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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2일차, 어린이 뮤지컬 보다가 눈물 쏟았습니다

초보 워킹맘의 '이상한 엄마' 관람기... 돕고 도움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을 응원합니다

등록 2023.03.13 21:05수정 2023.03.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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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엄마' 공연장 ⓒ 이유미

  
주말에 공연 하나를 봤다. 바로 백희나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이상한 엄마'다.

워킹맘인 엄마로 인해 열나고 아파도 혼자 집에서 머물러야만 하는 초등학교 1학년 호호의 안타까운 현실, 그리고 그런 호호에게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놓을 수 없는 엄마의 고달픔을 녹여낸 이야기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이틀차인 나의 눈물샘을 마구 터뜨리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호호 엄마가 급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건 전화가 잘못 연결되는 바람에 하늘에서 구름을 만들던 '이상한 엄마'에게 한 가지 미션이 떨어졌다. 아픈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이상한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두고 지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열나고 아픈 상황에서 엄마의 부재로 모든 걸 혼자 감내할 뻔한 8세 호호는, 예상치 못한 이상한 엄마의 보살핌으로 따뜻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상한 엄마와 함께 한 계란 요리로 속을 달래고, 숨바꼭질 놀이로 심심함을 달랜 호호. 이상한 엄마의 끊임 없는 요리 시전으로 집안 공기는 여느 때와 달리 훈기가 가득하다.

엄마와 함께 등교하는 것,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는 것이 소원인 호호는 해바라기처럼 늘 엄마를 기다린다. 바쁜 엄마지만 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믿기에, 엄마가 일하는 게 싫지만은 않다는, 너무 빨리 철들어버린 아이다.

그 엄마의 모습은 곧 나였다
 

별 생각 없이 공연을 보다 한 장면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극중 호호 엄마가 아이 걱정에 발을 동동구르다 끊임없이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풀썩 앉으며 한숨을 쉬는 장면이었다. 지난 금요일 내 모습이 오버랩되며 볼에서 눈물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옆에 앉은 남편의 눈가도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공연 보기 바로 이틀 전 금요일, 유난히도 일이 바쁜 하루였다. 꼬박 9시간을 어린이집·유치원에서 보내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은 급한데 컴퓨터 화면엔 처리해야 할 문서가 가득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했던 그날, 호호 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봤다. 


비 오는 퇴근 길, 아이 걱정에 서둘러 퇴근하던 호호 엄마는 이런 대사를 던진다.

"빗물이 화살처럼 마음에 콕 박혀든다."

그 대사가 어찌나 마음에 와닿던지, 컴퓨터 화면에 치던 활자가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호호 엄마가 화살같은 비를 맞으며 도착한 집엔, 구름처럼 포근한 솜이불 속에서 잠든 아이가 있었다. 엄마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토록 따스히 아이를 보살펴준 이는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가진채 호호 엄마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차마 챙겨가지 못한 이상한 엄마의 저고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저고리를 조심스레 입어보는 호호 엄마의 모습에 내 시선이 오래 멈췄다. 그 장면에서 나는 첫 출근날,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께서 보내신 한장의 사진을 떠올렸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점심시간. 내게 메신저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마치 극중 호호가 구름 속에서 편안히 잠든 것처럼, 구름 속 같은 포근한 이불 안에서 평온한 듯 잠든 둘째의 모습. 둘째도 그렇게 바쁜 엄마 대신 '이상한 엄마'같은 존재인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극중 호호 엄마가 저고리를 입어보는 행동은 '이상한 엄마'의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가슴에 깊이 새겨넣는 것, 그리고 호호 엄마도 그 저고리를 입으며 누군가의 '이상한 엄마'가 되어주라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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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상한 엄마' 포스터 ⓒ 할리퀸키즈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간다

우리는 호호 엄마처럼 누군가의 돌봄노동에 빚지며, 또 갚으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저고리를 벗어놓고, 또 그 저고리를 입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그런 선순환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가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있으므로.

나의 노동을 위해 누군가의 노동에 빚지고 있는 나. 어찌 보면 나 또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족하나마 누군가의 '이상한 엄마'가 되어주며 그 빚을 갚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일하는 엄마로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이 10그램 정도 덜어진 것 같다.

이상한 엄마가 저고리를 남기고 간 것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갚아나가라는 것. 그것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바로 지금 자신이 최선을 다해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 백희나 작가의 작품 속 한방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노동에 빚을 지고 나름대로 갚아가며 하루를 살아가는 나, 그리고 모든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작가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뮤지컬 #이상한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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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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