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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기로에 선 평화의 섬, 교동도

[녹색순례] 정전 70주년, 분단의 한강하구길을 걷다

등록 2023.04.11 16:40수정 2023.04.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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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녹색순례’라는 이름으로 활동가들은 그해에 가장 치열했던 환경현장을 찾아 걷습니다. 녹색순례 22년, 그 발걸음은 아파하는 이 땅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23번째 녹색순례단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남북의 철책으로 가로막혀 있는 한강하구를 따라 걷습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그곳을 따라 걸으며 드넓은 갯벌, 생명, 그리고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접해봅니다. 순례는 7박 8일(4월 5일~4월 12일) 동안 진행되며, 3편의 기사를 연재합니다.[기자말]
강화도를 지난 녹색순례단이 찾은 섬은 교동도이다. 교동도는 한강이 임진강과 만나 조강이 되고, 조강이 다시 예성강을 만나 황해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다. 황해도 연안군과 마주한다.

위성 지도를 확대해보면 교동도 북쪽 해안과 연안군 남쪽 해안에서는 바다를 향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시설을 볼 수 있다. 갈빗살방조제라고도 하는 수제공들이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 이룬 거센 물살에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60~70년대 남과 북이 경쟁적으로 간척사업과 제방쌓기를 진행한 흔적이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 개통 9년째다. 신분증만 제시하면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까지도 통과할 수 있지만 걸어서는 아직 건널 수 없다. 순례단은 1시간 넘게 실랑이를 벌였지만 안전확보 어려움과 경계근무 지장을 이유로 군부대에서 불허하여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교동대교를 넘으면서 오른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북녘땅이 가깝고 선명하다. 

교동의 중심지였던 고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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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화개산 자락을 걷고 있는 녹색순례단 ⓒ 녹색연합

 
교동에서 순례단이 처음 찾은 곳은 고구리이다. 교동도의 중심 화개산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백제 아신왕의 격전지였던 관미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관미성을 차지한 후 한반도의 패권은 고구려에게 넘어갔다. 그때부터 교동은 고목근현으로 불리었고 그 중심지는 고구리였다.

인조 때 읍내리에 교동읍성을 쌓기 전까지 교동의 중심지는 고구리였다. 고구리에는 지금도 고목근현청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구저수지와 도로 하나를 경계로 맞닿아 있는 고읍저수지 동쪽 언덕은 공사 중이다. 언덕 위가 바로 고목근현청터이고 길 옆으로 빛바랜 안내판이 서 있다. 화개산 기슭에는 정원이 생겼고 정상에는 전망대가 솟았다. 모노레일이 연신 관광객들을 실어나른다. 교동도가, 고구리가 변하고 있다.

'삼도요충양경인후(三道要衝兩京咽喉)' 교동도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국방의 요충지였다. 황해도와 충청도, 경기도 삼도의 요충이고 고려 개성과 조선 한성의 목구멍과 같은 곳이다. 뱃길은 황해에서 교동을 거쳐 예성강 벽란도로, 임진강 고랑포로, 한강의 마포로 이어졌다. 교동은 한반도에서 황해로 나아가는 곳이었다.

지정학적으로 교동은 한반도 역사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교동향교가 제일 처음 공자상을 모셨던 향교로 수향(首鄕)이라 불리고, 삼도수군통어영이 교동에 설치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교동도를 그동안 우리는 잊고 있었다. 남과 북의 분단은 한강하구를, 교동도를 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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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희생지에 대해 설명 중인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정책위원장 ⓒ 녹색연합

 
202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은 잠시 멈춘 정전 상태이다. 전쟁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떠올리기 싫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1951년 교동에서는 부역혐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여성과 노인, 아이 등 200여 명이 집단학살을 당했다.


화개산 서쪽 기슭 상용리, 도로에서 조금 벗어난 지점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강화군이 세운 '민간인 집단학살사건 희생지' 안내판이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떠올리기 무서워 가렸던 안내판이 새롭게 단장했다.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는 전쟁, 순례단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평화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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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남문 ⓒ 녹색연합

 
화개산 남쪽 읍내리에는 교동읍성이 있다. 석모도와 교동도 사이의 바다 응암량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응암량은 조선시대 경기수영의 수군들이 지키던 바다다. 병자호란 전후 대륙으로부터 침략에 대비해 왕이 피신해야 하는 보장처(保障處)인 강화도를 방어할 목적으로 인조 7년 교동을 도호부로 격상시키고 경기수영을 교동으로 이전했다.

교동의 경기수영은 충청, 경기, 황해도 삼도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역할을 수행한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교동도의 중심이 화개산의 북쪽 고구리에서 남쪽 읍내리로 바뀐 것이다. 상여바위라고도 하는 응암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저어새가 번식한다. '아무리 굽은 나무라도 버리지 않는 법이다' 훈맹정음의 송암 박두성 선생의 말씀을 순례단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로드킬당한 개구리를 안타까워하며 화개산 둘레를 돈다. 

교동의 새로운 변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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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대룡시장 ⓒ 녹색연합

 
한국전쟁으로 교동의 중심이 또 한번 바뀐다. 수많은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고 교동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지금 면사무소가 위치한 대룡리다. 주말이면 대룡시장 주변 도로는 주차로 몸살을 앓는다. 다리가 놓이면서 대룡시장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피난민들의 시장통이었던 곳이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지가 되었다. 여기저기 건물이 들어서고 각종 카페와 음식점이 생겼다. 시장의 철물점도 카페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 몰랐던, 잊혀졌던 교동도가 변하고 있다.

그동안의 변화는 교동과 주민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변화는 상처였고 아픔이었고 갈등이었다. 지금의 변화가 또 다른 아픔과 상처, 갈등이 되지 않기를, 이웃과 생명이 함께 하는 변화이기를, 교동의 지정학적인 가치가 꽃피는 변화이기를 기원한다. 갯벌이 길러낸 시큼한 나문재 나물 맛을 떠올리며 다시 교동대교를 건너 석모수로를 따라 한강하구의 바다 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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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를 걷고 있는 녹색순례단 ⓒ 녹색연합

#녹색연합 #녹색순례 #한강하구 #정전70주년 #교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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