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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 8000원' 밥집 찾는 학생·교사...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현장 목소리] 물가는 치솟는데, 학생 체험활동 식비는 그대로... 현실 모르는 교육행정

등록 2023.03.28 17:30수정 2023.03.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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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 pexels

 
코로나 상황이 많이 풀린 덕분에 학교마다 학생들 체험활동 준비로 분주합니다. 저희 학교는 각종학교(대안학교)라 외부 활동이 특히 더 많습니다. 선생님들은 체험활동 관련 일정을 짜고,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참가 동의서 만들고, 학교운영위원회에 올릴 서류를 작성하느라 바쁩니다. 비행기 예약, 숙소 예약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힘든 것은 '식당 찾기'입니다. 

우리 학교 1학년 16명은 4월 초에 제주도에 도보 훈련을 하러 갑니다. 4박 5일간 70km 이상을 걸으며 자신을 성찰하고 친구들을 배려하는 경험을 할 계획입니다. 준비할 때 쉬운 것은 없습니다. 학생들 안전, 교통편, 숙소, 비행기 등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하나씩 해결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밥값 문제는 해결이 무척 어렵습니다.

학생들 체험활동 밥값은 '한 끼 8000원'입니다. 이는 2023학년도 경남도교육청 학교회계예산편성 기본지침상 '경상사업비' 항목에 따라 책정된 매식비입니다. 한 끼 8000원이란 값은 2018년 책정된 특근매식비에 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외식품목 물가지수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2년 12월까지 4년 동안 20.42%가 올랐습니다. 그런데 특근매식비는 물론, 경상사업비 상 매식비도 8000원 그대로입니다.

"선생님, 이러다가 편의점에서 밥 먹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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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5일 한 편의점에 도시락 등 음식이 진열되어 있다. ⓒ 연합뉴스

 
저희 학년은 주요 도보 훈련 일정은 선생님들께서 준비하지만, 식당과 주요 코스 사전 조사는 학생들에게 직접 해보라고 했습니다. 여행 일정을 직접 조사하는 것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주말에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주말에 학생들로부터 톡이 왔습니다.

"선생님, 밥값 8000원 하는 식당이 없어요. 우리 편의점에서 계속 먹어야겠어요."
"선생님, 그냥 우리 돈 더 보태서 밥 먹으면 안 될까요?"


다른 학년을 물어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2학년은 서울 쪽으로 가고 3학년들은 진도를 방문합니다. 다들 밥값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한 끼 8000원 하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기에 밥값에 간식비 3000원을 더해 최대 1만1000원짜리 식당을 찾곤 합니다. 즉 메뉴를 8000원짜리로 통일하고 음료수를 구입했다는 식으로 해서 3000원을 보태 일인당 1만1000원 꼴로 계산하는 겁니다. 간식을 먹지 않고 간식비를 밥값에 보태 식사를 하는 겁니다.


교육청 지침상 매식비와 간식비는 분명 다른 항목이지만, 이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사각지대가 너무 넓습니다. 저희 학교 말고도 수많은 학교와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현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가는 펄펄 뛰는데

이런 방식은 상당히 불편합니다. 밥값에 간식비를 따로 정산해야 합니다. 행여나 식당에서 거절하거나 그 식당에 8000원짜리 메뉴가 없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말은 곧 밥 한 끼 먹기 위해선 물·사탕 등 밥 이외의 음식에 지출을 해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간식비는 3000원입니다. 과자 하나에 몇천 원이나 하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비단 제주도나 서울처럼 외식 물가가 비싸다는 곳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지역에 가도 한 끼 8000원으로 식사할 수 있는 곳은 드뭅니다. 체험활동 일정이 당일이 아닌 경우 매 끼니를 한 식당만 가서 먹는 것도 일정상 무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갑갑해 이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전국 수많은 선생님들이 댓글로 공감했습니다.

"현실성 없는 정책인데 바뀌지 않으니 힘들어요."
"도시락을 먹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도시락 고르는 것도 일이예요."
"간식비 3000원으로 과자 하나 사면 음료수도 사기 힘들어요."
"애들 밥값 가지고 정치질 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국밥도 못 사 먹을 판이예요."
"어린이집 간식도 비슷합니다."
"물가 인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혹시 이 문제로 교육청이 감사에서 뭐라고 하면 저는 할 말이 많습니다. '현실 가능한 예산을 편성해두고 책임을 물어야지 비현실적인 예산을 정해서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것은 바른 행정인가요?'라고 말입니다. 교육행정은 교육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일 것입니다. 지침만 들이대며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8000원 밥집'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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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9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전국시도교육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전북도교육청 제공

 
지난 23일 전북대학교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89회 총회에서 '특근매식비에 물가 인상분을 반영, 기준단가를 1만 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학생들의 체험활동 밥값 역시 이에 준해 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몇천 원에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을 보아 하니,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학교 현장의 정책과 돈을 결정하는 '높은 분'들, 국회의원이나 시도의원들 그리고 교육감들은 한 끼에 얼마짜리 식사를 하길래 아이들의 밥값에 이렇게나 무관심한 걸까요. 인원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한 끼 식사에 따라 아이들의 만족은 크게 엇갈립니다. 

저희는 오늘도 한 끼 8000원하는 식당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제주도 도보 훈련 4박 5일 중 실제 걷는 3박 4일간 70km 이상을 걷는 건 어른들도 힘든 일입니다. 힘들게 걷는 만큼 제대로 먹이고 싶습니다. 제대로 먹어야 열심히 걷고, 자신의 한계도 느껴보고 힘든 과정 속에서 친구들과 격려하고 의지하며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8000원 하는 식당 찾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야 하는 아이들에게 교육활동 중 밥만큼은 제대로 먹이고 싶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교 여건을 보고 밥값을 정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오늘날 학교에서 아이들 밥값 가지고 장난하는 교사들은 없습니다. 학교는 언제까지 현실과 차이가 있는 상태로 유지돼야 하는 걸까요. 결정하기 어려운 일들만 학교 재량이라고 공문을 보내지 마시고 이런 현실적인 일에 학교 재량껏 할 수 있도록 인정해주면 좋겠습니다.

체험활동 시 밥값 현실화, 꼭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체험활동비 #밥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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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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