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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치르는 사람과 목욕 하는 사람이 한눈에

[인도] 특별할 것 없는, 바라나시

등록 2023.04.04 17:18수정 2023.04.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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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룸비니에서 다시 국경을 넘어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한 번 와봤던 곳이라, 별 혼란이나 당황도 없이 손쉽게 입국을 마쳤습니다. 인도 측 국경 도시인 소나울리에서 버스를 타고 고락푸르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바라나시는 여행자에게 유명한 땅이죠. 인도인도 외국인도 많이 방문하는 땅입니다. 우타르프라데시 주정부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영향이 심각했던 2021년에도 300만명 이상이 바라나시를 방문했습니다.


바라나시 기차역에 내린 사람들은 모두 한 걸음으로 강이 흐르는 성지로 향합니다. 힌디어로는 '강가(Ganga)'라 부르고, 영어로는 '갠지스'라 부르죠. 인도 북부 거무크(Gaumukh)에서 발원한 갠지스강은 인도 북부 평원을 적시며 흘러갑니다. 인도 문명의 중심이었고, 인도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대로 종교적 의미로 이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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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가 ⓒ Widerstand


많이들 아시다시피, 갠지스강을 끼고 있는 바라나시는 화장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강변의 복잡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강변에 닿게 됩니다. 강변에는 계단 형태의 '가트(Ghat)'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가트를 따라 걷다보면 곧 화장터도 눈에 띄지요. 큰 화장터에서는 벌써 몇 구의 시체가 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아도, 상여를 멘 사람이 골목을 지나 화장터로 들어옵니다. 화려한 상여 뒤로 몇 사람 정도가 따라옵니다. 비어 있는 화장터 한 곳에 시신이 놓여집니다. 곧 그 위로 나무 몇 개를 쌓고, 불을 지핍니다.

마른 장작에 붙은 불은 금세 거세집니다. 검은 연기가 타오르고, 시신은 불에 탑니다. 물론 시신은 잘 감싸두고 있지만, 사람의 형상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침에는 살아있었던 사람이, 해 지는 노을을 맞으며 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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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바라나시 ⓒ Widerstand


바라나시의 화장터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많습니다. 성스러운 강을 찾아 온 인도인도 있고, 생소한 화장 의식을 찾아 온 외국인도 있습니다. 바라나시는 인도를 여행한다면 대부분 방문하는 도시이기도 하니까요. 성지를 찾아 온 북적이는 인파들 사이로 오늘도 상여꾼은 골목을 오갑니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만큼 바라나시와 갠지스강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음도 삶도 거기에 있다고 하죠. 누군가는 인도의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거기서 자아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바라나시를 두고 "역사보다도, 전통보다도, 신화보다도 오래된 도시"라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도시가 썩 특별하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습니다. 화장이야 한국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장례의 방식이고, 절에서는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다비식을 치르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차이가 있다면 그저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화장을 한다는 것 정도겠지요.


단지 얼마간 가트 근처에 앉아 화장터를 바라봤을 뿐이지만, 이곳에서의 장례도 한국과 썩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불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상주로 보이는 사람은 바빠 슬퍼할 틈도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는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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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까르니까 가트의 화장터 ⓒ Widerstand


물론 바라나시는 특별한 성지입니다. 인도인들 중에서는 이곳에서 죽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죠. 그런 이들을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있다고 합니다. 어딜 가나 죽음이 있는, 종교의식의 성지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바라나시는 힌두교 성지로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이슬람교를 믿던 무굴 제국 시절에도, 영국이 지배하던 인도 제국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바라나시에는 힌두교를 믿는 베나레스 왕조가 계속해서 남아 있었죠.

무굴 제국도 인도 제국도 지방정권의 자치를 광범위하게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1948년 베나레스 왕조가 인도 연방에 합류할 때까지 힌두교 왕조의 지배는 계속됐습니다.

지금이라고 썩 다르지 않습니다. 힌두교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우파 정치인인 나렌드라 모디 현 인도 총리의 하원 지역구가 바로 바라나시입니다. 힌두교의 성지로, 지금까지도 힌두교 보수주의의 정수가 되는 도시라 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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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의 보트 ⓒ Widerstand


하지만 바라나시에 꼭 그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바라나시 인구의 30%는 무슬림입니다. 종교적 다양성은 한편으로 갈등의 요소이지만, 종교 간의 교류와 새로운 종교운동의 출현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15세기 활동한 까비르(Kabir)라고 할 수 있겠죠. 바라나시에서 태어나 바라나시에서 일생을 보낸 까비르는 여러 종교의 합치를 주장한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부정하고, 신 앞에서의 평등을 주장했죠. 종교와 교파보다는 신앙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힌두교 개혁운동인 박티(Bakhti) 운동으로 이어지죠.

유사한 시기의 종교개혁 운동가이자 시인 라비다스(Ravidas)도 바라나시에서 성장한 인물입니다.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 나낙도 1507년 바라나시를 여행했고, 바라나시를 포함한 일련의 여정은 시크교 창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죠. 16세기 무굴제국의 황제 악바르는 본인이 무슬림이었음에도 바라나시를 후원하고 힌두 사원의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현재도 바라나시는 다양한 종교 사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땅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숙형 대학교인 바나라스 힌두 대학(BHU)이 위치해 있는 도시니까요. 바나라스 힌두 대학은 창립 당시부터 서구적 교육보다는 인도식의 교육을 추구했습니다.

이 대학은 지금도 힌두 철학이나 산스크리트어, 인도 예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대학 중 하나입니다. 덕분에 인도 교육에서 바라나시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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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 ⓒ Widerstand

오늘도 바라나시에서는 사람이 죽고, 강변에서는 그 사람의 시체를 태웁니다. 하지만 바로 그 도시에서 누군가는 태어나고, 또 교육받을 것입니다. 힌두교의 성지이지만, 그만큼 다양한 종교적 사상이 분출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화장이 이루어지고 그 재를 갠지스강에 뿌립니다. 그 옆에서는 성스러운 강에 몸을 적시는 인도인들이 있습니다.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면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종교적 신화도 있다고 하죠. 장례를 치르는 사람과 목욕을 하는 사람, 그들을 구경하는 여행자들 사이를 짜이를 파는 사람이 헤치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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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의 저녁 ⓒ Widerstand


언급했듯 저는 이 풍경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에나 죽음도 삶도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서는 그 당연한 사실이,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사실이 우리 눈에 띌 뿐입니다.

제게 특별했던 것은 오히려 그들도 우리와 같았다는 사실입니다. 바라나시의 풍경이 우리의 장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언젠가 죽음을 맞고, 또 그 죽음을 둘러싸고 슬퍼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보았습니다. 바라나시는 그 당연한 것을 확인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연한 것으로부터, 그 당연한 죽음으로부터, 새로움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힌두교 개혁 운동이든, 바나라스 대학이든 바라나시가 가진 사상적 힘이 있다면, 그 당연함의 힘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든 죽음을 맞고, 그 죽음 옆에서도 삶은 살아진다는 그런 당연함이 바라나시에는 있었습니다. 당연한 것들을 그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 당연함을 늘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바라나시를 변화의 힘을 가진 성지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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