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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로 알게 된 죽음,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죽음

4월 14일 의왕시 청소 현장 노동자의 사망... 하나라도 바뀌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등록 2023.04.25 14:49수정 2023.04.2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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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4월 17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뜬 중대재해사망사고 속보 화면.
2023년 4월 17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뜬 중대재해사망사고 속보 화면.안전보건공단
 
"2023. 4. 14.(금), 10:54
경기도 의왕시 소재 음식물 쓰레기 수거 현장에서
재해자가 차량 적재함에 빠진 음식물 쓰레기통 덮개를 꺼내던 중
차량 적재함의 덮개가 닫히면서 끼임(사망 1명)
※ 위 내용은 신고 및 현재 파악된 내용으로 조사결과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지난 17일 한국안전보건공단 사망사고 속보에 올라온 소식이다. 내가 이 소식을 알게 된 건 4월 14일 저녁 7시 무렵, 세종에서 진행된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하고 올라오는 버스에서였다.  

한 온라인 언론사에서 올린 기사를 봤고, 몇 개의 기사가 더 있었다. '사고 원인은 확인중'이라는 기사와 "같이 일하던 동료가 미처 보지 못하고 실수로 차량 적재함 덮개를 내린 것 같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이 인용된 기사도 있었다.  

자동화로 인원을 줄이고

의왕시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업무를 민간위탁으로 몇 개의 업체에 맡겼고, 매년 계약에 의해 업체들은 의왕시 내에서 담당 구역을 바꿔가며 음식물 쓰레기 수거 업무를 하고 있다. 그날의 사고가 끼임 사고인지 추락사인지 확인하기 위해 검찰에서는 부검을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필자는 동네에서 쓰레기 수거차량이 작업하는 모습을 간혹 본 적이 있다.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량은 운전자가 항상 차량에 타 있었고, 다른 작업자들이 재활용품이 담긴 비닐이나 주머니를 수거차량 뒤로 던지고 나면 차량이 조금씩 움직이며 다시 재활용품이 모인 장소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은 작업자 한 분이 음식물 쓰레기통을 끌고와서 수거차량에 부착된 리프트 같은데 올리면 음식물 쓰레기통이 자동으로 올라가 쓰레기를 쏟아내고 내려왔다. 자동이라 더 쉬워서인지 음식물 쓰레기 수거업무는 2인 1조,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무 등은 3인 1조로 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폐기물 관리법에는 폐기물 수거작업은 운전자를 포함해 3인 1조를 기본으로 하되, 지자체가 3인 1조 작업 예외 사유를 조례에 반영한 경우는 조례를 따르도록 돼 있다. '의왕시 폐기물관리에 관한 조례'에는 폐기물처리시설의 반입 시간을 고려해 시장이 작업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가로청소작업 또는 자동 상차장치가 부착된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 또는 수거 완료된 생활폐기물을 차량에 싣고 운반하는 작업으로 시장이 2명 이하의 인원으로 작업이 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작업인원을 조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 내용들이 있다. 이미 폐기물관리법에 자동 장치가 있는 경우는 3인 1조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었다.

조례에는 운전자 포함 2인 1조라고 명시돼 있진 않았지만 현장 작업자들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이해하는 것처럼 음식물 쓰레기 수거작업은 운전자 포함 2명이 작업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사고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사고의 이유나 경위를 알기 위해서 작업 차량이 어떻게 가동되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작업이 이뤄지는 지 확인해봤다.

자동화 설비가 일부 도입됐다는 것이 위험요소가 사라지는 것과 동일시 한 상황도 이번 중대재해의 문제요인이지 않을까. 운전자 포함 2인 1조였다면 운전자는 운전업무와 쓰레기통 수거업무를 함께해야 한다. 골목마다 다니면서 일정 거리에 차를 세워두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끌고 와서 올리고 비워내는 작업을 하고 다시 운전대에 올라야 한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작업을 3인 1조로 할 때 운전자는 운전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 수거작업은 그렇지 않은 시스템이다. 운전의 성격이 달라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또한 자동으로 작업이 진행될 때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시스템을 멈출 수 있는 비상시스템도 동일하게 마련돼야 한다. 회전하는 기계나 반죽기에 사람의 신체나 옷이 끼지 않도록 덮개가 달려있거나 비상멈춤 장치가 달려있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안전장치다. SPL평택공장의 중대재해는 작업속도를 올리려고 설치돼 있던 안전장치인 덮개를 제거해서 발생했는데 그 사고에서도 비상멈춤 장치가 달려 있기는 했으나 사고자가 누를 수는 없는 위치였다.

사고자가 비상멈춤 장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 다른 누군가가 인지하여 멈추도록 만드는 시스템도 필요하지만 지하철 문의 센서처럼 무엇이라도 끼면 문이 닫히지 않거나 프레스기계에 손이 있거나 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고 내려오지 않도록 만든 장치 같은 자동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이번 사고에도 이런 다양한 안전시스템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2022년 환경부에서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을 통해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차량 적재함 내부의 음식물쓰레기를 골고루 펴주기 위해 적재함 위에 올라가 작업할 때 낙상 위험이 높으므로 작업 상 불가피하게 적재함 위에 올라가야 하는 차량 외에는 고정식 사다리를 제거하는 방안"을 권장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 사고가 나서 세워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수거차량에는 적재함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사고가 나서 세워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수거차량에는 적재함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다. 권미정
 
수거차량의 조작 장치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의 조작장치에는 작동법이 붙여져 있는 경우도 있고, 무엇을 위한 버튼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수거차량의 조작 장치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의 조작장치에는 작동법이 붙여져 있는 경우도 있고, 무엇을 위한 버튼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권미정
 
이번 사고차량에는 적재함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달려 있었고, 작업자는 그 사다리를 올라가서 음식물 쓰레기 위에 떨어진 쓰레기통 뚜껑을 주우려다 차량 적재함의 철판 덮개에 끼인 것으로 보여진다. 오래된 음식물 쓰레기통의 경우 뚜껑이 분리될 가능성은 항상 있고,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또 사고 차량에는 삽도 달려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골고루 펴주기 위한 삽인지 알 수는 없다. 업체마다 모두 같은 작동원리를 가진 특장 차량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와 위탁계약을 하는 대행업체들은 계약하는 지자체에 등록돼 있어야 하니 사실 거의 매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계약에 따라 노동자들은 가 업체에서 나 업체로 옮기기도 하고, 업체에 따라 작업 설비가 다르거나 작업장소가 달라진다. 사장과 업체만 달라질 뿐 작업자는 달라지지 않는데 왜 매년 이렇게 위탁업체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죽음의 이유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 사고차량은 멈춰 있고 다른 노동자들은 다른 차량으로 일을 하고 있다. 
 
 사고가 난 차량 앞에 붙여져 있는 작업중지 명령서.
사고가 난 차량 앞에 붙여져 있는 작업중지 명령서.권미정
 
업무를 위탁한 지자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자체 홈페이지에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 지자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공을 위한 작업을 하다가 한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사망 소식도, 조의를 표하지도,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지자체는 표하지 않았다. 그날 오전에 발생한 사고를 직접 보거나 들었을 주민들과 또 다른 청소노동자들에게 전하는 위로도 없었다.

의왕시의 위탁업무 계약 조건에서 위험을 낳은 측면은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보겠다는 책임있는 태도도 없었다. 전국자치단체공무직본부 의왕시지회만이 환경미화원 노동자의 죽음에 명복을 빌며, 지자체와 노동부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지금이라도 노동조합과 지자체의 특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 죽음을 만든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논의하고, 다시 이런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에서 위탁 업무를 주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위탁 업무이기에 더욱 위탁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문제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함께 논의되고 이야기돼야 한다. 위로도, 사과도, 성명도 없었던 지자체였지만 지금이라도 시의 업무를 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대한 환경과 조건을 책임지는 공적기관의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래서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에 모든 행정기관이 4시 28분에 맞춰 1분 묵념을 하는 상상도 해본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권미정씨는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입니다.
#지자체 민간위탁 #의왕시 음식물 쓰레기 수거 #김용균재단 #권미정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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