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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수선 베테랑도 물가 앞에... "설 쇠고 손님 줄어"

한때 잘나가던 수선집, 여수 서시장 '단비네'도 힘든 요즘

등록 2023.02.21 09:47수정 2023.02.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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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서시장 옷수선 가게 단비네 조용심 대표가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고 있다. ⓒ 조찬현


"여럽게 시에서 붙여줬어요. 특별히 잘한 건 없는데, 열심히 하라고 이름(간판)을 붙여줬어요."


15일 여수 서교동 옷수선 가게에서 만난 조용심 대표는 여럽게(부끄럽게) 여수시와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공동으로 지난해 '수선 잘하는 집' 인증 간판을 자신의 가게에 붙여주었다고 했다.

서시장에서 20년째 수선집 하는 단비네

여수 서시장 옷 수선집 단비네다. 이곳 수선집은 13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여수 서시장 떡집 골목길의 비좁은 길 중간쯤에 있다. 한두 번쯤 이곳에 와봤던 이들도 쉬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서시장 안쪽 골목은 엇비슷하다. 하여 단비네를 찾으려면 여수 떡집을 기억해야 한다. 떡집 바로 곁에 수선집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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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와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공동으로 인정한 ‘수선 잘하는 집’ 인증 간판이다. ⓒ 조찬현


이곳 서시장에는 수많은 다양한 업종의 점포들이 입점해있다.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정겨움이 가득한 곳이다. 이제는 우리 곁에서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시장의 원형이 오롯하다. 볼거리 먹거리도 많아 시장 구경하면서 거닐다 보면 불편함마저 오히려 작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단비네는 20년째 이곳 서시장에서 수선집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어려운 살림살이 탓에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했다. 그때 나이 열다섯, 한창 공부할 나이에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10년간 서울 세운상가 마리아 의상실에서 허드렛일 하며 등 너머로 바느질을 배웠다. 재봉틀 다루는 일까지 다 배운 후 여수 연등동의 집으로 돌아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남편, 불의의 사고 당해


이후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녀 역시 25세에 결혼해서 아들딸(1남 2녀) 낳고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냥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하는 일 열심히 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의 소박한 꿈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슬퍼하고 좌절할 겨를도 없이 결혼 이후 한동안 잊고 살았던 재봉틀을 다시 돌려야만 했다. 옷 수선을 시작으로 이불, 커튼, 홈 패션 등 재봉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했다. 아마도 가정용 직물제품은 모두 다 취급하는듯 싶었다.

한 두어 평 남짓 되는 가게 안에는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직물제품들이 가득 쌓여있다. 아침 8시에 시작한 일은 오후 6시까지 날마다 이어진다.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은 쉬고, 둘째 넷째 주 휴일에는 교회 갔다 와서 오후 일을 한다.

봄이 오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

지금껏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한 덕에 한때 여수에서 잘나가던 수선집이었다. 그런 '단비네'도 요즘은 힘들다고 한다. 구정 설날 이후로 매출이 반 토막이 되었다. 아니 그 이하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제껏 하루도 쉼 없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나마 원단 집에서 가져다준 옥매트와 돌소파용 커버가 있어 숨통이 트인다. 계절이 바뀌어 따듯한 봄이 오길 기다린다. 봄 행락철이 오면 옷가게와 수선집들의 사정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했다. 지금은 가장 어중간할 시기라면서.

이곳 수선집 또한 물가의 파고는 비켜 가기 어려운 법.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수선비 가격이 일부 올랐다. 바지 기장이 2천 원에서 3천 원으로 인상되었다. 자크 다는 건 옷 종류에 따라서 3천 원에서 5천 원 남짓이다. 잠바 자크는 7천 원이다. 그리고 허리 폭 맞추는 것은 옷에 따라 5천 원에서 8천 원을 받는다.

"바느질 이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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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서교동에서 옷 고치러 왔다는 김순애 어머니 일행이다. ⓒ 조찬현


그녀는 바느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인생을 꿰매는 거지, 버릴 거 버리고, 잘라 내고"라며 "이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원동력"이라고. 가장 힘든 건 자신은 옷을 예쁘게 수선했다고 생각했는데, 손님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속상하다고 했다.

"그런 거 같아요. 내가 만들어서 내가 만족하면 손님도 만족해하셔요. 이거 좀 안 좋다 그러면 그분도 그래요, 내가 입는다 생각하고 일하면 깔끔하게 나와요. 이거 찜찜한데 그러면 그분도 역시나 똑같은 마음이에요. 손님이 예쁘게 입어주고 좋아하시면 나도 좋은데, 뭔가 내가 찜찜하면 그분도 그럴 거예요.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몇 번이고 다시 고쳐 드리죠."

이어 "요즘에는 손님이 너무 없어요, 여기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요"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기가 살아나야 사람들이 옷도 사고, 물건도 사지"라며 한숨이다. 하루빨리 여수 서시장에 활기가 넘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요즘에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며, 재래시장을 찾기보다는 홈쇼핑과 인터넷에서 옷 주문하는 것도 재래시장 침체의 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모든 가게가 다 어려워요, 옷가게도 어렵고. 옷가게에 손님이 많아야 수선이 많은데, 수선하러 오는 손님도 드물어요. 근데 우리는 홈패션이라도 하니까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데, 옷 수선은 요새 없어요. 설 쇠고 손님이 3분의 2가 줄었어요. 거의 없어요. 전체적으로 흐름이 그런 거 같아요."

끝으로 소망을 묻자 "하는 일 그냥 열심히 하고, 남한테 베풀 수 있는 능력만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 만난 여수 서교동에서 옷 고치러 왔다는 김순애 어머니는 "단비네 엄마 굉장히 친절하세요, 또 믿음이 가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여수 서시장 #옷수선가게 단비네 #재봉틀 #옷수선집 #미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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