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진 앞에 선 엄마. 엄마에게 셋째딸 미정씨는 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 친구 같았고, 애인 같았던 딸이었다.
이희훈
아버지 기일에 맞춰 전주로 내려오던 딸. 터져버린 큰 캐리어를 안아 들고 선 미정씨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엄마, 나 좀 봐."
기일은 8월 한 여름, 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서울에서부터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재료를 늘 이고 지고 왔다. 무게를 못 이긴 캐리어가 어느 날 터져버리기까지 했다. 허리디스크와 무릎 수술로 장보기가 힘든 엄마를 생각해 명절과 기일을 앞두고 제수 준비 목록을 미리 적어 보내던 딸. "엄마가 할게~" 딸의 수고를 만류했지만 "아니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솜씨 좋은 기술자이자, '가족 바라기'였던 아버지는 남매를 위해 직접 큰 어항을 제작하고, 아이들의 침대와 책상을 뚝딱 만들어내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암. 미정씨는 언니들과 함께 서울에서 투병한 아버지를 들여다보고, 전주에서 엄마가 올라올 때마다 배웅을 도맡았다. 딸은 엄마를 "온실 속 화초"로 생각했다. 엄마가 행여 기차를 잘못 탈까 싶어 출발 직전 좌석까지 모셔다 드린 후, 후다닥 내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던 딸.
직장생활부터 경제관념까지. 손끝만 야무진 게 아니었다. 대학원 1학년 때 정원 조경 대회에서 상을 탄 뒤 스물여섯에 첫 취업을 했고, 고민 끝에 상경했다. 조경업무 6년 차 커리어우먼, 미정씨의 꿈은 아름다운 정원을 갖는 것이었다. 월급을 받으면 생활비를 매달 보내고, 엄마와 막둥이 남동생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샀다. 남동생의 청약 통장 첫 입금도 미정씨가 해줬다. '서울로 올라올 것'을 대비한 누나의 선물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아 이직한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참사가 일어났다. 장례식에서 쪽잠을 자며 끝까지 장례를 도운 직장 동료들은 미정씨를 "야무지게 다 해결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엄마는 딸이 골라 선물해준 카키색 옷을 입고, 미정씨가 집에 올 때마다 누웠던 매트리스에 팔을 괴고 누웠다. "미정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말끝에 눈물이 배어 있었다.
엄마는 수술한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거리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