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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망국노 노릇 못한다" 광복군 통수권 반환 요구

[무강 문일민 평전] (16) 임시의정원 활동 1

등록 2023.03.01 11:08수정 2023.03.0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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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역사의 그림자로 남은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힌 인물들이 많습니다.

무강(武剛) 문일민(文一民:1894~1968)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평남도청 투탄 의거·이승만 탄핵 주도·프랑스 영사 암살 시도·중앙청 할복 의거 등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문일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문일민이라는 또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기 위해 <무강 문일민 평전>을 연재합니다.[기자말]
1925년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이승만 탄핵 등 개조파가 추진한 임시정부 쇄신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바 있던 문일민은 오랜 시간 임시의정원을 떠나있었다.

그는 1933년 10월 개원한 제26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최동오·신공제·양명진·김규식·유동열 등과 나란히 중령(中領)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임시의정원에 복귀했다.

문일민은 박창세·신공제와 함께 임시의정원이 휴회 중일 때 의정원 업무를 수행할 상임위원으로 당선됐다. 상임위원은 임시정부의 회계 감사·국무위원 등의 사직 수리·독립운동의 방략 및 외교에 관한 사항 연구 등의 직무를 수행했으며 긴급한 사항이 발생했을 경우 즉시 의회의 소집을 요구할 권한이 부여됐다.

그러나 1936년 11월 자싱에서 열린 제29회 회의와 이듬해인 1937년 10월 난징에서 열린 제30회 회의에는 연이어 불참했다. '해임'이 아닌 '결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의원직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 무렵 민족혁명당에 가담하면서 임시의정원 활동을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 같다.

문일민은 민족혁명당 탈당 후인 1939년 10월 치장(綦江)에서 개원한 제31회 회의에서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충칭 임시정부에서의 활약

1940년 9월 임시정부가 충칭에 안착하면서 문일민 역시 충칭 임시의정원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42년 10월 개원한 제34회 회의에서는 체계적인 의정활동을 위해 임시의정원에 네 개의 과로 구성된 분과위원회가 설치됐다. 제1과(법제·청원·징계), 제2과(내무·외무·교통·교육·실업), 제3과(재정·예산·결산), 제4과(군사)가 그것이다. 문일민은 이시영·최석순·엄항섭·안훈 등과 함께 재정·예산·결산을 담당하는 제3과 위원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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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1942.10.25). 빨간 원 안의 인물이 문일민이다. ⓒ 경기도박물관

 
일찍이 재건 한국독립당에서 회계를 맡았고, 임시의정원 상임위원으로 정부의 재정을 감사했던 문일민이 제3과 위원으로 선출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특히 그는 임시정부의 재정과 독립운동가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제34회 회의 당시 "정부나 군에 복무하는 공무원은 모두 월급이 있는 이때에 의원만이 급여가 없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며 임시의정원 의원들에게 활동을 위한 급여 지급을 건의했다. 또 직업적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의 생활비를 정부에서 지급하도록 의결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죽어도 망국노 노릇 못한다" 광복군 통수권 반환 요구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할 군대인 한국광복군의 성립전례식(창립식)이 성대히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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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의 가릉빈관에서 열린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기념사진 ⓒ 독립기념관

 
그러나 남의 나라 땅에서 군대를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41년 11월 중국 국민당 군사위원회는 광복군의 통수권을 군사위원회가 접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韓國光復軍行動九個準繩)'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

9개준승은 광복군의 활동 구역·작전·조직·훈련·초모·편성 등에 있어 중국군이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임시정부와 광복군 입장에서는 매우 굴욕적인 조약이었다.

군사위원회의 통보에 임시정부 내부에서는 9개준승의 접수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으나, 중국의 원조 없이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임시정부는 인통접수(忍痛接受: 고통을 참으며 받아들임)의 심정으로 일단 수용했다.

이는 중국군의 간섭과 통제로 이어졌다. 군사위원회는 광복군총사령부의 기구를 10개처(총무·참모·부관·정훈·관리·편련·포병공·경리·군법·위생)에서 3개처(참모·총무·정훈)로 대폭 축소했을 뿐만 아니라 4개 지대였던 단위부대 편제 역시 2개로 줄여버렸다. 또 군사위원회 소속 중국인 장교들을 광복군에 파견한 결과 총사령부 간부 중 80%, 광복군 장교의 55%를 중국군이 차지하는 꼴이 돼버렸다. 이는 중국군이 광복군을 거의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임시의정원에서는 주로 야당(조선민족혁명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굴욕적인 9개준승의 취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35회 회의에서는 9개준승의 취소 내지는 수정을 거부하는 중국에 맞서 임시정부가 일방적으로 9개준승의 폐지를 선포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대두했다.

문일민은 대표적인 강경론자였다.

"의장! 광복군 9개준승 문제는 3년째 토론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까지도 죽어가지고야 어떻게 독립하겠습니까! 우리가 해외에 나올 때에도 9개준승을 받으러 왔습니까? 이 자리에서 죽어도 또 망국노 노릇은 못하겠습니다. (…중략…) 광복군이 근무병 하나도 마음대로 처리 못하리만큼 인사 문제의 자유가 없어가지고야 무슨 일할 자유가 있습니까? 부모처자를 버리고 여기 와서 고생하는 여러분이 이런 꼴을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정신만은 살아야겠습니다!" - 1943년 11월 15일 제35회 임시의정원 회의 당시 문일민의 발언

실제로 문일민은 신흥무관학교와 윈난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한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광복군총영·한국노병회·한국군인회 등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각종 군사조직에 관여했고 심지어 중국군에 몸을 담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광복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굴욕적인 9개준승에 종속되어 있는 광복군에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문일민은 1943년 12월 1일 유림·강홍주 등과 함께 임시의정원 의장이었던 홍진 앞으로 다시 한 번 9개준승을 폐지하고 독자적인 작전 실시를 골자로 한 자주적인 신 협정을 3개월 내로 체결할 것을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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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의정원에 제출된 한국광복군9개준승 폐기 제의안. 임시정부가 최단기간 내에 중국 정부에 9개준승 폐지를 요구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1942년 작성 추정) ⓒ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9개준승 폐지에 대해 꿈쩍도 하지 않던 중국 측은 이처럼 임시정부에서 9개준승의 일방적 실효를 주장하는 강경한 행보를 보이자 마침내 1944년 8월 23일자로 임시정부에 9개준승의 취소를 통보해왔다.

이는 비로소 광복군이 자주성을 회복하고 임시정부의 독자적인 군대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문일민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9개준승 폐지를 위한 운동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 17부에서 계속 -

[주요 참고문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1·2·3·5·45 국사편찬위원회, 2005·2011
<한국독립운동사 자료>1, 국사편찬위원회, 1970.
강만길,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 창비, 2018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백범의 길-임시정부의 중국 노정을 밟다>下, 아르테, 2019
한시준, <韓國光復軍硏究>, 일조각, 1993
#문일민 #무강문일민평전 #한국광복군 #임시의정원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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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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