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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 위해 만든 리유저블 컵, 이게 최선일까요?

[주장] 음료 산 뒤 타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반납 어려워... '반납 시스템' 더 고민해야

등록 2023.03.03 15:38수정 2023.03.0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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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하지 못해 보관중인 다회용 컵 ⓒ 이정은

 
남편이 세종으로 당일 출장을 가는 날이었다. 업무를 처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기에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내 할 일을 할 계획으로 동행했다.

세종 정부청사 인근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내 일을 보았고, 일을 마친 남편이 커피 주문을 요청해서 떠나기 직전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내가 이용한 곳은 스타벅스였는데 앱을 통해 주문을 할 때면 매장 컵, 개인 컵, 일회용 컵 중 필요에 따라 컵을 선택하게 되어있다. 평소에는 보통 개인 텀블러를 이용하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날이었기에 일회용 컵을 선택했어야 하나, 일회용 컵을 선택해야 하는 자리에는 '리유저블(resable) 컵', 즉 '다회용 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 그렇지! 언젠가 기사를 통해 본 내용이 떠올랐다.

일회용 제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컵 보증금을 지불하고, 차후 다시 컵을 반납하면 지불했던 보증금을 돌려받는 시스템. 기사를 보며 환경 보호를 위해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매장엔 해당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렇게 대면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매장 입구에 자판기처럼 생긴 기계가 있었다. 다시 보니 사용했던 다회용 컵을 반납하는 기계다. 마치, 도서관에 도서반납 기계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커피값에 보증금 1천 원을 추가로 결제해서 구매했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며 남편과 한참 얘기를 나눴더랬다. 이때만 해도 제법 괜찮은 시스템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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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용 컵 순환 시스템 (출처 : 해피해빗 홈페이지) ⓒ 해피해빗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스타벅스 매장이 있지만 아무리 기억을 복기해 봐도 그 매장엔 컵을 반납할 수 있는 기계가 없었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아직 전국적으로 도입된 시스템이 아니며, 에코 매장이 아닌 곳에서는 다회용 컵을 수거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이용한 스타벅스 기준 전국 매장 중 이 시스템을 도입한 에코 매장은 제주 전 지역과 세종 전 지역, 그리고 서울의 600개 매장 중 12곳 등 총 49개 매장 뿐이다(2023년 3월 2일 기준).

이는 2021년 11월 SKT와 정부, 서울시, 인천시, 스타벅스 등 60여개의 기관 및 업체가 참여 중인 '해피해빗'이라는 환경보호서비스 시스템으로, 이것이 도입된 매장에서만 반납이 가능했다. 그러니 단순히 스타벅스만의 문제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매장이었어도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기업 차원에서 해피해빗을 전국적으로 도입하는 곳은 스타벅스 이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마저도 전국에 49개 매장 뿐이고.

다회용 컵을 사용함으로써 일회용 컵을 줄이자는 취지는 높이 살만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우선 세척 문제를 볼 수 있다. 수거된 컵은 전문 업체를 통해 애벌 세척 ⟶ 소독제 세척 ⟶ 자동고압기 세척 ⟶ 자외선 살균기 소독 ⟶ 잔여 세균검사 등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만. 그게 얼마나 깨끗하게 세척이 될까.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으니 그저 믿고 가는 수밖에 없는 거겠지만, 글쎄.

그리고 원활하지 못한 반납 시스템. 무엇보다 사용한 다회용 컵을 반납할 수 있는 기계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사용된 컵은 반납이 되어야 순환이 이루어지고 결과적으로 환경보호가 되는 거겠지. 그러나 내 경우에도 세종에서 다회용 컵을 이용해 커피를 구매했고, 결과적으로는 타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았나. 이게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지 않는 모든 테이크 아웃 이용자들이 해당 지역에만 머무를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그나마 내가 살고 있는 인천에서는 해피해빗과 함께 다회용 컵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마저도 아직까지 시범단계라 인천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해당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다. 일부러 컵을 반납하기 위해 들고 나가야만 하는 불편함과 접근성 또한 매우 좋지 않다는 아주 큰 단점을 극복해야 반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고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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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용 컵 무인 반납기 ⓒ 해피해빗

 
결과적으로 나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 하면서 일회용 컵 선택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다회용 컵을 선택했고, 정작 반납할 매장을 찾지 못해 보증금으로 낸 1천 원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1천 원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는 좋지만, 그 취지에 맞지 않게 1천 원을 지불하고 다회용 컵을 구매한 꼴이 되었다. 반납할 곳을 가지 못하고, 내게 필요하지 않다면 결과적으로 이 컵도 버려지게 될 텐데 이것이 과연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와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당 홈페이지(https://www.happyhabit.co.kr)를 보면 앞으로 더 많은 브랜드가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기에 앞서 반납 시스템에 대한 부분은 보다 깊은 고민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매장에서 시행할 수 없다면, 반납이라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게 어렵다면 주문 단계에서부터 다회용 컵뿐 아니라 일회용 컵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다회용컵 #환경보호 #에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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