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픽사베이
다문화, 다인종 도시에 살면서 나의 무지를 새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현재 가장 친한 친구인 알리는 나와 비슷한 때인 지난해 여름 베를린으로 이사 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질문이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예상할 수 있느냐'였는데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유럽 국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온 답변은 이란이었고 이때까지 그 국가에서 온 이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란이 어느 곳에 있는 나라인지,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 조금의 정보도 없었기에 대화 중에 무지가 탄로 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으로 첫 만남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다른 외국인과의 만남에서 내가 한국인임을 밝혔을 때 따라오게 되는 질문들에 대한 태도를 바꿔 놓았다.
북한과 남한 중 어느 곳인지, 중국어나 일본어는 할 수 있는지와 같은, 예전에는 차별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이제는 나와 같은 무지의 선상에서 오는 것으로 받아들여 친절히 답을 전한다. 상대와 어느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스스로의 무지를 어떤 태도 안에 녹여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30년 평생을 한 국가 그것도 아시아계 한국인들이 대부분인 도시에서 살아온 나로선 머나먼 중동의 언어와 문화, 관습들에 관심을 두게 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몇 달 후, 이란에서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의 죽음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알리와 함께 난생처음 소리 내어 말해보는 페르시아어, 팔시(Farsi)로 구호를 함께 외치며 베를린 시내를 걸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이 한데 모여 한 구호를 외친다는 것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오랜만에 피부로 느꼈고, 같은 시기 한국에선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베를린 내에서 추모의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건너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란인들 무리에 둘러싸인 나는 그 대열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보였으며 내 고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누군가 연대의 마음을 나눠주면 좋겠다는 외로움에 휩싸였다.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조차 몰랐던 '이란'에서 온 알리와 나는 이제 단짝이 되었다. 서로의 고국에서 벌어지는 가부장제의 폭력과 답습이라는 공통된 배경 때문인지 혹은 비슷한 시기에 이 도시에 이사 온 외국인의 처지 때문인지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모종의 연대감을 이루게 되었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하지 않는 것 중 알리만이 유일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집에 도착하면 문자를 달라'는 것이다. 한국에선 밤늦게 귀가할 때면 조심히 들어가라며 술 취한 친구의 택시 번호를 누구나 할 거 없이 앞다투어 적고선 상대에게 문자로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다. 알리와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늘 만남의 끝에 그 말을 붙일 때면 나는 마음이 슬퍼진다.
지난 주말 그와 함께 주말 마켓에 놀러 갔다. 음식을 주문해 앉을 테이블을 찾다가 두 이스라엘 여성과 합석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우리는 서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게 되었고 각 국가의 상황을 한탄하게 되었다. 나만이 유일하게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둘은 이스라엘이 독재자에 손에 넘어갔다며 당분간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그들을 만난 날 이틀 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는 두 달간 사법 개혁 반대 시위를 벌여 온 시위대의 '독재에 대한 저항의 날' 선포가 있었다).
베를린 시내에서는 지난 몇 달간 이란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가 주기적으로 진행되었기에 대화는 자연스레 중동 전반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눈치 게임처럼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내게 이스라엘 여성은 "한국은, 글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South Korea. Well. Where should we start?)"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연고 없는 타인, 외국인에게서 들은 그 깊은 탄식에 당황한 나머지 헛웃음으로 답하고 말았다. 혹시 미디어에서 현직 대통령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는, 그 이야기를 본 것일까?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해외에 산다고 고국의 일에서 도망칠 순 없다
독일은 학교에서 전쟁 당시 나치주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치욕적인 역사에 대한 죄의식을 철저히 교육받는다고 했다. 가해의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역사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도 현재에 계속되기에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책임을 다해야 함을 독일은 알고 있다.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민들에겐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아 온 고국과 그 사회, 문화에서 벌어지는 불온당한 일들로부터 도망갈 수는 없다.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부조리함을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