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니멀리스트이다

등록 2023.04.10 09:09수정 2023.04.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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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이다. 미니멀리스트란 말은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에서 나왔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미니멀라이프라 한다. 물건을 줄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을 말한다. 2010년 무렵 영미권에서 등장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단샤리' 열풍이 시작되어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사회 풍습이 유행했다.


나는 종로 와룡동에서 방이 5개인 한옥에서 살았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집이 한옥이라 나는 한옥이 좋았다. 그 시대엔 부동산 투기라는 것도 없었고 투자라는 개념도 없어 월급 받으면 오로지 적금을 부었다. 그렇게 개미처럼 월급을 굴리고 굴려 장만한 집이라 애착도 많이 갔고 한옥에서 산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2008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세상을 떠나 살기로 작정하고 집을 정리했다.

문제는 내가 가진 많은 살림살이였지만 더는 고민하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죽으면 다 버려야 하는 것들인데 이젠 살림살이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었다. 각종 전자제품은 중고품 전문 매장에 팔고 가구는 옆집과 이웃집 할머니들께 드렸고 책은 주민센터에 기증하고 옷은 재활용 의류 전문 매장에 무료로 드렸다.

나머지 그릇들과 자질구레한 용품들은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누고 집은 게스트하우를 한다는 분에게 전세로 넘기면서 명의도 여동생 이름으로 했다. 나 죽으면 소란스럽지 않은 조용한 장례를 부탁하면서.

그렇게 세상과 등지고 5년을 죽지 않고 살았고 세상으로 돌아와 처음 얻은 집이 빌트인(built-in) 원룸이었다. 혼자 살기 좋았지만, 나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폐가 좋지 않은 내가 살기에는 공간의 밀집도가 놓고 환기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얻은 집이 지금 살고 있는 17평 아파트다. 지은 지 20년 정도 되는 조금은 낡은 집이지만 채광이 좋고 조용하다. 내 가까이 있어야 하는 대학병원이 10분 거리에 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야 하는 백화점이 5분 거리에 있다. 걷기 좋은 공원이 10분 거리에 있고 지하철도 10분이면 가능하다. 더 바랄 것이 없다.


내 집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4인용 식탁이 가장 큰 가구이다. 침대도 없고 소파도 없다. 철이 지난 옷들은 의류 보관 업체에 보관하고 필요시 찾아 입는다. 내가 집에서 보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보관해 준다. 겨울 이불도 마찬가지다.

수수료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내가 가장 사치스럽게 사는 부분은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의류관리기(스타일러)이다. 장마철 빨래 말리는 스트레스는 정말이지 바보 같은 짓이다. 이 좋은 세상에 살면서.

미니멀 라이프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물건이 줄어들면 정리하거나 청소에 소모하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생활이 간소해지면 그만큼 여유 시간이 생기고 홀가분해지는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대형 냉장고를 사용할 때는 무조건 눈에 띄면 사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상해서 버린 음식물이 많았는데 냉장고가 작아지니 식료품 구매도 줄어들었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소형 포장만 사게 된다. 이러다 보니 상해서 버리는 음식이나 재료들도 없어졌다. 당연히 신선한 채소나 과일만 먹게 되고.

부끄러운 과거지만 나는 과일이나 채소를 사면 늘 흠집이 있거나 상한 것들부터 먹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버리게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상한 것을 먹는 사이에 싱싱한 것들도 서서히 시들어가고 결국 나는 새 것 사서 늘 시들고 상한 것들만 먹고 살았다. 미련하게도. 이젠 상한 것이 보여도 싱싱하고 좋은 것부터 먹는다. 어차피 상한 것은 다시 싱싱해지지 않으니까.

물건을 버리는 것만큼 과도한 소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물건을 사기 위해 사용하던 시간을 줄이고 버린 물건으로 생긴 공간을 다시 채우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를 통해 남과 비교하던 습관을 줄여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는 의미도 있다.

적게 소비하여 환경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물건을 줄이는 것은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일에 쓰던 에너지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 물건을 적게 가질수록 떠나거나 행동하기 쉬워진다는 측면도 있다.

2010년 일본에서도 미니멀 라이프에 해당하는 '단샤리(斷捨離)' 열풍이 시작되었다. 단샤리란 '끊고 버리고 떠난다'는 뜻으로 요가의 행법(行法)인 단행(斷行), 사행(捨行), 이행(離行)에서 딴 말이다. 야마시타 히데코(山下秀子)가 자신의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단샤리의 단은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는 것, 샤(사)는 집에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것, 리(이)는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단, 야마시타 히데코 본인은 단샤리는 '과잉'을 배제하려는 태도이므로 '최소한'의 것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단샤리 열풍은 이후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도 관계가 있다고 알려졌다. 지진이 일어나는 다급한 상황에서 집안을 가득 채운 물건은 오히려 위험을 초래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집과 자산이 파괴된 상황을 보며 소유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였다.

이를 계기로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생활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단샤리와 관련된 여러 서적이 출간되었으며 자신을 정리 컨설턴트로 소개하는 곤도 마리에(近藤麻理惠)의 <인생이 두근거리는 정리의 마법>(人生がときめく片づけの魔法)은 100만 부 이상이 팔리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가톨릭 수도자나 불교의 승려들은 거처를 옮길 때 작은 가방 하나만 챙겨야 한다. 아무리 개인 돈으로 구입한 물건이라도 그곳을 떠날 때는 있던 곳에 두고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수도자가 챙겨야 할 짐이 많다는 것은 많은 짐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가진 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어찌 영혼이 자유롭기를 바라겠는가.
#미니멀리스트 #단샤리 #미니멀라이프 #가벼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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