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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가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비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재발된 조현병... 그럼에도 희망하길 멈추지 않는다

등록 2023.03.08 21:19수정 2023.03.0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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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있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조현정동장애(조현병과 우울증이 혼재된 정신질환)로 진단 받은 뒤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환자는 2021년 기준 국내에 1만 2435명(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며,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생애 처음으로 본 영화나 즐겁게 읽었던 책의 제목을 기억하세요?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처음으로 느낀 즐거움과 충격의 감정은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다음 장면이 어찌나 궁금하던지 눈을 뗄 수 없어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죠.

그 후에도 다른 영화들과 책들을 즐기면서 경이감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영화감상과 독서는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던 취미 생활의 일부였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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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취미생활이 괴로운 일이 되자 삶의 낙이 사라진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를 구성하는 마음의 조각이 사라진 듯한 상실감이 들었어요. ⓒ Ryan Stone(Unsplash)


기쁨을 주던 취미 생활은 발병 이후부터 괴롭고 힘든 일이 되었습니다. SNS의 짧은 글이나 인터넷의 간단한 게시글은 읽기가 편했지만, 얇은 소설책도 읽기가 힘들어졌어요. 영화 또한 하나의 영상을 오래 꾸준하게 참고 보기 힘들어져 예전만큼 선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두꺼운 장편소설과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를 피합니다.

이런 좋지 않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몇 년간 휴식기를 보내자 어느 정도 집중력과 인지능력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다시 책을 완독하게 되자 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앞날과 생계에 대한 걱정이 컸으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불가능했던 상태였다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시험의 경쟁률이 치열했고, 필기시험 내용을 공부하면서 도무지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매번 좌절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무언가 성취를 보이고 싶어서 억지로 애를 썼어요.

조현병 증상이 재발한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혼자 방에서 공부하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제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전과 달리 이번에는 목소리가 환청이라는 걸 바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 주에 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 방문했습니다.

복용하던 약의 용량을 늘려 복용하고 휴식을 취하자 다행히 환청이 다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늘린 약의 용량을 다시 원래대로 낮추기까지 몇 년간의 시간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재발 때문에 공무원 시험 준비는 바로 중단되었어요. 목표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출발점으로, 아니 그보다 더 먼 곳에 위치한 원점으로 후퇴해버렸습니다. 당연히 좌절했죠. 취업이나 돈을 버는 생산 행위가 더 이상 불가능해보여 미래를 전부 포기해야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좌절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휴식기 동안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잃어버린 것들보다 남아있는 것들과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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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누구나 겪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가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다시 희망을 꿈꿀수도 있습니다. ⓒ CHUTTERSNAP

 
정신질환자가 행복을 느끼려면

생각해보면 저 뿐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도 사는 동안 어떤 일에 실패해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을 겪곤 합니다. 가령 사업에 크게 실패해서 파산하거나, 행복했던 결혼 생활이 이혼으로 끝나거나,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일들요. 소소하게는 친한 친구와 싸워서 사이가 소원해지거나, 좋은 관계였던 사람과 사소한 이유로 결별하는 등의 일도 마찬가지겠죠.

원점으로 돌아간 이들은 인생을 재건하기 위해 애를 써요. 다시 바닥부터 자산을 모으고 빚을 갚아나가며 살아가고, 행복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미래를 설계하거나, 잃어버린 소중한 이를 애도하고 일상을 되찾으려합니다. 너무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경우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 해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런 관찰과 생각에 힘입어 저는 다시 희망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룰 수 없을 거 같은 목표나 불안정한 미래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보다 지금 당장 이 순간과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기쁨을 최대한, 힘껏 누리는 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면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거나 소설 한 권을 전부 읽는데 실패하더라도 감각과 감정과 경험은 남아있게 되니까요. 목표를 이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에 온전히 몰입하도록 노력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도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타인이 생각하기에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진 저이지만 그래도 행복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 오늘 점심 식사가 맛이 있었다던가, 산책길에서 본 꽃이 예뻤다는 작은 일에서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쁨의 순간들을 모아 채우다보면 나이가 든 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과 태도가 조현정동장애 정신질환자인 제가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을 사는 방법이고, 비밀입니다.
#조현정동장애 #조현병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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