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들의 결혼식까지 남은 두 달을 꽉 채워가며 자신이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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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들의 결혼식까지 남은 두 달을 꽉 채워가며 자신이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과 다시 만나 인생 회포를 풀었다.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함께 찍었던 옛 사진과 현재의 사진들을 공유하면서 흘러버린 시간과 인연의 한 지점들을 추억했다.
하지만 정작 결혼을 앞둔 당사자인 아들은 돈도 에너지도 많이 드는 청첩장 모임 문화의 폐해를 부르짖으며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남들 다 한다니까 하는 건가 보다 싶어 모임을 시작했지만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만남 날짜를 맞추고 얼마짜리 밥을 먹느냐 정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이걸 왜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밥도 안 사고 청첩장만 주는 것은 양심 없는 행동이며, 축의금에 상당하는 술과 밥은 당연한 예의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돌려받을 확률을 장담할 수 없는 청첩장이 반갑지는 않을 테니, 그런 관계에서 받는 축하 역시 본인도 기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관계의 거리감과 상대방의 그것이 꼭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그런 아들의 눈에는 멀어진 옛 지인들에게 불쑥 연락해서는 청첩장(청구서)을 내밀며 술자리를 이어달리는 아빠의 모습이 적잖이 우려스러우면서도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청첩장이 아빠의 옛 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근심 어린 걱정을 내비치곤 했다.
아들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고, 남편과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여 일주일 일정의 여행 짐을 꾸렸다. 대구, 부산, 거제, 남해에서 소원해진 지 오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먼 곳까지 찾아와 준 친구와 친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다니는 여행이었다.
예고 없이 하는 방문이니만큼 그들의 일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 한잔 함께할 만큼의 시간과 동선을 짰지만, 어느 만남도 다시 또 만났다는 기쁨의 세리머니는 쉽게 끝나지지 않았다. 남편은 매번 거나하게 취했고, 또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예정된 만남을 모두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사람들을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아들 결혼식이 이렇게 내 인생을 한 번 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어. 청첩장 모임이 나한테는 좋은 기회였던 거 같아"라고.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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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깨닫지 못한 내 안의 편견과 아집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덜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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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결혼식 청첩장 모임의 대반전... 아빠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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