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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나가 온몸 까매진 학생..."20년 싸웠는데, 괴롭다"

[인터뷰]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만든 임동헌 교사가 본 영화 '다음 소희'

등록 2023.03.07 17:28수정 2023.03.0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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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포스터.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지난 2017년 발생한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음 소희>를 계기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영화의 주인공 '소희'와 같은 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음에도 끝내 '다음 소희'를 막지 못했다. '다음 소희'의 죽음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소식이 돼 알려졌다.

그러나 모두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광주전자공업고등학교의 임동헌 교사는 지난 20년간 현장실습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웠다. 이 과정에서 광주지역 시민사회를 설득해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결성하기도 했다.

영화 <다음 소희>를 본 임 교사는 영화를 본 소회를 "무기력해졌다"는 말로 정리했다. 지난 3일, 임동헌 교사를 인터뷰했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고 가르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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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자공고 임동헌 교사 ⓒ 김동규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광주전자공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27년차 교사 임동헌입니다. 그동안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요새는 길을 잃은 것만 같습니다."

- '현장실습' 제도란 무엇인가요?

"1963년 산업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일할 사람보다 일자리가 더 많던 경제성장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더 어린 노동자들을 쓰려고 취업 연령을 고등학교까지 낮춘 겁니다. 김영삼 정부는 '2+1'이라고 해서, 3학년 학생이 1년 동안 현장실습을 가면 출석한 걸로 보고 졸업장을 줬습니다. 사실상의 조기 취업 제도였습니다. 이후 '2+1' 제도는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이 일어 축소되지만 현장실습 제도는 여전히 시행 중입니다."


- 현장실습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지난 2002년 당시 광주기계공고의 취업담당 교사였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사회생활이 녹록지 않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전북 남원의 한 자동차기업 협력업체로 학생 5명을 현장실습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중 4명이 보름도 안 돼서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남은 학생은 굉장히 내성적인 학생이었는데, 이틀 뒤에 그 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출장을 내고 남원에 갔습니다. 공장에 가니, 멀리서 검은 물체가 다가왔습니다. 온몸이 까맣게 칠해진 그 학생이었습니다.

공장에서 학생에게 플라스마 용접을 시켰는데, 그 용접은 쇳가루가 많이 날려서 밀폐된 공간에 손을 넣어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비싸기 때문에 그냥 하라고 했습니다. 학생이 저를 보고 장갑과 마스크를 벗는데 손과 얼굴이 온통 검었습니다. 분진이 안 들어가는 방진마스크 속까지 까만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고 숙소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건물 옥상 컨테이너로 안내받았습니다. 문을 열자 용광로처럼 뜨거운 공기가 나왔습니다. 이불이 엉켜있고 선풍기만 두 대 있었습니다.

여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학생에게 짐을 챙겨오라고 하고 회사 부장을 만났습니다. 부장은 저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받아쳤습니다. 그러자 부장은 비아냥거리듯, '선생님, 사회가 학교처럼 편하지 않아요. 전쟁텁니다. 앞으로 광주 기계공고 학생들은 안 뽑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학생과 함께 광주로 돌아가는데, 아무 말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뭔가, 학교와 선생님을 원망하는 기운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2003년에 전교조 광주지부 실업교육위원회가 창립돼, 다른 선생님들과 현장실습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실습을 보냈는데 어떤 학생은 지게차에 치여 죽고, 어떤 학생은 승강기에 끼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때 큰 충격을 받고 '아, 이건 교육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현장실습 폐지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 2009년에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만드셨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어리고 힘없다는 이유로 심각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 지역 청소년들의 노동인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광주의 16개 시민단체와 함께 단체를 창립해 현장실습 등 청소년 노동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12월에 기아차 광주공장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당 최대 70여 시간 근무한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 18세 학생이 쓰러진 이 문제를 지역의 이슈로 만들기 위해 거리에 나섰습니다. 

당시 특성화고 3학년들은 1학기 수업을 마친 후부터 실습을 나갔습니다. 이에 기업은 상반기에는 전문대 실습생들을 쓰고, 하반기에는 특성화고생들을 썼습니다. 상시 고용으로 채워야 할 자리를 실습생으로 채운 겁니다. 실습생들은 정규직들은 하지 않는 '기피 업무'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인건비를 크게 절감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습니다. 사건 직후인 지난 2012년 1월 정부가 기아차 광주공장 특별근로감독 실시로 확인한 체불임금 및 미지급 수당만 27억8000만 원이었습니다. 저희 측 노무사는 실습생들이 상시 근로자로 채용됐다면 이 금액은 90여억 원에 달했을 거라고 봤습니다. 이후에도 사고는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마다 현장에서 '반짝 관심'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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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기아차 광주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20년 지났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현실 

- 사건이 반복됨에도 현장실습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소희>를 보면 학교가 취업률을 채워 예산을 받기 위해 학생들을 현장에 보낸다고 나옵니다. 요새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취업률을 기준으로 예산을 차등 지급하던 제도는 문재인 정부 때 폐지됐습니다. 그럼에도 학교들은 여전히 취업률에 연연합니다. '신입생 모집' 때문입니다. 현재 여러 특성화고가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적 편견과 오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진학한 이유는 취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성화고를 나와 바로 취업하는 일이 무척 어렵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특성화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치솟고 있습니다. 특성화고는 직업훈련원이나 전문대학보다 긴 3년간의 교육과정을 운영합니다. 이 교육을 받고도 바로 취업하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한다면 처음부터 특성화고에 올 이유가 있을까요? 이 사실을 아는 고등학교 진학 예정자들에게 특성화고는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없습니다.

학생 모집에 실패한 학교는 구조조정에 들어갑니다. 사립학교 교사에게는 신분상 문제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광주의 13개 특성화고 중에도 이미 신입생 모집이 미달되는 곳이 있습니다. 교사들은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인위적으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현장실습을 지속합니다. 이대로 가면, 학교가 존폐 위기에 처하고 나의 신분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어디에 취업했느냐'는 더 이상 중요한 질문이 아니게 됩니다. '몇 명이 했느냐'가 중요해집니다. 그것을 학교 홍보에 활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희는 '현장실습 폐지'를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현장실습 폐지에 반대해 왔습니다. 현장실습을 통해 참담한 사업장에 학생을 보내는 것보다, 현장실습 폐지로 인해 발생할 취업률 하락을 걱정한 겁니다."

- 현장실습생들의 '안전'은 과거와 달라졌나요?

"현재 특성화고 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당한 산업재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 현장실습생 가입자를 기준으로 단순 추출한 자료가 있긴 하지만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현장실습생의 산재를 별도로 조사한 통계는 없습니다. 지난해 저희가 국가인권위 연구용역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보다 늘었다, 줄었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관계 기관들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어느 정도의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한 조사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소희'와 같은 상황에 놓인 현장실습생이 죽지 않고 끈질기게 싸웠다면 우리 사회는 그가 사업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들과 별개로, 현장실습생들이 여러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크고 작은 산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실습생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관심이 집중되지만, '다음 소희'가 될 수 있는 누군가의 하루는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주목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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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 <다음 소희>, 어떻게 보셨나요?

"영화 속 '소희'가 거대한 구조의 벽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소희'의 고통을 회사와 정부는 물론, 학교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20년을 싸웠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무기력이라 표현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학교에 몸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취업을 해야 합니다. 특성화고에서 이른 취업을 하려면 현장실습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저희 학생들은 땀 흘리지 않는 직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진짜로 모르는 사람들이 밖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땀 흘리며 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길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롭습니다."
#다음 소희 #특성화고 현장실습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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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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