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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PD로 삽니다, 스물 셋부터 비정규직으로 10년

밥덩이를 들이며 삼키는 슬픔... 밀레니얼 세대가 좌절과 함께 사는 법

등록 2023.03.07 14:58수정 2023.03.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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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 앞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두 달 후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며 내 몸은 '먹어라 먹어라' 했다. 배고픔을 울면서 참아 보았다. 파멸이든 구원이든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고요해진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나는 비정규직이다. 나는 내가 비정규직을 위해 싸우며 살 줄 알았는데. 나와 그들을 구분 짓던 견고한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주어진 현실에 그저 순응해야 했다.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찰할 겨를도 없이 한순간 사고를 당해 몸져눕는 노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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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가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삶은 따로 준비하지 못했다. 확신하는 태도로 밀어붙이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이해한 신자유주의의 가르침은 그런 것이었다. ⓒ 반수현

 
7년 간의 신입 공채와 3년 간의 경력 공채 도전. 나는 절대로 될 수 없었던 어떤 존재, 미디어 생태계에서 방송국 PD는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이다. 나는 2022 EBS 경력 공채에 지원하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저널리즘을 붙잡지 않기로 했다. 

지난 10년 간 너무나 많은 기대를 품고 살아온 것이 죄인 듯해 당분간 목표의식 없이 살기로 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도, 받아들이지 않기에도 너무 아픈 서른 셋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니 반드시 실력은 늘지만 끝내 합격은 하지 못했다. '노력-실력-합격'이라는 비교적 가까워 보이는 말들 사이에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스물 셋에서 서른 셋이 되는 동안 어떤 대통령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고 했고 어떤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삼라만상의 작용을 설명해내기에 인간의 세 치 혀가 너무 짧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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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언론은 방송 공영성 투쟁 기간에 신규 채용을 거의 하지 않았다. MBC는 2012년 파업 이후 4년 간 신입 사원을 전혀 채용하지 않았으며, 경력사원(비정규직 포함)만 291명을 채용했다. ⓒ 공범자들

 
자유주의 시장 경제는 인생이라는 개념을 개인이 계획하고 성취하는 모종의 대상으로 여기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각자의 계획과 성취만으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심지어 인간의 의지에서 상당히 미끄러져나간 탓에 대안의 선택들로 삶을 완전히 새로이 구성해야 할 때도 있다. 지상파 저널리즘에서 멀어진 나도 지역 케이블 방송과 영화, 홍보 등을 거쳐 지금의 제작사에 닿았다.


나는 여전히 PD로 산다. "당신만 말해줄 수 있는 진실이 있어요." 내가 출연자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나에게도 건네본다. 내 세월이 만들어낸 나만의 진실이 있겠지. 나는 내가 속한 페이지를 딛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싶다. 

지난 10년을 합격/불합격으로만 환원하지 않으려 나는 시절을 들여다 보고 세어 보면서 쓸 만한 만트라(mantra)를 건져올렸다.

'큰 곳에 가더라도 내 노력 덕분만은 아니다, 내 노력이 부족해 작은 곳에서 시작한 게 아니듯.'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능력주의적 오만'에 가슴 깊이 공감한다. 자신의 성공에 보탬이 된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성공을 제 능력의 척도로만 믿는 것. 요컨대 개인의 성공은 모두에게 빚진다. 어느 하나 내가 잘나서 이룬 것이 없다.

어느 하나 슬퍼도 되는 이름은 없다. 온 몸을 써서 돈을 벌어도 마음까지 가난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믿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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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안아주기 위해서 나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통계에는 결코 잡히지 않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현장의 진실, 그것은 내게 영원한 결핍이 되었다. ⓒ 반수현

 
#밀레니얼세대 #취준 #PD #마이클샌델 #정의란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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