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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싫어 '별장 청원'하지 않아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 25] 김자동이 이승만을 싫어하게 된 일화

등록 2023.03.15 15:29수정 2023.03.1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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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장(자택)에서 김가진 선생 ⓒ 김자동

 
미국 연수를 다녀온 후 부서가 정치부로 바뀌었다. 지금은 많이 다르겠지만 한때 언론사 기자들의 지망부서 1순위는 정치부였다. 한 번은 경무대(청와대의 전 호칭)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어서 취재를 갔다.

경무대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승만이 기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마지못해 뒷줄에 서 있었는데 공보처 직원이 나를 끌어다가 이승만 가까이에 세우려는 애를 썼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짓이었다. 나중에 공보처에서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라며 한 장씩 현상해서 보내왔다. 

나는 그 사진을 받자마자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경무대를 출입하면서 찍은 사진을 단 한 장도 보관하고 있지 않다. 그때는 다들 서로 이승만 옆에 가려고 애를 썼다. 지금도 그런 풍경은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당시는 더 했다. 이승만과 함께 찍은 사진 하나 있으면 급할 때 '나 이런 사람이요!' 하며 내밀 수 있었다. 경찰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다 통하던 시절이었다. (주석 13)

권력자에게 잘 보이면 비서실, 장차관, 국회의원, 국영기업체장 등 현란한 감투가 주어졌다. 이같은 작풍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해서 '자기검열'이 이뤄지고 어용이 되는 언론인이 부지기수다. 김자동은 권력과 철저하게 경계선을 그었고, 기회가 있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올곧은 언론인의 기상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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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천’ 각자 청운문학도서관 아래 바위 절벽에 새겨진 ‘백운동천’ 글씨. 동농 김가진이 새긴 글씨로 그의 집 백운장이 이곳에 있었다. ⓒ 백창민

 
김자동은 개인적으로 이승만을 무척 싫어하였다. 단독정부 수립으로부터 각종 권력형 비리, 백범 암살 등 일련의 정치행태에 X표를 그었다. 여기에 직접 지켜 보았던 일이 겹쳤다.

1948년 정월 초하룻날 아버지를 따라 경교장으로 백범 선생에게 세배를 갔다. 그런데 마침 백강 조경한 선생과 일파 엄항섭 선생이 와 있었다. 일파 선생은 아들 기동이와 함께였다. 세배를 마친 후 백강과 일파는 돈암장으로 이승만에게 세배를 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한 차에 다 타기 어려우니 너나 따라가라고 하셔서 나만 돈암장으로 향했다.

그때 이미 일파와 우남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정원 초하루여서 인사차 들른 것이었다. 우남이 하필 그날 감기가 걸렸다고 했다. 일행이 방바닥에서 세배를 올리는데 우남은 침대에 앉은 채로 절을 받았다. 아무리 어른이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우남을 내 머리 속에서 지웠었다. (주석 14)

김자동의 집안에서는 할아버지의 체취가 담긴 별장 백운장을 찾는 일이 숙원이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이제 자신의 몫이 되었다.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 경무대를 출입하게 되면서, 사적으로 아무개의 아들이고 아무개의 손자라며 이승만에게 백운장 얘기를 꺼내면 찾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는 끝내 행하지 않았다.


이승만이 대통령 시절 아버지가 조금만 이승만에게 '협조'했더라면 백운장은 손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격도 충분하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또 내가 <조선일보> 기자 시절 경무대(현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노력'을 했더라면 그때라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용인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나도 이승만은 곁에도 가기 싫었다. 운도 없었지만 이런저런 곡절로 인해 할아버지의 체취가 담긴 백운장은 끝내 되찾지 못했다. 지금은 백운장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주석 15)


주석
13> 앞의 책, 281~282쪽. 
14> 앞의 책, 281쪽.
15> 앞의 책, 152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자동 #김자동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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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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