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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에 '누칼협' 조롱... 이런 곳에선 누구도 못 버틴다

[다시는 다음 소희가 없는 ②] 끊임없이 청년을 '갈아치우는' 사회... '다음 소희'는 현재진행형

등록 2023.02.20 21:33수정 2023.02.2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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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배두나·김시은 주연)는 2017년 LGU+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으로 일하다가 사망한 고 홍수연씨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도의 문제와 실적 중심의 노동현장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지 잘 보여줍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많은 사람들이 <다음 소희>를 통해 실업계 교육현장과 콜센터 노동현장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관련 글을 3회 연재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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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최근 꽤 충격적인 단어를 접했다. '누칼협?'이라는 인터넷 용어로,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이다. 누가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에 대해 가타부타 변명하지 말라고 조롱하는 것이다. 개인이 맞닥뜨린 결과를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과 의지의 산물로 본다. '사회적'인 것이 완전히 제거됐다. 무한경쟁과 능력주의라는 시대정신을 적절하게 반영한 말이다.

영화 <다음, 소희>는 콜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산재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다. 2017년 산재로 사망한 LGU+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두 시간짜리 영상에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집약돼 있었다. 경쟁과 성과 위주의 시스템, 노동자를 쉽게 쓰고 버리는 행태. 이것을 사회에 진입하자마자 맞닥뜨리는 청년들의 현실을 짚었다.

누구를 위한 노동인가

주인공 소희(김시은 분)는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댄스모임을 하고, 늦은 밤까지도 혼자 춤 연습을 한다. 특성화고등학교 '애완동물관리과'에 다니고 있기도 하다. 어느 날 선생은 좋은 '대기업' 하청 실습 자리가 생겼다며 해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통신사 콜센터다. 좋아하는 춤과도 배우는 애완동물관리와도 무관하다.

그 콜센터는 대부분 소희와 같은 현장실습생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폭언과 욕설, 성희롱을 감내하며, 감정을 추스를 시간 없이 바로 다음 콜을 받는다.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위로 한마디 전할 시간도 없다. 이런 일들을 겪은 소희에게 선생은 '우리 반이 (취업률) 바닥을 찍으면 안 된다'며, 잘 버티라고 당부한다.

특성화고란 "특정분야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로서,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학교"(전라북도교육청 홈페이지)라고 한다. 사실 특성화고뿐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흔히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정말 우리는 잘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일을 하고 있나?

점점 현실적인 꿈을 꾸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서 내가 잘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내가 해야 할 것으로. 획일화된 성공 기준과 평가 방식에서 우리들은 자유롭지 않다.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그래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임금을 적게 줘도 참고 일한다.


나는 없고 성과만 남은

소희는 '해지 방어팀'에서 고객이 서비스를 해지하지 못하도록 회유한다. 고객이 흐느끼며 해지를 부탁해도 방어해야 한다. 그래야 실적이 오른다. 당일 '콜 수'를 못 채우면 야근해서라도 채워야 한다. 실적은 소희의 임금, 팀장의 임금, 하청업체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사무실 정면에서 끊임없이 실적을 압박하는 대문짝만한 실적표가 학교와 교육청에도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학교 선생은 학생들을 최대한 많이 취업시켜야 교장에게 질책을 안 듣는다. 학교는 취업률이 높아야 교육청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는다. 각 지방 교육청 또한 관할 학교들의 취업률에 따라 교육부로부터 평가받는다.

이러한 익숙한 풍경은 학교에서부터 일터까지 이어진다. 개인은 획일화된 경쟁 속에서 최대한으로 노력해 사회가 원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정말 남는 건 무엇인가? 소희에게 일을 가르쳐준 팀장은 내부 고발장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소희는 왠지 모르게 큰 죄책감을 느낀다. 경쟁이 휩쓸고 간 몸과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너덜너덜하다.

인센티브가 아닌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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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 이미지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팀장의 죽음 이후 소희는 실적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부당한 현실을 뒤로하고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월급 120만 원 언저리였다. 회사가 현장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인센티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670명 입사하면 627명이 퇴사'할 정도로, 애초에 회사에게 현장실습생은 저임금으로 쓰다가 버리면 되는 인력이었다. 인센티브라는 미끼로 학생들을 착취하고 우롱한 것이다. 너희의 임금은 너희의 성과에 달려있다는 '공정한' 경쟁주의의 원칙마저 무너졌다.

2022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실제 청년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라 한다(참고 :  홍지유, "청년 3명 중 1명, 첫 직장은 '비정규직'…졸업~취업 11개월 걸린다", 중앙일보). 같은 해 한국노동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와 같은 단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참고 : 김미영, "생계형 알바 2030 청년 '10년간 두 배 증가'", 매일노동뉴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주휴수당과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아도, 해고되거나 불편해질까 봐 말을 꺼내기는 어렵다. 원래 그런가보다 넘어가는 일들도 허다하다. 청년들에게 첫 일터는 힘들어도 잠시 버티는 곳, 더 성공해서 벗어나야 할 곳이 되어있다.

현장실습생, 인턴, 알바 등 언제까지 청년들의 노동은 쉽게 갈아치워도 되는 것, 돈 몇 푼 줘도 되는 것이어야 하나? 노동시장 진입 단계에서는 더욱더 권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온전한 보장이 강조돼야 한다.

소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측 직원과 교장 등이 하는 소리는 한결같다. '원래 문제가 있는 애 아니냐?' 소희의 죽음을 추적한 형사(배두나)는 대답한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누구라도 죽을 수밖에 없다'.

소희는 누군가의 다음이었고, 소희의 다음은 현재 진행 중이다.

[관련 기사] 
① "이게 학교입니까? 인력파견소지"... 한국의 현실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주영씨는 청년활동가입니다. 스튜디오 알, 노조법 2,3조개정운동본부, 권리찾기유니온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음소희 #현장실습생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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