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사 춘제
최장문
최치원 선생의 역작으로는 계원필경과 사산비명이 있습니다. 계원필경은 중국에서 지은 자신의 시문을 종합하여 정리한 책이라면, 사산비명은 신라에 귀국한 후 비석에 남긴 네 편의 글입니다. 네 군데의 산 이름을 따서 '사산비명'이라 부릅니다.
충남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 경남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경북경주 초월산대숭복사비명, 경북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입니다. 사산비명은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한 것으로, 신라 불교사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한 세 고승의 행적을 유학자인 최치원 선생이 작성한 글을 비문에 새긴 것입니다.
유불선이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특히, 충남보령 성주사지비는 신라말 5교 9산에서 선종을 중심으로 일어나 9산의 하나입니다. 진성여왕 2년(888) 낭혜화상 무염이 입적하자,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행적을 새긴 비로 국보 제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비에 새겨진 5000여 글자들이 뚜렷이 판독되면서 보령 오석(검은 비석)의 유명세는 오랜 시간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고려시대에 씌여진 것에 비하여, 사산비문은 신라시대의 것이며 당시의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1차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