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9월 물놀이 중 사망한 조재윤 하사.
조재윤 하사 유족
"피고인 이은해는 무기징역, 피고인 조현수는 징역 30년에 처한다."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른바 '가평계곡 살인사건'에 대해 지난해 10월 27일 인천지법 형사15부(재판장 이규훈)가 내린 1심 선고결과다(26일 선고된 항소심에서도 이 선고결과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피해자를 물속에 빠진 채로 그대로 둘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사망에 이르게 한 결정적 행위라고 유죄이유를 밝힌 바 있다.
바로 그 가평의 다른 계곡에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2021년 9월경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 조재윤 하사는 임관 아홉 달 만에 가평계곡 물에 빠져 숨졌다. 물을 무서워했던 조 하사는 "남자답게 놀자", "빠지면 구해주겠다"고 다이빙을 권한 선임 부사관들의 말을 믿고 물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그 계곡에서 살아 나오지 못했다.
수영을 잘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물에 빠지면 구해주겠다고 안심시킨 뒤 수심이 깊은 계곡에 스스로 빠지게 하여 죽음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범행수법과 그 결과가 이은해가 벌였다는 '계곡살인사건'과 유사하기에 이 사건엔 '군대판 계곡살인사건', '이은해 판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재판결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비슷한 범죄행위에 완전히 다른 결론
"피고인들은 각 금고 8개월에 처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고인들에 대한 위력행사 가혹행위는 각 무죄."
조재윤 하사 선임 부사관들에 대해 지난 3월 23일 제2지역군사법원 제3부(재판장 중령 김종일)이 내린 선고결과다. 재판부는 당시 부사관들이 안전장비를 갖추고 다이빙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다이빙 지점에서 머뭇거리는 조 하사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해 안전장비 없이 스스로 다이빙하게 했다며 유죄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군형볍상 처벌규정인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에 대해선 "선임들이 조 하사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던 유족은 판결결과를 듣고 무너졌다. 지난 4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고 조재윤 하사 유족인 조아무개씨는 판결 뒤 이렇게 말했다(관련 기사:
계곡 사망 육군 하사 사건... 납득 안 가는 법원 판결 https://omn.kr/23ero).
"우리 아이(조재윤 하사)는 물을 너무도 무서워했어요.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 장소에 해수욕장이 포함되어 있어서 바닷물이 무서워 수학여행까지 포기한 아이예요. 그런 아이가 어떻게 자발적으로 물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군대에서 선임들이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어요. 한두 번 안 간다고 거절했지만 선임들이 가자고 하면 갈 수밖에 없잖아요. 위력에 의해 계곡에 가서 다이빙 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죽기를 자초했다는 말밖에 더 되나요?"
군검찰, '봐주기 수사' 논란
군검찰은 최초 이 사건을 단순 사고사로 정리했다. 두려움에도 도전하려는 동기를 북돋아준 것일 뿐 상급자의 강요는 없었다며, 책임을 수영을 하지 못하면서 선임 부사관들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다이빙을 한 고 조재윤 하사의 잘못으로 돌린 것이다.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서도 피해자의 사망을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조 하사 사망 전 4개월 전에도 같은 계곡에서 다른 부사관이 깊은 물에 빠졌다가 구조되었던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군의 '봐주기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재윤 하사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난 2022년 10월에서야 군검찰이 이전 결론을 뒤집고 조재윤 하사의 선임 부사관 2명을 불구속 기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다만 살인죄가 아니라 '과실치사죄', 그리고 군형법상 '위력행사 가혹행위' 혐의로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