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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영 변호사 ⓒ 이희훈
14년 전인 2009년 7월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4명이 막걸리를 마시다가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알고 보니 막걸리엔 청산가리가 들어있었다. 수사 결과는 사망한 여성의 남편과 딸이 공모해 살해한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남편은 무기징역, 딸은 2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사건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남편과 딸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있다. 바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다. 박 변호사가 어떤 계기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들어보고자, 지난 4월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14년 전인 2009년 전남 순천에서 일어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심 변호를 맡으셨잖아요.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사건은 제가 몇 년 전에 한 작가분으로부터 '억울해 보이니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거예요. <부러진 화살> 쓰신 서형 작가님인데요. 그 분으로부터 본인이 수집한 기록을 받았고, 그 분이 <오마이뉴스>에 심층 취재 기사를 굉장히 많이 낸 터라(관련기사 : 나흘간의 기억 https://omn.kr/1q5yf), 취재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제가 제때 검토를 잘 했으면 지금 알게 된 문제들을 몇 년 전에 확인했을 텐데 사실 그때 제가 선입견을 갖고 안이한 판단을 했습니다."
- 무슨 선입견이요?
"이 사건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세 번이나 방송을 했거든요. 또 서형 작가도 열정을 갖고 사건의 문제점을 심층 취재했더라고요. 이 사건이 억울해 보인다는 건 알겠는데 재심이라는 것은 무죄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필요하고 또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를 범죄로 구성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재심 사유 입증은 좀 어렵지 않겠냐고 너무 쉽게 판단했던 거예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사건을 사실상 방치했죠.
그런데 <당신이 혹하는 사이>라는 SBS 프로그램 작가가 다시 한 번 사건을 방송으로 다뤄보자는 거예요. 저는 사건을 오랫동안 방치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순천지검 창고에 보관 중이던 기록 보게 됐던 거고, 그 기록 안에서 조사 과정이 담긴 영상 녹화물을 발견했어요. 또 지금 검사가 제출하지 않은 상당히 많은 분량의 경찰 수사 기록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그 수사 기록 안에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실체에 들어맞는 자백이 실제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
-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개요부터 설명해 주세요.
"이 사건은 2009년 7월 6일 발생한 사건입니다. 관할은 순천이지만 구례와 가까운 시골 마을에서 발생했고요. 누군가가 피해자 부부가 살던 집 마당에다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갖다 놨어요. 남편은 마당에 있던 막걸리 봉지를 토방에 올려놨고요. 피해자가 일 나갈 때 가져가게끔 둔 거죠. 도시 같으면 문 앞에 놓인 음식을 먹는 게 부담스럽죠. 근데 시골이니까, 서로 일도 거들어 주고 먹는 것도 나눠 먹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아침에 일하러 가는데 그걸 가져가라고 누가 놔뒀나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피해자는 막걸리가 담긴 봉지를 들고 갔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나눠 마신 겁니다. 안타깝게 두 분이 돌아가셨고 뭔가 이상해서 뱉어낸 두 분은 병원 치료로 다행히 생명을 건진 사건입니다."
- 그럼 왜 가족이 용의자로 지목된 건가요?
"어쨌든 그 막걸리를 토방에 올려놓은 분이 남편이지 않습니까. 경찰은 남편 등 가족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아주 치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수사도 광범위하게 진행됐고요. 관련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와 수사관이 별다른 근거 없이 본인들의 머릿속 시나리오로 사건을 짜 맞춰 버렸습니다. 짜 맞추는 과정에서 강압, 회유, 기만 등 온갖 잘못된 수사기법이 동원됐고요."
- 그럼, 사건이 완전히 조작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살인하지 않았고 부녀 성관계라는 범행 동기도 조작됐습니다. 제가 확신하는 이유는 조사 과정이 담긴 녹화 영상이에요."
- 영상이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당시 재판에선 조서가 결정적인 증거였죠. 부녀의 진술이 담긴 조서를 보면, 구체적인 자백을 한 것으로 정리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서상의 자백 내용이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조서를 보면 얼마든지 유죄 판결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조서가 이렇게 중요한 증거인데 실제 진술대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실제 진술대로 기재된 것인지는 영상 녹화가 없는 경우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이 사건의 영상 녹화가 모든 조사 과정을 다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총 분량이 11시간 정도 된단 말입니다. 그걸 자세히 살펴보면, 장시간 부인 하는데도 그 부인 과정을 상당히 많이 누락시켰고요. 본인들의 시나리오 주입시키고 모순은 제거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사실 영상 녹화가 안 된 조사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겠죠. 그러다 보니까 사건의 실체에 들어맞는 자백 자체가 실제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사건이에요."
- 변호사님의 다른 인터뷰 보니 아버지는 한글을 못 쓰시고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도 못 외우셨다고 나와요.
"영상을 보면, 강압수사 하는 상황이 많이 나와요. 이분들이 저항하기가 힘든 사법 약자였습니다.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못 나왔고요. 글을 쓰거나 읽는 걸 상당히 어려워하는 분이에요. 영상 녹화를 보면 수사관도 글을 못 쓴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조서상에 있는 자필로 기재되어 있는 '예, 아니요, 없음' 이런 단어도 제대로 못 쓰셨고요. 영상을 보면 주민등록번호도 제대로 못 외웠다고 하시거든요. 말과 글은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잖아요. 글을 쓰거나 읽기 어려운 분들, 자신의 언어로 경험과 상황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강압 수사에 노출이 되면 안타까운 일이 많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을 이 영상 보면서 더 하게 됐습니다."
- 자필 진술서는 어떻게 된 건가요?
"수사 기록에는 교도소에서 썼고 검사실로 가져와 제출한 걸로 되어 있지만 그건 아니고, 제출 과정도 조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검사실에서 검사나 수사관이 미리 작성해 놓은 내용을 보고 베낀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대로 옮겨 쓰게끔 했죠. 오타가 거의 없고 단어 선택이나 문장이 자연스럽거든요."
- 아버지가 자필로 쓴 것은 맞나요?
"자필인 건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이것까지 조작했다고 보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분이 과거에 글씨를 좀 쓰는 분이었다면 과거 글씨를 놓고 비교하겠는데 과거의 필체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분이 십수 년째 수감 중인데, 교도소에서 성경을 필사하면서 한글을 배웠단 말이에요. 우리가 초등학교 때 글씨와 중고등학교 글씨가 다르잖아요. 초등학교 입학 전 필적과 고유의 특징이나 생김새가 자리 잡은 시점의 필적을 비교한다는 건 모순이잖아요."
"피고인들 무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는 제출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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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가리 막걸리살인사건 현장검증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넣어 이 막걸리를 마신 아내(어머니)를 숨지게한 혐의로 구속, 재판 중인 부녀의 '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현장검증이 2009년 12월 16일 피해자 집 등에서 실시됐다. ⓒ 연합뉴스
- 딸의 진술서는 어떤가요?
"따님의 진술서도 자연스럽게 작성된 건 아니라고 봐요. 따님이 글을 못 쓰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도 강압수사에 굉장히 취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들은 내용 등을 토대로 검사와 수사관의 시나리오에 맞는 자술서를 쓴 것 같아요."
- 검사가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는 뺐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어떤 건가요?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피고인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도 수집해야 하지만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서 그 법정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근데 이 사건에서는 경찰이 광범위한 수사를 했고 그 수사 결과물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에서 피고인들 무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은 제출하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막걸리 구입 경로의 CCTV상 아버지 차량의 이동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그걸 제출 안 했고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50명이 넘는 농부의 진술들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압수수색 과정에서 창고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스푼을 청산염 타는 데 활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국과수 감정 받았는데 전혀 검출되지 않았거든요. 그 감정서도 제출하지 않았고요. 또 따님의 지적 능력 관련된 자료도 상당히 의미 있는데 이런 부분도 일부 누락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재심사유로 주장하였습니다."
- 지금 피해자들은 어떤 상황인가요?
"아버지는 순천교도소에, 따님은 지금 청주 여자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따님은 건강 상태에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아버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요. 하루빨리 재심이 필요한 이유는 억울함을 풀고 건강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이들이 진범이 아니라면 진범이 어딘가엔 있다는 거잖아요. 시간이 꽤 지난 상황이라 범인을 밝힐 수 있을까요?
"살인사건은 2015년 형사소송법 개정(태완이법)으로 공소시효가 폐지돼서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지금 수감되어 있는 분들이 무죄를 받게 되면 재수사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재수사해야겠죠. 근데 14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사건에서 진범으로부터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라는 분들이 제보해서 사건이 해결된 사례들이 있기는 하죠. 이 사건도 이 사건의 실체, 진범에 대해서 아시는 분이 제보를 적극적으로 해 주시면 그게 계기가 돼서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
-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앞으로의 과정은, 5월 23일에 두 번째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심문 기일이 열리고요. 이런 심문 기일이 몇 번 더 열릴 수도 있어요. 절차적인 문제에 대한 결정은 법원이 합니다. 수감되어 있는 분들 입장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하루빨리 받는 것도 의미가 크거든요.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절차 진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하겠습니다. 제 목표는 쌀쌀해지기 전에 이분들이 석방되는 겁니다."
"11시간 분량 영상 중 문제가 되는 부분 법정서 재생할 것"
- 중요하게 봐야 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법정에서 검사가 감춘 무죄 증거들을 제시하고 설명할 겁니다. 11시간 분량의 영상녹화 중에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요약 정리해서 1, 2시간 재생하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방청하시는 분들이나 기자분들에게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이 사건은 영상이 있다 보니까 당시 검찰 수사 과정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제가 좀 우려하는 건 적지 않은 검찰수사가 이렇게 진행되는 걸로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2009년에 발생했던 사건이잖아요. 14년 전과 달리 수사환경이 인권적으로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도 감안해달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반대로 검찰한테는 과거의 문제로만 보지 말라는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지금도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형사사법 약자들의 위축된 심리를 배려하는 수사, 이들의 삶과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한 관심과 함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에도 관심을 갖는 것이 억울한 사건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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