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9일 <뉴데일리>에 실린 [이제봉 칼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
뉴데일리 보도 갈무리
그러나 이제봉 교수의 글과 강의를 살펴보면 '국회 표결'이 아니라 그 전 단계인 '추천'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9월 19일자 <뉴데일리> '[이제봉 칼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주사파나 종북·좌경으로 몰아세우던 냉전주의적 사고체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 교수는 기고문에서 "대한민국에 암약하고 있는 좌파·용공 세력들이 김일성주의자, 주사파들"이라며 "문제는 이들이 DJ, 노무현 정권에서는 부분적으로 그리고 암암리에 침투되어 공작을 펼쳤던 반면, 문재인 정권에서는 주도세력이 되어 대한민국 해체를 과감하게 기획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과거사정리법 제2조 제1항 제4호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규명해야 할 대상 중 하나로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사망·상해·실종 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을 규정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한 권위주의 시대의 부조리를 규명하려면, 그 시절의 이념적 기초인 냉전주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냉전 사고에 갇혀서야 어떻게 국가폭력과 국가범죄를 제대로 규명할 수 있겠나.
필자는 이제봉 교수의 과거 발언을 좇던 중 사실과 동떨어진 역사관을 드러내기도 했음을 확인했다. 그는 2022년 6월 5일과 7일 유튜브 채널에 '친일파로 채워진 김일성 정권' '독립운동가로 구성된 대한민국 초대 내각'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에서 그는 '북한 초대 내각은 친일 내각이고, 남한 초대 내각은 독립군 내각'이라며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것이고 북한은 항일투쟁가가 세웠다는 이야기들은 거짓말이다. 그리고 완전히 날조된 왜곡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인식을 따라가면 남한에선 '친일청산'이라는 것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948년 내각에 독립운동가들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면 다양한 세력이 이 내각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공산주의자 조봉암이 농림부장관이 되고 노동운동가 전진한이 사회부장관이 된 것도 그런 배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친일파 정당인 한국민주당(한민당)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권력배분 문제 때문에 갈라선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한민당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입각시켜 한민당에 대항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48년 내각은 '다양한 성향을 가졌으되 이승만과 가깝거나 이승만을 위협하지 않을 사람들'로 채워졌다. 1997년에 <이화사학연구> 제23·24합집에 수록된 역사학자 김수자의 논문 '1948년 이승만의 초대 내각 구성의 성격'은 "친이승만 계열, 이승만 지지자들"을 이 내각의 특징으로 제시했다.
그같은 내각의 면면은 친일문제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태도를 규정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은 이듬해인 1949년에 반민특위를 탄압하고 친일청산을 무산시켰다. 이보다 더 친일파를 이롭게 하는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 없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에서는 친일파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구도가 계속 이어지게 됐다. 그런데도 이제봉 교수는 1948년 내각을 "자랑스러운 독립군 내각"으로 극찬하기까지 했다. 객관적 사실과 동떨어지는 역사인식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초창기 북한 내각에 친일파들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내각을 주도한 것은 항일 빨치산들이었다. 친일파들을 완전히 숙청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각을 구성한 것은 북한 정권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었지만,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 강도 높은 친일청산이 이뤄진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에서 친일청산이 없었다면, 해방 직후에 북한을 탈출한 지주계급들 속에 친일파들이 대거 포함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친일파들이 해방 뒤에도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한 반면, 북한에서는 친일파들이 지배권을 상실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서 동떨어진다.
'진실화해위'에 어울리는 인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