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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살기 위해'... 내가 튀르키예에서 만난 난민들

시리아 난민의 지금... 교육 연속성 보장 못 받고, 불안전에 노출된 사람들

등록 2023.02.27 16:03수정 2023.02.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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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시리아 사람을 왜 좋아해요?"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12세 시리아 난민 아이가 내게 물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건넨 공감의 한 마디가 저 질문을 불러올 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이 후회된다.

다시 대답할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너희를 좋아한다. 우리도 난민이었던 때가 있었고 타 국가와 타인의 도움 덕에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도움을 받은 만큼 너희에게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되돌려주려고 온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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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대 GS-L 튀르키예팀의 단체사진 아이들과 함께한 서울여대 팀원들의 단체사진이다. ⓒ 김예진

 
지난 1월 초부터 중순까지 서울여자대학교 '글로벌 서비스-러닝(Global Service-Learning)'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튀르키예 난민 센터에 있는 시리아 난민 아동 및 어머니 대상으로 교육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내가 난민 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계기는 언론이 생산하는 '위험한 난민' 프레임 때문이다. 터키 해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쿠르디를 기억하는가? 이 한 장의 사진은 난민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불러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반면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프레임을 씌워 편견을 키우는 기사도 있다.

언론보도에 가려진 진짜 난민의 모습은 어떨까? 만약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난민들이 범죄를 일으키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면 어떤 요인들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도 궁금했다.

튀르키예는 난민의 유럽 유입을 통제하는 대가로 EU(유럽연합)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며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고향을 떠난 시리아 난민들을 적극 수용했다. 그 결과 튀르키예에는 시리아 난민 약 400만 명이 살고 있다. 난민 중 76%는 여성과 어린이로 10대 난민은 가정 경제를 돕기 위해 교육을 포기한다. 교육의 단절은 빈곤의 악순환을 불러오고 이들을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 이들에게 교육은 기초 지식 습득뿐만 아니라 현지 사회 적응을 돕고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교육 봉사를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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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만들기 활동을 하는 아이들 영어교육 저학년 반 아이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 김예진

 
내가 튀르키예 현지에서 가르치게 된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사전에 팀원들과 함께 주차 별로 유닛을 정하고 그날 배운 단어를 활용한 만들기 혹은 신체 활동을 준비했다. 예를 들어 컬러 펀(Color fun) 유닛에서 색깔을 가리키는 단어를 배우고, 셀로판지를 이용한 무지개 만들기 활동을 통해 무지개의 색을 영어단어로 상기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했다.


난민 아이들은 어딜 가서도 '난민'이라는 이유로 상처받고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여 주기 위해 아이들마다 작품을 완성하면 한 명씩 일어나게 해 모든 선생님이 다 같이 칭찬해줬다.

수업을 돌아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더 나를 성장시켰다. 하루는 패밀리(Family) 유닛을 배우고 가족 그리기를 숙제로 내줬는데 한 아이의 그림에는 뒷모습으로 그린 여자 3명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중에 엄마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 "여기서 엄마는 누구야?"라는 질문을 했고 아이는 큰언니, 작은언니, 본인만 그렸다고 답했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한 편견은 이들과 나의 경계를 풀면서 쉽게 나타났다. 언제나 수업을 수업답게 만든 건 교육의 내용과 성과가 아닌 '아이들의 말 한마디'였고 이를 통해 당연한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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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겨있는 난민 아동 안겨있는 시리아 난민 아동의 모습이다. ⓒ 김예진

 
수업을 마치고 느낀 바는 난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난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삶의 터전을 잃는 아픔을 겪은 만큼 '아이들은 어둡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수업하는 동안 아이들은 낯선 내게 다가와 먼저 포옹을 하고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한 아이는 처음 나를 보는 순간 꼭 안아주며 말이 아닌 눈빛으로 사랑을 전했다. 그때 결심했다. 이 아이의 눈동자에 오랜 잔상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이의 호흡과 눈빛을 느낀 그 순간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동력이 됐다.

튀르키예에 있는 시리아 난민

난민이 새로운 국가에 잘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일자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난민 대부분은 본국에서의 직업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는 레바논에서 온 가족을 만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엄마는 본국에선 간호사였고 지금 튀르키예에선 가방에 구슬을 꿰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간호사 업무를 다시 하고 싶지만 튀르키예어가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천식이 있는 아들이 유독 밤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본래 직업이 의료인인 자신을 탓하게 된다고 했다.

그나마 시리아에서 온 난민은 난민 신청을 통해 의료 혜택을 볼 수 있는데, 레바논에서 온 난민은 난민 신청이 불가능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한 아이 아빠는 다리 근육이 파열돼서 일도 못 하고 병원에도 가기 어려워 파스만 바르고 있었다. 근육 파열에 파스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 상황이 얼마나 답답할지 가슴이 메어왔다.

하지만 이 가정의 가장 큰 어려움은 레바논에서 왔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 지역에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이 거의 없고, 대화할 수 없는 친구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이들이 왜 나를 초대했는지를 깨달았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말을 들어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정이 기억에 남는다. 센터에 다니는 한 아이의 집에 방문했는데 6명의 가족이 살기엔 턱없이 작은 집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너무 의젓하고 밝게 우리를 맞이하고 커피를 건넸다. 아이 엄마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던 중 시리아 전쟁으로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없어졌다면서 눈물을 흘렸고, 아이 아빠는 전쟁에서 총상을 입어 한쪽 다리가 없는 채로 생계를 위해 일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엄마는 튀르키예어를 잘 몰라 첫째인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엄마에게 아랍어로 번역해주면서 대화가 오갔다. 지금의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가정 형편에 대해서 질문한 순간 아이는 엄마에게 번역하지 않고 직접 답했다. "아빠가 다리 때문에 아플 때가 많아서 집에서 쉬는 날이 많고, 아빠가 버는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라고 아이가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집안의 경제 사정을 다 알고 그 돈으로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는 대답이 난민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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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진행하는 모습 유아교육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 김예진

 
내가 만난 난민은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고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오직 '살기 위해' 타국에 온 것뿐이다. 난민 아이들은 지금껏 내가 느껴보지 못한 포옹의 감동을 줬다. 꽉 달려와서 있는 힘껏 안는 그 순간 사랑의 간절함이 보였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주고받은 2주 동안 책과 인터넷에서 접한 지식과는 다른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변화의 시작은 관심이다. 난민에 대한 마음의 장벽은 국제적 난민 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한국전쟁으로 우리도 난민이었던 때를 기억하고 서로가 연대해야 한다.

난민은 낯선 환경 속에서 교육의 기회마저 제공받지 못한다. 물론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지만 기초교육, 정착한 나라의 언어교육을 통해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아무도 난민이 되고 싶지 않았고 고향을 떠나오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난민이었던 때,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튀르키예 #시리아난민 #난민봉사 #교육봉사 #튀르키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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