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엘 공원 안의 학교삼삼오오 농구와 축구를 하는 아이들
유종선
여행 도착 후 해온 모든 행동 중에 처음으로 결이 다른 행위였다. 돈이 오가지 않고, 관광의 목적 없이, 내가 현지인에게 호의를 갖고 도움을 준 행위. 그리고 그 행위로 인해 아이들의 공놀이는 당혹감 없이 신나게 다시 이어졌다. 마침 그 순간에 그 곳을 지나간 사람이 우리 밖에 없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상호작용. 그 작은 순간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한 10여 초간, 스페인 현지인과 한국인 관광객이 아니라 당황한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어른이었던 순간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결이 다른 행위가 여행자의 정체성을 잠시 가볍게 흔들어주는 느낌이 좋았다.
악천 후 여행의 참맛
비가 내렸다. 준비해온 노란 우비를 우주에게 입히고 나는 우산을 썼다. 잔뜩 흐리고 을씨년스러웠다. 바르셀로나에 이런 날씨는 드물다고 했다. 수학여행 온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다가 우주의 노란 우비를 보고 귀엽다는 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닐 때 은근히 뿌듯하면서 의기양양해지는 순간.
구엘 공원, 까사 밀라, 까사 바뜨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설명을 듣는 동안 빗줄기는 강해졌고 바람은 세찼으며 기온은 떨어졌다. 사람들이 점점 다 젖으면서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어보이는 건 가이드였다. 젊은 여성분이었는데, 우산을 쓰지도 못하고 패드를 꺼내 계속 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코 끝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워보였다.
그만 설명하고 해산해도 될 정도로 모두들 추운 느낌이었지만, 그런 제안을 하기엔 모두가 먼 곳으로 여행 와서 가이드를 신청한 사람들이었다. 가이드 역시 자기 할 바를 다 해야만 개운할 입장일 것이다. 모두 오들오들 떨면서, 또 오들오들 떠는 가이드를 안쓰러워하면서 투어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