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이 스머프불만 많은 직장인을 닮은 투덜이 스머프의 모습
Innak
회사에 다닌 날보다 다닐 날이 현저하게 짧아졌다. 쏜살같은 세월의 무상함이 야속하다.
입사 전, 취업 불안이 주는 네버엔딩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이었음에도 식도염, 위염, 십이지장염, 미란성 장염, 헬리코박터균 진단까지 받은 적 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취준생 시절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커다란 기업에 입사했을 때의 흥분과 설렘. 능력이 미천했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찬란한 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했는데, 부지불식간 찾아온 허탈함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함이었다.
"누구나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이 그 트리를 밝히던 수많은 전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잖아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 하찮은 전구에도 급이 있다는 것을."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오는 대사다. 가슴에 콕 박혀 잊히지 않는다. 나 역시 '직장인은 보잘것없는 일개 부속품'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5년 정도 지났을까. 흥분과 설렘은 순식간에 증발했고, '언제 때려치우지'라는 막막함에 사로잡혔다. 직장인이라는 굴레에 갇혀 답답했다. 왠지 모를 허탈함과 불안함에 발만 동동 굴렀다.
불만을 논하기 최적의 공간, 직장
'다른 직장인도 자신이 보잘것없는 일개 부속품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참고 버티는 거지?'
궁금했다. 직장인 관련 기사와 책을 무턱대고 찾아 읽었다. 직장생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도 열심히 감상했다. 수시로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가 대동소이한 직장인의 삶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변의 진리도 발견했다. '직장인은 누구나 불행하다'라는 미디어의 정의였다. 모두가 알면서도 마지못해 버티기에 서글프면서도 대단한 삶이었다.
기사로 쏟아지는 직장인의 비굴한 현실은 내 이야기였고, 책에서 떠드는 '자기계발을 해!'는 나를 향한 외침이었다. TV나 영화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스토리는 실제보다 리얼했다. 엎어치나 매치나 직장인은 결국 애달픈 존재였다.
펜을 들어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겪은 일이 더 부조리한데? 더 어이없는데? 더 황당하고 열 받는데? 더 생생한데? 더 재미있는데?' 이렇게 내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모한 직장인의 발악이었다.
"꿈은 불만에서 생겨난다. 만족하는 사람은 꿈을 꾸지 않는다. 사람은 어느 곳에서 꿈을 꾸는가? 배고프고 추운 곳이나 병원, 또는 감옥에서 사람은 꿈을 꾼다."
프랑스 극작가 앙리 드 몰테를랑의 말은 직장생활에 희망을 주었다. 세상에서 불만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직장 아닐까. 직장인이 꿈을 꾸기에 더없이 최적화된 공간이다. 판은 이미 깔렸다. 꿈을 키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책 열 권 분량은 될 듯한 5년여 간의 직장생활 여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분노, 흥분, 설렘, 조급함 등이 뒤범벅된 감정이었다. 분노를 필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0년은 블로그 대유행의 시기였다. 불평불만 직장생활 이야기를 블로그에 쏟아냈다. 흔하디 흔한 직장 생활 주제가 먹히다니 신기했다. 많은 직장인이 공감하니, 바쁜 줄도 힘든 줄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퇴근 후 매일 글 쓰는 쾌락에 빠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무적인 변화도 일어났다. 처음의 불만이 점점 다듬어지면서 깨달음과 교훈으로 변했다. 새카만 마음 치유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과정이었다. 글쓰기는 한 직장인의 불만 넘치는 직장생활을 치유하는 처방전이 되었다.
글쓰기에 중독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