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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호갱' 만든다"했던 법원, 조달청 또 비판 "이게 공정입찰?"

'강원테크노 불공정 입찰 의혹' 재판부의 의구심... "조달청·강원테크노 주장 비약 심해"

등록 2023.03.09 10:54수정 2023.03.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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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달청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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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업체보다 더 비싼 가격을 써낸 업체가 최저가 경쟁 외자입찰(외국산 물품 구입)에 우선 낙찰돼 특혜 의혹이 불거진 '강원테크노파크 불공정 입찰 의혹' 사건 관련 소송에서 재판부가 "불공정 입찰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재차 지적했다. 이 재판부는 이전 가처분 심리과정에서도 조달청을 겨냥해 "국가를 국제적인 '호갱'으로 만든다"라고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이번 불공정 입찰 의혹은 강원테크노가 '열간등압소결기'라는 고가의 설비를 조달청을 통해 구매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기기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기에 해외 입찰로 진행됐다. 강원테크노는 정부가 24.09%, 강원도 지자체 5곳이 총 57.25% 지분을 가진 지방 공공기관이다.

계약방법은 수의계약이 아닌 일반경쟁에 최저가 낙찰제로 규격만 충족한다면 입찰가를 가장 낮게 쓴 업체 계약자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입찰 참여 업체 중 피지코리아와 B업체 등 2개만 강원테크노 요구 규격을 충족했는데 피지코리아의 입찰가는 359만9000달러(47억389만 원), B업체 입찰가는 378만1000달러(49억4176만 원)였다.

피지코리아가 최저가 낙찰대상이었지만 강원테크노가 피지코리아의 경우 '고압용기 제조등록증명서'가 미비돼 있다며 B업체를 최종 낙찰대상으로 선정하면서 '불공정 의혹'이 불거졌다. 

피지코리아는 입찰에서 부당하게 탈락했다며 지난해 5월 낙찰자 지위 확인 소송과 기존 계약 효력을 정지하는 계약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금까지 조달청·강원테크노의 소송 성적은 2전 2패. 조달청 측은 이 가처분 사건에서 두 번 다 패소했고 기존 계약은 정지됐다(관련 기사 : 조달청의 '이상한 입찰'... 작심 비판한 판사 "호갱인가").
 
가처분 사건을 재심리한 대전지법 민사21부(재판장 구창모, 배석 김기호·송현섭)는 지난 1월 30일 조달청 주장을 기각하고 계약 정지를 재차 결정하면서 "조달청, 강원테크노가 보인 태도에 비춰보면 '사실상 업체를 정해놓은 상태에서 입찰 모양새 갖추기 위해 상대 업체를 들러리로 세우는 모양새만 갖춘 경우'가 아닌지 의문을 가지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재판부 "조달청, 기존 법리·논리칙 위배"
 
 이 사건 최초 가처분 신청 판정문 23쪽 중 조달청과 강원테크노파크가 가격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유 경쟁 입찰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 대목.
이 사건 최초 가처분 신청 판정문 23쪽 중 조달청과 강원테크노파크가 가격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유 경쟁 입찰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 대목.손가영
 
쟁점은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고압가스용기 제조등록증명서(등록증명서)' 보유 여부 하나였다. 설비 특성상 제조사가 정부로부터 등록증명서를 받아야 제조할 수 있다는 의무 규정이다. 그러나 해외 업체에까지 일률 적용할 수 없는 국내법이다. 특히 해외 업체들은 이 증명서를 발급받는 데 보통 6~10개월의 시간과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명백히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미리 특정 국가의 등록증명서를 구비해 놓을 이유는 별로 없다.
 
조달청도 이번 입찰에서 등록증명서를 '필수조건'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자유경쟁 입찰은 모든 국가의 업체에게 열려있으므로, 한국 정부 증명서를 미리 구비한 해외업체는 없다고 전제하고 입찰을 추진하는 게 상식에 부합했다. 입찰 후 낙찰까진 1~2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기에, 해외업체가 입찰 공고를 보고 부랴부랴 등록증명서를 발급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통상 해외업체들은 낙찰이 확정된 후에 국내법이 요구하는 절차를 거쳐왔다. 이를 못 지키면 업체가 책임을 진다는 등의 보증 조항도 계약 조건에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조달청과 강원테크노는 최저가를 써낸 피지코리아가 '등록증명서를 구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피지코리아의 입찰가는 낙찰된 B업체보다 약 2억3787만 원(18만2000달러) 적은 47억389만3000원(359만9000달러)이었다. B업체 입찰가(378만1000달러)는 배정금액(378만1182달러) 보다 겨우 0.01%, 한화로 22만 원 낮은 수준이었다. 피지코리아 측은 강원테크노의 판정 기준이 국제 관례와 경험칙, 법리에 모두 반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심리 과정에서 재판부는 조달청과 강원테크노 주장이 "그들의 독자적 해석론에 지나지 않으면서 기본적인 법리와 논리칙에 어긋난다"며 "논리전개 비약이 너무 심해서 법적으로 채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B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제조사 AIP는 문제의 등록증명서 없이 한국에 설비를 납품한 적이 있었다. 조달청은 B업체 낙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AIP가 2010년에 등록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밝혔는데, AIP는 증명서가 없던 2005~2010년에도 열간등압소결기를 세 차례 한국에 납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달청 등은 처음엔 탈락 사유로 피지코리아가 A/S 계획을 제출하지 않았다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나중에 사유를 등록증명서 미비로 바꿨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납기일 못 지킬 가능성' 밝힌 업체를 뽑은 조달청
 
 미국에 공장을 둔 제조사 AIP가 생산하는 열간등압소결기 설비 사진 갈무리.
미국에 공장을 둔 제조사 AIP가 생산하는 열간등압소결기 설비 사진 갈무리.AIP사 홈페이지
 
재판이 진행되면서 의아한 정황은 더 발견됐다. 먼저 계약금을 설비 납품 전에 먼저 지급해주는 '선금 지급' 문제다. 선금은 국가보다는 업체에 더 이익이 되는 지불 방식으로, 해외 입찰에선 특히 이례적이다. 조달청이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해외 입찰 자료에 따르면 2022년엔 962건 중 13건(1.4%), 2021년엔 1280건 중 29건(2.3%), 2020년엔 1303건 중 33건(2.5%)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낙찰된 B업체는 계약금의 30%(약 14억846만 원)를 선금으로 받는다고 명시한 견적서를 입찰 단계에서부터 냈고, 실제로 선금은 지급됐다. 조달청 입찰 공고문엔 없는 내용이다. 조달청 외자구매업무 처리규정은 공고 내용이 바뀌면 변경공고를 다시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조달청은 변경공고를 하지 않았다.
 
 장혜영 의원실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중 최근 5년 간 외자입찰 중 납품 전 선금지급 계약 비율 현황 부분 갈무리
장혜영 의원실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중 최근 5년 간 외자입찰 중 납품 전 선금지급 계약 비율 현황 부분 갈무리장혜영의원실
 
특히 B업체의 견적서엔 "미국 내에서 절차상 문제로 납기일을 지키지 못할 시 납기 연장 협의를 할 수 있다"는 조항도 적혀 있다. '납기일 미준수'는 업체가 법적·경제적 책임을 져야 할 계약 위반 문제다. 조달청은 입찰 단계에서 연장 협의를 먼저 거론하고 공고에 없는 선금지급까지 명시한 업체를 뽑은 셈이다. 경쟁 입찰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보기 어렵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조달청은 "소송 중인 사안으로 답변이 곤란하다"라고 답했다.
 
'원화 배정금액 초과' 문제도 있었다. 조달청은 공고문에서 이번 사업 배정금액을 원화로 44억9128만8180원이라 공지한 후 "계약은 원화 배정금액 범위 내에서 계약체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강원테크노와 B업체 사이 계약체결금액은 46억5637만5000원(환율 1241.7원)이다. 원화배정금액보다 1억6508만6820원이 많다. 배정금액보다 체결금액이 많은 경우 조달청 외자구매업무 처리규정상 재공고 입찰이 원칙이다. '차액이 근소해 협의를 하는 게 정부에 유리한 때'에 예외적으로 추가 협상이 인정된다. 조달청은 이와 관련해서도 "소송 중인 사안으로 답변이 곤란하다"라고만 답했다.
 
스페인 제조사 임원도 재판 방청... "공정한 기회 보장 위해"
 
한편 조달청은 최근 유사한 설비를 또 외자 입찰에 붙이며 재판 쟁점이었던 등록증명서를 '입찰 시 반드시 내야 한다'고 공고했다. 낙찰된 업체는 똑같은 B업체다. B업체에 제품을 납품하기로 한 제조사도 AIP로 동일하다. 첫 입찰엔 한 업체만 응해 유찰됐고, 재입찰에서 B업체가 단독 참가해 낙찰됐다. 수요기관은 한국광기술원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걸 우회하거나 원천 차단하겠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이런 조건 변경이 어떤 법적 판단을 받을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밝혔다. '아직 미지수'라 한 이유는 이 재판부가 해당 '입찰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 심리도 맡았기 때문이다. 피지코리아 측은는 조달청 행위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제기했다.
 
피지코리아 측 제조사였던 스페인 회사 '하이퍼베릭' 임원도 지난 1월부터 재판을 보기 위해 대전지법을 찾고 있다. 알레한드로 블랑코(Alejandro Blanco) 하이퍼베릭 영업이사는 지난 2월 27일 <오마이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솔직히 이 사건은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정부 조달 입찰 중에서 최악의 경험"이라며 "우리는 한국의 여러 고객들을 위해 지난 수 년 간 성공적으로 한국 시장에 참여해왔다. 우리는 공정한 기회 보장이라는 정당한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랑코씨는 특히 "(낙찰 후) 납기일 내에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등록증명서를, 단순히 입찰에 참여만 할 때 외국기업에 요구할 수는 없다"며 "어떤 외국기업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국내용(한국용) 인증서를 단지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발급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건 결국 경쟁이 없는 입찰을 만들어 한국 국민들에게 입찰 과정이 덜 공정하다는 편견을 가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달청은 재판부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소송 중인 사안으로 답변이 곤란하다"라고 답했다. 강원테크노 관계자도 지난 2월 2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기에 구체적 사항에 대해선 답변을 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강원테크노파크 불공정 입찰 의혹 #조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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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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