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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에 맞섰던 '영웅'..."착한 아이, 왜 먼저 떠났을까요"

[토요일 오후 6시 34분] 든든한 아들이자 유능한 IT개발자 문효균씨

등록 2023.04.01 18:34수정 2023.04.0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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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편집자말]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아버지 문성철씨가 아들의 영정을 고쳐세우고 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아버지 문성철씨가 아들의 영정을 고쳐세우고 있다. 이희훈
 
아들 영정이 놓인 빈소에서 아빠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과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가까운 친구의 말이었다.

"아버지, 저희는 효균이를 '영웅'이라고 불렀어요. 효균이가 반장일 때 일진 애가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혔었거든요. 어느 날 '빵셔틀(빵을 사오도록 하는 괴롭힘)'을 시키는 것을 본 효균이가 일진 애 얼굴에 돈을 집어던지며 '네 손으로 직접 사먹어'라고 그러더라고요. 일진 애가 효균이게게 주먹을 날렸고 효균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죠.

담임 선생님께서 싸운 두 사람을 모두 혼내면서도 돌아가는 효균이를 토닥이며 웃어주셨다고 해요. 그렇게 교실로 돌아온 효균이에게 반 친구들이 박수를 쳐줬어요. 저도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방황을 많이 했는데 실은 효균이 아니었으면 나쁜 짓이나 하며 살아갔을 거예요."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의 아버지 문성철씨.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의 아버지 문성철씨.이희훈

아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급식비가 없는 친구를 걱정하는 등 아들이 바른 마음을 가졌다는 걸 알았지만 이런 얘기는 처음이었다. 그저 운동이 좋아 고등학교 때 축구팀을 만든 줄 알았는데 그것도 "힘이 약한 애들을 일부러 가입시켜 나쁜 애들로부터 보호"했다는 게 아들 친구의 설명이었다. 아빠는 먼저 떠난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왜 하늘은 이렇게 착한 아이를 일찍 데려갔는지'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그 이야길 듣는데 미치겠더라고요. 평소 나쁜 짓 하다 그렇게 됐으면 죗값을 받았다 생각할 텐데 왜 그토록 착한 아이를... 주변에 보면 나쁜 짓 하는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사는데 정직하게 약한 사람을 지켰던 아들은 왜 먼저 떠난 걸까요."

지난 3월 20일 전북 전주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에서 고 문효균(1992년생)씨의 아버지 문성철(55)씨를 만났다.

아빠를 무너뜨린 한 마디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유가족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유가족이희훈
 
효균씨는 유능한 IT개발자였다. 중학교 때부터 주변에 컴퓨터를 조립해주며 스스로 용돈을 벌었을 정도로 이 분야에 관심이 컸다. 그는 4년 전 들어간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항상 투입되곤 했다.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들도 잘 챙겨 '분위기 메이커'로 불린 효균씨였다.

"효균이는 우리 부부의 인생이며 미래를 살아갈 희망이자 꿈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아이들(효균씨 형제) 얼굴을 보는 순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효균이가 아이였을 땐 뒤뚱뒤뚱 걷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벅찼고. 유치원 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놀도록 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그리고 취업한 직장인이 될 때까지 반듯한 모습으로 성장한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유족 제공
 
2022년 10월 29일 아빠는 아내와 함께 내장산을 찾았다. 온 산을 물들인 단풍을 보며 "더없이 행복하고 좋은 날"을 보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아빠는 TV에서 이태원 소식을 접했다. 취업 후 서울로 독립한 효균씨가 잠깐 떠올랐지만 이태원에 갔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효균씨 할아버지에게 "효균이 전화를 용산경찰서에서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는 "지옥이 시작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실종신고를 한 아빠는 얼마 후 아들이 이대목동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병원에 있다는 말만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누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때까지 아빠는 아들이 다쳤을 거라 믿고 있었다. 병간호를 위한 이런저런 짐을 챙기는데 전주의 한 파출소에서 경찰이 찾아왔다. 그는 "서울 양천경찰서 형사에게 전화를 해보라"며 연락처를 넘기고 떠났다. 아빠는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애가 이태원에 갔다가 지금 이대목동병원에 있다는데 다친 것 같아요."
"..."
"지금 짐 싸서 (병간호 하러) 올라가면 될까요?"
"아드님이 사망했습니다."


그 시각 서울에 살던 효균씨 동생은 "형이 다쳐서 입원한 줄로만 알았던" 이대목동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빠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형이 사망했단다"라고 전했다. 동생이 가장 먼저 영안실의 효균씨를 마주했다. 아빠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무너지고 말았다.


"아빠 빨리 와. 무서워."

국가의 공백
 
 전주 풍남문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들고 있는 고 문효균씨의 아버지 문성철씨.
전주 풍남문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들고 있는 고 문효균씨의 아버지 문성철씨.이희훈
 
하루아침에 유족이 돼버린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효균씨를 고향 전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졌다.

"사망진단서가 나와야 효균이를 데려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서류 절차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어서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물었죠. 다들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정부와 서울시에서 '전담 공무원을 일대일로 붙인다'고 발표했었는데 그게 다 허상이었습니다. 나와 있는 공무원들 모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나가라고 하니까 그냥 나와 있는' 모습이었어요.

한참 뒤에 '오늘은 어렵겠다'는 안내를 받고 숙소로 이동해 있는데 새벽 1시가 넘어 이번엔 검사에게 전화가 왔어요. 부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압사라고 다 발표됐는데 무슨 부검이냐'고 항의하자 그제야 서류 절차를 밟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넘어갔지만 다른 유족 중엔 검사 전화에 위압감을 느껴 부검을 허락한 분도 있어요."


아들의 장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던 그 시간을 "영혼 잃은 허깨비처럼" 보내던 아빠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소식을 전해온 사람은 이태원 참사로 숨진 한 여성의 친구였다. 서울과 전주의 장례식장에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는 그는 '애인 사이였던 효균씨와 제 친구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숨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는 아빠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참사 당시 효균씨의 행적이다. 참사 후 5개월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빠는 아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지난 2월 아빠는 아들 애인의 생전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접했다. "결혼을 한다면 이런 남자랑 하고 싶다." 기사에는 그녀가 평소 친구들에게 했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아들의 소박했던 꿈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여행하고 싶었던 아들이었습니다. 살아 있었다면 두 사람이 결혼도 하고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고 그렇게 성실하게 살던 이들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다른 유족을 만나기까지
 
 전주 풍남문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는 유가족들이 함께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전주 풍남문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전주합동분향소는 유가족들이 함께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이희훈
 
장례 후 아빠는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이어갔다. 밥을 먹으면 몸이 거부했고 일상에선 '희망'이란 단어가 아예 사라졌다. 어느 날은 주유 중 멍하니 있다가 주유기가 꽂힌 차를 출발시켰고 이후 한동안 운전도 할 수 없었다. 아파트에서 울면 이웃에 피해가 갈까 싶어 아내와 함께 매일 천변을 걸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빠는 효균씨가 잠든 추모관에 다른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심스레 추모관 직원에게 부탁해 쪽지를 건넸고 그들의 유족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유족 모임에도 참여한 아빠는 그곳에서 "100m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살고 있는" 고 추인영씨 유족과도 인연을 맺게 됐다.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던 효균·인영씨 유족은 지난해 12월 시민단체의 도움을 얻어 전주 풍남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서울광장 외 전국의 유일한 분향소다. 두 희생자를 비롯해 전북 지역 희생자 9명의 영정이 전주 분향소에 올라 있다. 주중·토요일엔 유족·시민단체가 함께, 일요일엔 대부분 유족이 모여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다른 유족들과 만남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아빠는 큰 힘을 얻었다. 이 과정에 국가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참사 후 가까운 지인들을 만났었어요. 저는 나름 괜찮아진 줄 알고 만났는데 괜찮지 않았더라고요. 그분들이 저를 위로해주기 위해 한 말인데도 전혀 와 닿지 않고 오히려 화가 나는 거예요. 제가 너무도 변해 있던 것이죠. 지난 설에도 저희 가족은 친인척 모임에 가지 않았어요. 즐거운 명절에 우리가 가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대신 다른 유족들과 함께 분향소를 지켰어요. 아이들을 위한 설 밥상도 차렸고요. 분향소를 만들고 다른 유족들과 만나면서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어요. 괴로움 가득했던 표정도 조금은 돌아왔고요. 참사 전만큼은 아니지만 밥도 이제 조금씩 들어가고 있습니다. 분향소를 지키고 진상을 규명하려면 잘 먹어야 하니까요."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위해 묵묵히 걸어 갈겁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 아버지 문성철씨 인터뷰 ⓒ 이희훈

 
아빠는 전주 분향소뿐만 아니라 서울까지 오가며 유가족협의회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마음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국정운영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데 이태원 참사를 단순한 사고로 취급합니다. 현장의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유족을 국민이 아닌 반대편으로 여기는 모습에서 인권과 안전에 관심 없는 권력을 마주했습니다. 이러한 권력자들이 있는 한 제2의 이태원 참사, 제3의 세월호 참사는 언제든 재발할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대통령 이하 책임자들의 진솔한 사과 및 처벌이 필요합니다. 이전 정부엔 있었던 안전관리대책이 왜 이번엔 작동하지 않았는지, 왜 골든타임 내 인명구조가 이뤄지지 않아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부는 뭐가 무서워 유족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해하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이 안전과 인권이 보장되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에서 이런 인터뷰에도 응하게 됐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꾸준히 싸울 것입니다. 힘을 가진 정부는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행동하고 움직이면 역사는 올바르게 흐른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행동하면 그것이 밀알이 돼 반드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의 어릴적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문효균씨의 어릴적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희훈
 
<효균씨 엄마의 편지>

아직도 내 아들이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너무 슬퍼.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군복 입고 벌초하는 멋있고 근사한 너의 모습이 생각나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

엄마는 좋은 걸 봐도 행복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아. 말할 때 툭 던지는 시크하면서도 정이 느껴지는 말투도 그리워. 네가 집에 내려오면 항상 엄마와 드라이브 하고, 쇼핑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 떨고 했던 이런 일상의 행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네.

그리워. 보고 싶어.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내 아들을 안아보고 싶어.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다던 내 아들. 한 달에 세 번이나 김치를 담가도 너무 행복했는데... 이번에 김장이랑 수육해서 밥 먹자고 목요일에 아빠랑 통화했었잖아. 이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네. 내 아들이 사라졌어. 아들 없는 세상을 엄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오늘 엄마 꿈에 햇살처럼 따스하고 환한 미소로 웃어줬네. 엄마 꿈에 멋있는 얼굴 보여줘서 너무나 고맙고 사랑한다 아들아. 너의 친구가 그러더라. 효균이는 언제 어디서나 멋진 사람이라 그곳에서도 잘 지낼 거라고. 그래 잘 지내야 돼.

엄마도 우리 아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는지 밝혀내고 효균이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건강하게 잘 지낼게. 그렇게 효균이를 당당하게 보고 싶구나. 효균아 진상을 밝혀 낼 수 있도록 엄마에게 힘을 다오. 그 날까지 꺾이지 않고 잘 견뎌 낼 수 있도록 용기를 다오. 사랑한다.

온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아들 효균아. 사랑한다 효균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 #문효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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