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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예술인 권리보장' 조례 만든 이들... "한 명에라도 도움되길"

[인터뷰] '광주 예술인 지위·권리 보장 조례' 제정 민관협치TF 위원 임인자·이현미·장도국

등록 2023.03.11 16:30수정 2023.03.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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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 제정을 위한 민관협치TF에 참여한 임인자, 이현미, 장도국씨. ⓒ 김동규


지난 2월 23일 광주광역시의회 김나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가 제정돼 공포·시행됐다. 이 조례는 광주 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광주시의회와 민간 측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 과정을 거쳐 만든 조례다.

이번 조례 제정 과정에 함께 한 광주시의회와 광주 예술계는, 실효성 있는 조례 제정을 위해 민관협치TF를 구성해 10여 회 내부 토론과 현장 예술인 집담회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조례는 전국 최초의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조례 제정에 참여한 광주 예술인들은, '첫 조례'가 향후 타 지자체에서 만들어질 조례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신중히 응했다고 한다.

지난 9일,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 제정을 위해 구성된 민관협치TF에 민간 측 TF위원으로 참여했던 임인자, 이현미, 장도국씨를 인터뷰했다. 아래는 이들과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인자 :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인자입니다. 이번 민관협치 TF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현미 : "광주지역 진보문화예술단체들의 연합체인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에서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민관협치TF에 참여했습니다."


장도국 : "이번 민관협치TF에서 TF위원으로 활동한 배우 장도국입니다. 무대 안팎에서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얼마 전,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가 제정됐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임인자 : "우선 이번 조례가 추진된 배경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조례는 지난 2019년 발생한 광주시립극단 부조리 문제를 공론화한 예술인들의 활동이 열정적으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당시 광주 예술인들은 불공정 계약이나 무대 안전 문제, 성희롱 문제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거리에 나가 싸웠습니다.

이후 예술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조례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광주 연극계에서는 '더 한 것도 견뎌야 연극이다'라는 등,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그래서 조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조례가 단순한 제도적 장치를 넘어 예술계의 문화를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조례 제정 과정에서 '숙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들었습니다.

이현미 : "지난 2022년 9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됐습니다. 이 법률은 박근혜 정권 당시 발생한 블랙리스트 사건과 예술계 미투운동 등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침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법의 영역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역 예술인들의 권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광주시의회와 함께 이번 조례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정권이 교체되면서 '예술인 권리문제'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전국 최초로 이 조례를 만드는 광주의 역할이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립극단 사건의 피해자이자 예술인 당사자인 도국씨를 TF위원으로 추천했는데, 초기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불이익을 당한 후 불철주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한 현장 예술인을 전문가로 보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예술인 지위와 권리문제는 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지난한 설득 과정을 거쳐 도국씨도 TF위원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작동, 예술인 피해 구제할 조례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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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2016년 10월 18일, 문화예술인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문화예술 긴급행동 및 기자회견에 참석해 예술검열 반대와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 이번 조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임인자 : "지난 2021년 7월에 있었던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꺼낸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광주에는 지난 2016년 제정된 '광주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례에 따르면 '복지 증진 심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이 위원회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지역 예술계에서 피해를 겪고 고통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할 곳이 단 한곳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권리 보장' 조례는 상징적인 조례가 아닌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조례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실효적인 피해 구제 기구로 작동할 수 있는 예술인권익지원센터 구성에 관한 내용을 담게 했습니다."

이현미 : "문구로 존재하는 권리가 아닌 실제로 책임지는 사람, 법, 기구 같은 것들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타 지역 사례도 많이 조사했고 집담회 때에도 공유했습니다. '광주시 예술인 복지 증진에 관한 조례'는 ​상위법인 '예술인복지법'을 따릅니다. 그러나 이번에 제정된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따릅니다. 두 법률이 규정하는 '예술인'의 범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 규정하는 예술인이 더 넓은 범위라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제정된 조례가 규정하는 예술인에는 예술교육을 받는 사람과 예술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등록 예술인 또한 포함됩니다."

- 앞으로 이 조례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게 될까요?

장도국 : "조례 제정으로 첫 발은 뗐지만, 향후 시행규칙이 잘 만들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광주시에서 속도감 있게 진행해 주어야 합니다. 조례에 따라 설립될 '권익지원센터'가 어떤 역할과 권한을 안고 출범할지에 대해서도 현장 예술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단 한 명의 지역 예술인에게라도 실질적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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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9월 광주시립극단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 광주시립극단 대책위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임인자 : "저는 지난 2013년 당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측에게 프로젝트 제목에 들어간 '5.18'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일 때문에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지킬 수 있을까요? 같은 관점에서, 조례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과연 지역 예술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이 조례가 단 한 명의 지역 예술인에게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길 희망합니다."

이현미 : "이번 조례 제정은 지역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리는 주장하고 쟁취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술인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장도국 : "지난 2019년 광주시립극단에서 발생한 예술인 권리 침해 사건 공론화에 함께해 준 동료들과 시립극단 대책위에 참여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예술인 권리문제는 예술 활동을 하면서 늘 '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술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위해, '한'을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조례가 만들어지고 나니, '이 조례로 정말 (예술인들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몇 년간 싸우면서 사랑하는 무대에 서는 일을 못 하게 되고, 경력이 단절되고 기회도 사라지고 지역사회에서 배제당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고 버텨왔는데, 최근에는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불안감이 듭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오늘까지 3개월 동안 번 돈이 30만 원밖에 안 됩니다. 개인이 나서서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당사자가 나서서 모든 걸 짊어지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막막합니다."
#광주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 보장 조례 #광주시립극단 대책위 #광주 예술인 #광주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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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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