍광이다. 멀리 서성 적벽이 보인다. 앞에 자리 잡은 대문만 없다면 눈 맛은 훨씬 좋을 텐데. 아쉽다.
김재근
지금은 환수(環水)정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1965년, 산에 물을 더했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서성제(瑞城堤, 서성저수지)를 쌓았다. 벼랑은 잠기고 호젓한 호숫가 물 위에 뜬 듯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계곡가 절벽은 섬이 되어 옛 풍광은 상상 속에 어렴풋하다.
정자의 이름에서 무인(武人)에 가까운 단순명쾌한 멋이 느껴진다. 대개 정자나 건물 이름은 유교경전이나 고사(故事)에서 따왔다. 이곳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보이는 건 산 뿐이다. 환산(環山)이다.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 첫 구절에서 가져왔다. 취옹은 그의 호이고, 저주(滁州) 태수로 있을 때 지었다. 오래도록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기행문이다.
環滁皆山也(환저개산야) : 저주(滁州) 지방은 모두 산으로 에워싸져 있노라.
其西南諸峰(기서남제봉) : 그중에서도 서남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는
林壑尤美(임학우미) : 숲과 계곡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望之蔚然而深秀者(망지울연이심수자) : 멀리서 바라보아 울울창창 그윽하고 빼어난 것이
瑯王耶也(낭왕야야) : 바로 곧 낭야산(琅琊山)이라 하노라
이 글에서 유래한 술자리 낭만이 있다. 각 구절은 대개 야(也)로 끝난다. 여기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술잔을 들고 "취옹의 뜻은 술잔에 있지 않노라"라고 건배사를 한다. 모든 사람이 묻는다. "그럼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를 지목하며 "그대에게 있노라"라고 하면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신다. 멋진 흥취다.
환산정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가자. 그리곤 건물엔 눈길 주지 말고 풍광에 취해 보자. 정자에 눈 밝은 분이라면, 멋드러진 풍광까지 곁들인 옛 건물이 그 흔한 지방문화재도 아니고, 고작 향토 문화유산밖에 되지 못한 까닭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후손의 욕심이 과해 크게 화려하게 고쳐 지으며 본래의 멋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풍광은 진경이다. 산에 물을 더하였으니 류함도 놀랄 게다. 알프스 호숫가 닮은 호젓한 경치, 화순 이서 적벽 못지않은 서성 절벽, 산정호수 푸른 물에 뜬 섬... 전남도에서 남도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월별·계절별로 가기 좋은 으뜸숲 12곳을 선정했다. 4월이 이곳 원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