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렛다운>
넷플릭스
드라마 <렛다운>을 통해 페미니즘을 공부한 저자 자신이 모성신화의 가해자였음을 고백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드라마 속 친정엄마 베러티에게 아이를 돌봐달라며 싸우는 딸 오드리에게 저자는 자신을 투영한다. 결혼하고 출산 후 육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손주와 잘 놀아주지 못하는 친정엄마가 엄마로서 영 부족하다 여기며, 상처 주는 말로 친정엄마를 톡 쏘아붙이던 자신을 떠올린 것이다.
친정엄마 베러티는 딸 오드리의 불만에도 딸의 육아를 돕기보다 자기 일상에 충실하다. 당당하고 독립적인 엄마 베러티를 곱씹으며 저자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모성의 방식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수긍해 간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사회의 모성신화가 그리는 이상적인 엄마로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해 왔던 엄마를 말이다.
그제야 엄마도 자신을 키우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면서도 엄마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왔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간 자신이 모성신화를 기준으로 얼마나 엄마를 엄격하게 평가해 왔는지 알아차리며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을 내려놓는 장면이 뭉클하다. 저자의 솔직함에 이입되어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솔직해서 위로 된다
저자의 고민이 엄마와 남편, 동료 등 개인적 관계에만 머무른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일의 의미와 일의 윤리 등을 짚어보고,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과 <종이달>, <미스 슬로운> 등을 통해 여성혐오나 감정노동 등 사회문제들 속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까지 고민을 확장시키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내면의 소용돌이를 직면하고 그것이 잠잠해질 때까지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해 내야 한다. 이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기에 대개는 그저 못 본 체하고 살아가곤 한다. 헌데, 저자 홍현진은 영화 속 범상치 않은 여자들을 보며, 회피했던 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다양한 욕망들을 인지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여 명료하게 정리해 내는 데 성공했다.
글을 쓰며 담대하게 고통스러운 내면의 소용돌이를 관통해 낸 저자가 부러운 한편, 소진된 자아를 추스르기 위해 자체적으로 가졌다는 안식년을 끝내고 나온 책이니 이보다 더 큰 수확이 또 있을까 싶다.
오늘도 어디선가 여자라는 이유로 갑갑하고 억울해서 책으로 파고드는 나 같은 여성들이 있다면, 홍현진 작가의 <나를 키운 여자들>을 권한다. 분명 그들의 고민은 저자의 고민과 닿아 있을 것이고, 그들의 고민에 필요한 뭔가를 발견해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를 키운 여자들
홍현진 (지은이),
느린서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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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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