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복
최혜선
어서 빨리 피드백을 받고 싶다
주식도 먼저 정찰병으로 한두 주 사서 가격 움직임을 본 다음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데 아빠 실내복도 앞으로 제대로 만들어 드리려면 이 첫 버전이 가서 피드백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버전을 만들 때 어떤 점이 좋았는지, 별로였는지 반영해서 고칠 수 있을 테니까. 혹시 안 맞으면 뒀다가 친정에 갔을 때 내가 입어도 되니 실패해도 리스크는 제로에 가깝다.
비록 천 부족과 실수의 콜라보로 점철된 프로토타입이지만 부모님 집에 도착하면 딸이 아빠를 생각하며 주말의 시간을 다 바쳐 만든,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랑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난 옷으로 보일 것이다.
언젠가는 절개가 많이 들어가는 등산복 패턴으로 아빠 트레이닝복을 만들어드린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답이 '전문가 솜씨가 다 되었네, 근데 안 편하네~'라는 것이었다. 아빠가 이런 스타일을 싫어하시나? 절개가 많아서 입었을 때 편치 않으셨나? 속앓이를 했는데 알고보니 일하는 딸이 밤새 만들었을 걸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편하다는 말씀이었다.
"걱정마세요. 좋아하니까 합니다. 할 만하니까 합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딸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니까 걱정 마시라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이제는 실력이 늘어서 고무줄 바지쯤은 껌이라고 허풍도 쳤더니 요즘은 걱정을 좀 덜 하시는 것 같다.
이 옷을 받으시고 딸아, 아빠는 길이가 어디까지 왔으면 좋겠고 고무줄은 좀 더 짱짱했으면 좋겠고, 손목에 시보리는 없었으면 좋겠고, 바지 길이는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조목조목 원하는 바를 말해주시면 좋겠다. 다음엔 아주 딱 원하는 스타일로 100벌 만들어 드릴라니까.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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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결혼기념일 때문에 14년 만에 꺼낸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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