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입양아동사망사건(일명 정인이사건)의 근본적 문제는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의 부재였다. 입양체계에서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입양아동이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로 입양체계 전반이 바뀌면서 입양은 더 절차가 복잡해졌다.
김지영
내가 딸을 때리지 않은 이유
딸보다 아홉 살 위인 오빠는 순둥이로 컸다. 하지만 딸은 오빠와 달랐다. 고백하자면, 1년에 한두 번 훈육이랍시고 매를 들었다. 그때마다 사실은 나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됐을 때 매가 주는 형벌로 아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순전히 내가 아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동안 받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랐다. 아이로부터 눈물로 죄를 사함 받았고, 더 이상의 매는 없을 거라는 다짐을 말했다. 우리는 진정으로 화해했다. 하필이면 그 직후 본인 말을 빌자면 딸의 '지랄 같은' 사춘기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장장 4년 동안 우리는 딸이 선사하는 폭풍우를 그대로 맞으며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이 시련이 곧 끝나고 햇빛 찬란한 시절이 온다는 것을 선명하게 알았지만 고통이 극심할 때면 딸에게 뱉은 아직 식지 않은 다짐에 찬물을 끼얹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는 순간순간 딸을 향해 올라가는 손을 내게 되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무사히 지난 뒤라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빠이기 전에 연약한 인간인 나는 사춘기 직전 딸에게 했던 다짐을 후회했던 적이 맹세코 백 번은 넘는다. 딸은 아빠가 제 지랄 같은 사춘기를 한 번도 안 때리고 지난 것에 대한 기특함을 말했지만, 나는 딸에 대한 다짐을 몇 년 뒤로 유예시키지 못한 성급함에 발등을 찍었었다.
이런 망할 다짐과 성급함이나 기특함과는 관계없이 세상은 똑같은 내 자식들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예컨대 똑같은 매가 '낳은 아들에게는 체벌'이 되고 '입양한 딸에게는 학대'가 된다.
입양, 다문화, 재혼, 혈연 등 가정형태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아동학대에 강하게 반응한다. 한창 사랑받으며 자라야 할 어린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나 제가 낳은 자식도 아닌 입양으로 데려온 남의 자식을 때리고 학대하는 양부모에 대한 '특히나' 강력한 적개심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공무원은 법적 근거도 없는 입양가정 방문을 당당하게 하고 남의 귀한 자식 옷을 벗겨 때린 흔적을 찾고, 냉장고 문을 서슴없이 열어 고기반찬은 주는 부모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주체하지 못한 분노를 시민들과 공적 기관까지 나서서 표출한 형태가 그런 식이었다. 문명사회라면 되물어야 한다. 그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고 나타난 모든 행위는 그에 합당한 것이었는지.
통계가 말하는 현실
'정인이 사건' 직전 2년 동안 아동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전부 70명이었다. 대부분이 혈연가정 안에서 일어났고 입양아동은 정인이가 유일했다. 아이들의 죽음이 값을 달리할 수 없다. 모든 아이들의 죽음은 같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표출하는 개별 사건에 대한 분노는 유감스럽지만 가정 형태나 혈연 여부에 따라 그 값을 달리한다. 그것도 매우 편차가 크다.
2001년부터 2016년까지의 연도별 학대 행위자 분류별 평균값은 다음과 같다. 혈연부모 75.52%, 친인척 12.11%인데 계부모 4%를 포함하면 혈연관계인 가해자가 91.63%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 뒤를 이어 대리양육자가 3.48%에 미혼부모가 1.98%다. 입양부모는 0.44%다.
입양가정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저 수치도 결코 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비밀입양이 전부였던 시절까지 감안하면 입양가정이 절대적으로 적지도 않지만 입양부모 0.44% 안에 숨겨진 숫자가 따로 있다.
우리나라의 입양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민법입양과 입양특례법 입양이다. 재혼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의 전혼자녀가 대부분인 민법입양도 사실은 어느 한쪽과의 혈연관계를 기정사실로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비혈연을 속성으로 하는 입양은 입양특례법 입양이다. 이 둘은 입양체계가 엄연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