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나물로 차린 한 상.
이수현
3월의 어느 날 친정집으로 바로 퇴근해 엄마가 차려주신 명이나물 특식을 받아 먹었다. 데친 명이나물 좋아하는 손녀를 꼭 불러서 먹이라고 신신당부한 할머니의 말씀은 지켜야 하니까! 할머니와 화상통화도 했다. 비록 화상통화가 익숙치 않은 할머니 이마만 실컷 보다 끊겼지만.
할머니가 "내 새꾸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거 보는게 제일 행복하데이~~" 하자, 엄마가 옆에서 "나도~~"라며 맞장구를 친다. 그 옆에서 나는 두 볼 가득 쌀밥에 명이나물 반찬을 우물거린다. 할머니와 엄마의 내리사랑을 듬뿍 받고 바리바리 양손에 각종 명이나물 반찬을 싸왔다. 명이절임, 데친 명이, 명이전, 명이 김치... 끝도 없이 나오는 명이 반찬에 남편이 "와, 이건 사치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외할머니가 울릉도에서 보내온 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꼭 나누어 먹었다. 우리만 먹기엔 너무 많기도 하고, 사람들은 귀한 울릉도 나물을 좋아하니 엄마는 울릉도 먹거리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명이 뿐만 아니라 울릉도 취나물과 오징어와 호박엿은 항상 비닐과 종이가방에 싸여 어디론가 기분 좋은 심부름으로 보내졌다. 그러면 다시 직접 담근 파김치나 맛간장, 매실액 등이 보답으로 돌아오곤 했다.
얼마 전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을 때 명이 절임을 조금씩 나눠주었다. 엄마가 하듯이 지퍼락에 조금씩 소분하고, 흐르지 않게 한번 더 봉지로 싸서 작은 종이 가방에 넣어보냈다. 집을 나설 때 주는 것을 깜빡해 주차장에 있는 친구들을 불러세워 가까스로 전해 줬는데, 차창으로 종이가방을 건네는 그 순간 타임워프를 한 것 같았다."명이 절임 좀 맛보라고~" 하는 내 모습에서 어릴 때 봤던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
그 주말 친구들에게서 명이절임 먹으려고 고기를 사러 간다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는 연락이 쇄도했다. 할머니, 엄마, 이거였구나! 이 뿌듯함.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환해지는 이 기분. 우리집 여자들의 나눔 정신은 외탁이었나 봐.
사랑하는 딸과 손녀에게 가장 귀한 것을 나눠주고, 그것을 또 소중한 사람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 그 마음은 겨울철 얼어있던 눈이 녹아 명이가 피어나듯 내리사랑으로 나에게, 그리고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4년 넘게 울릉도를 방문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할머니 댁에 놀러 가야겠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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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기쁨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은 취미부자 직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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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사치다" 남편이 혀를 내두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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