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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암약 용공세력이"... 진실과 화해에 어울립니까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이제봉 진실화해위원 선출안 부결... 더 큰 문제는 '추천'에 있었다

등록 2023.02.27 22:01수정 2023.02.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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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는 24일 본회의에서 2기 진실화해위 위원 7명 선출안을 표결에 부쳐 이 중 6명을 선출했으나, 국민의힘 추천 인사 1명이 부결됐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고성으로 항의하는 한편 일부는 본회의장을 퇴장했고, 이 여파로 본회의가 법안 60여건 표결을 앞두고 정회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은 정회 뒤 회의 속개를 기다리는 야당 의원들.
국회는 24일 본회의에서 2기 진실화해위 위원 7명 선출안을 표결에 부쳐 이 중 6명을 선출했으나, 국민의힘 추천 인사 1명이 부결됐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고성으로 항의하는 한편 일부는 본회의장을 퇴장했고, 이 여파로 본회의가 법안 60여건 표결을 앞두고 정회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은 정회 뒤 회의 속개를 기다리는 야당 의원들.연합뉴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 선출을 위한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정부 여당이 역정을 냈다. 여당 추천으로 올라온 이제봉 울산대 교육학과 교수 선출안이 부결된 일을 두고서다. 재석 의원 269명 중 147명이 반대를, 114명이 찬성, 8명이 기권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제4조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1명과 국회가 선출하는 8명을 포함한 총 9명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9명 중 3명은 상임위원이 된다고 규정했다. 또 국회 선출 8명 중에서 4명은 여당, 나머지 4명은 야당이 추천하도록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날선 반응과 함께 본회의장에서 퇴장한 뒤 민주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권성동 의원의 말처럼 "여야가 서로 추천한 사람에 대해 동의해주는 게 관행이고 묵시적 합의"인데 민주당을 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표결이 아니라 '추천'이 문제다
 
 2022년 9월 19일 <뉴데일리>에 실린 [이제봉 칼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
2022년 9월 19일 <뉴데일리>에 실린 [이제봉 칼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 뉴데일리 보도 갈무리
 
그러나 이제봉 교수의 글과 강의를 살펴보면 '국회 표결'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추천'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9월 19일자 <뉴데일리> '[이제봉 칼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주사파나 종북·좌경으로 몰아세우던 냉전주의적 사고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 교수는 기고문에서 "대한민국에 암약하고 있는 좌파·용공 세력들이 김일성주의자, 주사파들"이라며 "문제는 이들이 DJ, 노무현 정권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리고 암암리에 침투되어 공작을 펼쳤던 반면, 문재인 정권에서는 주도세력이 되어 대한민국 해체를 과감하게 기획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규명해야 할 대상 중 하나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을 규정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한 권위주의 시대의 부조리를 규명하려면, 그 시절의 이념적 기초인 냉전주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냉전 사고에 갇혀서야 어떻게 국가폭력과 국가범죄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겠나.
  
필자는 이제봉 교수의 과거 발언을 좇던 중 사실과 동떨어진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했음을 확인했다. 그는 2022년 6월 5일과 7일 유튜브 채널에 '친일파로 채워진 김일성 정권' '독립운동가로 구성된 대한민국 초대 내각'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에서 그는 '북한 초대 내각은 친일 내각이고, 남한 초대 내각은 독립군 내각'이라며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것이고 북한은 항일투쟁가가 세웠다는 이야기들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완전히 날조된 왜곡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인식을 따라가면 남한에선 '친일청산'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948년 내각에 독립운동가들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면 다양한 세력이 이 내각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공산주의자 조봉암이 농림부장관이 되고 노동운동가 전진한이 사회부장관이 된 것도 그런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친일파 정당인 한국민주당(한민당)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권력배분 문제 때문에 갈라선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한민당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입각시켜 한민당에 대항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48년 내각은 '다양한 성향을 가졌으되 이승만과 가깝거나 이승만을 위협하지 않을 사람들'로 채워졌다. 1997년에 <이화사학연구> 제23·24합집에 수록된 역사학자 김수자의 논문 '1948년 이승만의 초대 내각 구성의 성격'은 "친이승만 계열, 이승만 지지자들"을 이 내각의 특징으로 제시했다.

그같은 내각의 면면은 친일문제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태도를 규정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이듬해인 1949년에 반민특위를 탄압하고 친일청산을 무산시켰다. 이보다 더 친일파를 이롭게 하는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 없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서는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구도가 계속 이어지게 됐다. 그런데도 이제봉 교수는 1948년 내각을 "자랑스러운 독립군 내각"으로 극찬하기까지 했다. 객관적 사실과 동떨어지는 역사인식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초창기 북한 내각에 친일파들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내각을 주도한 것은 항일 빨치산들이었다. 친일파들을 완전히 숙청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각을 구성한 것은 북한 정권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었지만,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 강도 높은 친일청산이 이뤄진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에서 친일청산이 없었다면, 해방 직후에 북한을 탈출한 지주계급들 속에 친일파들이 대거 포함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친일파들이 해방 뒤에도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한 반면, 북한에서는 친일파들이 지배권을 상실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서 동떨어진다.

'진실화해위'에 어울리는 인사인가
 
 2022년 6월 이제봉 울산대 교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 출연해 설명을 하고 있다.
2022년 6월 이제봉 울산대 교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 출연해 설명을 하고 있다. 이제봉교수 유튜브 갈무리
 
이제봉 교수처럼 남한 친일문제를 과소평가하게 되면, 진실화해위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일제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독립운동"도 진실화해위원회의 직무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진실규명을 제대로 하려면 독립운동뿐 아니라 친일에 대해서도 올바른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친일문제에 대해 객관적 사실과 상반되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제봉 교수가 이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가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은 <뉴데일리> 칼럼에도 나타난다. 그는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현행 헌법 전문을 간과한 채,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는 관점을 내세웠다.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1919년으로 간주하는 헌법 전문의 선언은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가 그때부터 기능을 발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때 표출된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과 자주독립 정신과 민주공화국 이념을 토대로 대한민국을 운영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동시에, 일제 지배와 친일행위를 반(反)대한민국 범죄로 단죄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고려를 모를 리 없는 학자들이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는 것은 일제 식민지배와 친일문제에 대해 비상식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1948년 건국설을 주장하게 되면 제2조 제1항 제1호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제봉 부결'을 두고 역정을 내며 국회 일정을 파행시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역정을 내야 할 쪽은 오히려 국민들이다. 공권력 등에 의한 과거사의 오점을 바로잡는 데 기울어진 사고로 접근하는 추천한 쪽이 집권여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다음 회기에 이 교수를 다시 진실화해위원 후보자로 올리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의 역사적 관점에도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는 자충수다.
#진실화해위원회 #이제봉 #과거사 정리법 #주사파 발언 #친일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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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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