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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선정 '4월의 으뜸숲' 환산정 원림의 풍광, 진경이다

화순군 관광개발도 중요하지만 본래의 풍광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

등록 2023.02.19 11:21수정 2023.02.1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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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정 정면에 있는 대문이 어울리지 않는다. 없으면 더 멋진 모습일 듯하다. ⓒ 김재근


멀리서 벗이 왔다. 맛집을 찾아 멋들어진 식사를 하고 분위기 빼어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옛 시절엔 어땠을까.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밥상을 마주하고 정자에 올라 술잔을 부딪쳤으리라.

요즘엔 맛집 멋집을 많이 알고 있으면 되지만, 옛날엔 정자 하나쯤 있으면 나름 자랑이었을 것이다. 없는 시간 쪼개 맛스럽고 멋스러운 집 찾듯이 옛 어른들은 방귀라도 조금 뀐다 싶으면 정자를 지었다. 시절 따라 노는 방법이 달랐다고나 할까.


환산정, 전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 한국의 알프스라는 무등산 남쪽 큰재 아래 깊숙이 숨어 있다.

조선 인조(仁祖) 때 백천 류함(百泉 柳涵)이 지은 정자다.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청주(淸州)까지 보무도 당당히 올라갔다. 왕이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순으로 돌아와 은거했다.

깊은 산 계곡 옆 벼랑 위에 방 한 칸의 아담한 초정(草亭) 한 채 짓고 뜰에 소나무 심고 국화 가꾸며 환산정이라 현판 걸었다. 정자를 지을 당시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 곁 벼랑 위였다. 봄엔 마주한 절벽에 산벚나무꽃 환장하게 흐드러지고, 여름엔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리며, 가을엔 계곡 따라 자리한 다랑논에 노란 물결 출렁이고, 겨울엔 천지사방 하얀 눈 가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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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정 정자 마루에서 바라본 풍광이다. 멀리 서성 적벽이 보인다. 앞에 자리 잡은 대문만 없다면 눈 맛은 훨씬 좋을 텐데. 아쉽다. ⓒ 김재근

  
지금은 환수(環水)정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1965년, 산에 물을 더했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서성제(瑞城堤, 서성저수지)를 쌓았다. 벼랑은 잠기고 호젓한 호숫가 물 위에 뜬 듯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계곡가 절벽은 섬이 되어 옛 풍광은 상상 속에 어렴풋하다.

정자의 이름에서 무인(武人)에 가까운 단순명쾌한 멋이 느껴진다. 대개 정자나 건물 이름은 유교경전이나 고사(故事)에서 따왔다. 이곳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보이는 건 산 뿐이다. 환산(環山)이다.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 첫 구절에서 가져왔다. 취옹은 그의 호이고, 저주(滁州) 태수로 있을 때 지었다. 오래도록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기행문이다.


環滁皆山也(환저개산야) : 저주(滁州) 지방은 모두 산으로 에워싸져 있노라.
其西南諸峰(기서남제봉) : 그중에서도 서남쪽에 있는 여러 봉우리는
林壑尤美(임학우미) : 숲과 계곡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望之蔚然而深秀者(망지울연이심수자) : 멀리서 바라보아 울울창창 그윽하고 빼어난 것이
瑯王耶也(낭왕야야) : 바로 곧 낭야산(琅琊山)이라 하노라


이 글에서 유래한 술자리 낭만이 있다. 각 구절은 대개 야(也)로 끝난다. 여기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술잔을 들고 "취옹의 뜻은 술잔에 있지 않노라"라고 건배사를 한다. 모든 사람이 묻는다. "그럼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를 지목하며 "그대에게 있노라"라고 하면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신다. 멋진 흥취다.

환산정엔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가자. 그리곤 건물엔 눈길 주지 말고 풍광에 취해 보자. 정자에 눈 밝은 분이라면, 멋드러진 풍광까지 곁들인 옛 건물이 그 흔한 지방문화재도 아니고, 고작 향토 문화유산밖에 되지 못한 까닭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후손의 욕심이 과해 크게 화려하게 고쳐 지으며 본래의 멋을 잃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풍광은 진경이다. 산에 물을 더하였으니 류함도 놀랄 게다. 알프스 호숫가 닮은 호젓한 경치, 화순 이서 적벽 못지않은 서성 절벽, 산정호수 푸른 물에 뜬 섬... 전남도에서 남도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월별·계절별로 가기 좋은 으뜸숲 12곳을 선정했다. 4월이 이곳 원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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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 적벽 물에 잠긴 서성 적벽의 모습이다. 1965년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 사진 좌측으로 환산정이, 오른쪽으로 서성제 둑이 있다. ⓒ 김재근

  
이 풍광도 많이 변할 듯하다. 화순군이 대대적으로 개발한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50억 원이 들어가는 큰 공사다. 야간 조명을 밝히고, 산책로를 개설하고, 전망대를 설치하고, 출렁다리도 놓는다.

새로운 지역 명소가 탄생할 것이라고 널리 홍보했다. 민박 이용객도, 농산물 판매도 늘어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거라는 장밋빛 예측도 하였다. 과문(寡聞)해서인지 쉽게 이해는 되지 않는다. 농산물 판매 증가야 관광객이 늘어나니 일리가 있겠다 싶지만서도, 체류형 관광 개발도 아닌데 민박 이용객은 어떻게 늘어나는지 자못 궁금하다.

류함 선생이 놀랄지도 모르겠다. 서성제 저수지로 산에 물을 더하였는데, 다시 이런저런 시설이 보태지니. 각자 취향의 문제인지라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공사가 시작되면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더 이상 볼 수는 없다. 이번 봄이 한국의 알프스라는 원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니 아쉽다. 훗날 지난 풍광을 그리워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 실립니다. 네이버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쿰파니스 #환산정 #서성적벽 #화순여행 #서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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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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