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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3.04.20 11:53수정 2023.04.2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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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의 감각을 열고 인천을 오롯이 음미한다. 인천의 고유한 먹거리와 정성 어린 손맛으로 완성하는 인천 오감 만족 레시피. 이번 요리는 서쪽 바다 깊숙이에서 건져 올린 봄 주꾸미를 넣고 담백하게 끓여 낸 샤부샤부다. 만석동 주꾸미 골목의 원조, 우순임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며느리의 손맛으로 정성스레 준비했다.[기자말] |

▲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주꾸미를 준어, 속명을 죽금어(竹今魚)라고 이른다. '웅크린 물고기'라는 뜻이다. 주꾸미는 한겨울을 바다 깊숙한 바위틈에서 지내다 봄이 오면 알을 잔뜩 품고 연안으로 올라온다.
사진작가 전재천
'탁탁' 바다 한가운데, 소라 껍데기가 배 난간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화수부두에서 닻을 올린 '길정호'의 뱃사람들이 소라방이 달린 줄을 끌어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자그마치 10시간, 길고도 힘겨운 시간이 이어진다.
4월, 해마다 주꾸미 철이면 큰 배들은 먼바다로 나아가 안강망을 던진다. 화수부두에는 길정호처럼 전통 어로 방식인 '소라방잡이'로 주꾸미를 낚는 어선이 아직 많다. 소라방으로 주꾸미를 잡으면 "스트레스가 없어 육질이 연하고 맛이 더 뛰어나다"라고 바닷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 ‘소라방’으로 잡은 주꾸미
사진작가 전재천
문어도 낙지도 아닌 것이 작달막하니 못생겼지만 맛 하나는 기가 막히다. 부드럽게 데친 주꾸미를 입안에 넣고 '톡' 터트리면 쌀알 같은 알이 쏟아져 내린다. '아, 바다의 맛이로구나.' 짭조름한 바다 향과 탱글탱글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식감이 혀끝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다.
봄철 주꾸미는 살이 연하고 통통하며, 몸통에 알도 꽉 들어차 있다. 피로 해소에 좋은 타우린과 철분이 풍부해 영양도 만점이다.
4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주꾸미는 제철을 맞는다. 사실 산란기에 주꾸미를 잡는 건 꽤 미안한 일이다. 주꾸미 철이 지나면 곧 금어기가 온다. 뱃사람들은 5월 햇살 아래 꽃게를 잡고, 가을이면 전어를 낚으며 바다에 머물 것이다. 평생 자연에 빚지며 살아가는 것을 미안해하고, 또 고마워하며.

▲ 부드럽게 데친 주꾸미를 입안에서 ‘톡’ 터트리면 쌀알 같은 알이 쏟아져 내린다. 탱글탱글하면서도 야들야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사진작가 전재천
'며느리도 아는' 주꾸미 할머니 손맛
할머니 주꾸미집에 '할머니'가 안 계시다. 할머니의 안부를 묻자마자 큰아들 김홍명(62) 씨가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어머님이 요즘 편찮으세요. 그래서 눈물이 좀 나네요. 미안합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이 왜 부끄럽다는 것인가. 어느덧 아흔의 나이, 지난겨울부터 갑자기 거동이 어려울 만큼 노쇠해지셨다. 몇 년 전만 해도 주방 일을 놓지 않고, 자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할 만큼 정정하던 어머니였다.
동구 만석동 '주꾸미 골목'. 봄이면 바다에서 잡아 올린 주꾸미가 이 골목으로 행차하고, 가을이면 양념으로 쓸 고추가 빨간 융단처럼 길가에 깔린다. 이 골목의 원조는 우순임(90) 할머니다. 서른 살에 만석고가 밑에서 포장마차로 시작해 전국에서도 찾는 주꾸미 맛집으로 가게를 키워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