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사치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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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달달한 연유라테가 매우 절실했다. 일이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친 오전을 정신없이 보내고, 구내식당에서 꾸역꾸역 점심을 때운 후여서 나도 동료들도 달달하고 시원한 연유라테가 몹시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 마시는 아이스 연유라테 한 모금은 모든 직장인을 잠시나마 천국행 급행열차에 태워주는 프리패스 아니겠는가! 자연스레 우리의 발걸음이 연유라테를 향하던 중 작년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직장 동료의 상황이 문득 궁금해졌다.
'입주는 언제부터 시작해?' 내년 10월에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다는 동료의 얼굴에 먹구름 한 조각이 걸렸다.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6번의 중도금을 내야하는데, 대출이자율이 올라서 중도금을 마지막에 몰아내면 대출이자만 3천만 원에 달한다는 거였다.
'엥, 뭐라고? 중도금 이자만 3천만 원?' 청약이니 중도금이니 워낙 부동산에 눈도 어둡고, 셈은 문외한인 나에겐 턱이 빠질 이야기였다. 가득이나 부담스러운 대출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변동금리인 중도금의 이자가 생각지도 않게 늘어났다고 했다. 20평대의 전세에 살고 있는 나의 동료는 전세가 만료되는 몇 달 후 10평대의 집으로 옮겨 일단 중도금을 내야한다고 말을 이었다.
"아기가 있어서 10평대는 좁을 텐데."
"어쩔 수 없죠, 뭐."
휴, 작은 한숨이 이어진다. 이심전심이었는지 우리는 어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발걸음을 돌려 자연스럽게 사무실로 향했다.
"우리 그냥 커피믹스 먹자."
"그래요. 커피믹스도 맛있어."
우리는 그날 결국 연유라테를 먹지 못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원대한 꿈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나의 동료도, 가시밭길을 건너야 동료의 꿈이 성취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나도 '그깟 연유라테' 한 잔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듯했다.
3천 원짜리 연유라테를 먹지 않는다고 아파트 중도금을 마련하고, 테라스 있는 집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이 이런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오늘도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 오늘 연유라테를 참으며 아낀 3천 원이 10번이 되고, 100번이 되면 중도금이 되어, 테라스가 되어 우리에게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가혹한 현실은 연유라테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나에겐 달달하고 맛있는 커피믹스가 있으니 걱정 없다. 나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날이 언제 올는지는 미지수지만, 난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커피믹스를 휘휘 저으며, 좀 전에 욕실에서 나오다 미처 끄지 못한 불을 끄러 간다.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또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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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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