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풍남문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는 유가족들이 함께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희훈
장례 후 아빠는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이어갔다. 밥을 먹으면 몸이 거부했고 일상에선 '희망'이란 단어가 아예 사라졌다. 어느 날은 주유 중 멍하니 있다가 주유기가 꽂힌 차를 출발시켰고 이후 한동안 운전도 할 수 없었다. 아파트에서 울면 이웃에 피해가 갈까 싶어 아내와 함께 매일 천변을 걸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빠는 효균씨가 잠든 추모관에 다른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심스레 추모관 직원에게 부탁해 쪽지를 건넸고 그들의 유족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유족 모임에도 참여한 아빠는 그곳에서 "100m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살고 있는" 고 추인영씨 유족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던 효균·인영씨 유족은 지난해 12월 시민단체의 도움을 얻어 전주 풍남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광장 외 전국의 유일한 분향소다. 두 희생자를 비롯해 전북 지역 희생자 9명의 영정이 전주 분향소에 올라 있다. 주중·토요일엔 유족·시민단체가 함께, 일요일엔 대부분 유족이 모여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다른 유족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아빠는 큰 힘을 얻었다. 이 과정에 국가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참사 후 가까운 지인들을 만났었어요. 저는 나름 괜찮아진 줄 알고 만났는데 괜찮지 않았더라고요. 그분들이 저를 위로해주기 위해 한 말인데도 전혀 와 닿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나는 거예요. 제가 너무도 변해 있던 것이죠. 지난 설에도 저희 가족은 친인척 모임에 가지 않았어요. 즐거운 명절에 우리가 가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대신 다른 유족들과 함께 분향소를 지켰어요. 아이들을 위한 설 밥상도 차렸고요. 분향소를 만들고 다른 유족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어요. 괴로움 가득했던 표정도 조금은 돌아왔고요. 참사 전만큼은 아니지만 밥도 이제 조금씩 들어가고 있습니다. 분향소를 지키고 진상을 규명하려면 잘 먹어야 하니까요."
▲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위해 묵묵히 걸어 갈겁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아버지 문성철씨 인터뷰 ⓒ 이희훈
아빠는 전주 분향소뿐만 아니라 서울까지 오가며 유가족협의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국정운영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사고로 취급합니다. 현장의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유족을 국민이 아닌 반대편으로 여기는 모습에서 인권과 안전에 관심 없는 권력을 마주했습니다. 이러한 권력자들이 있는 한 제2의 이태원 참사, 제3의 세월호 참사는 언제든 재발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대통령 이하 책임자들의 진솔한 사과 및 처벌이 필요합니다. 이전 정부엔 있었던 안전관리대책이 왜 이번엔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골든타임 내 인명구조가 이뤄지지 않아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부는 뭐가 무서워 유족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해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이 안전과 인권이 보장되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에서 이런 인터뷰에도 응하게 됐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꾸준히 싸울 것입니다. 힘을 가진 정부는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행동하고 움직이면 역사는 올바르게 흐른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행동하면 그것이 밀알이 돼 반드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