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과학으로 포장한 공포 마케팅, 속지 말고 팩트체크하세요"

선정수 팩트체커가 쓴 <가짜과학 세상을 여행하는 팩트체커를 위한 안내서>

등록 2023.05.03 15:27수정 2023.05.03 15:28
1
원고료로 응원
a

선정수 뉴스톱 팩트체커가 쓴 '가짜과학 세상을 여행하는 팩트체커를 위한 안내서' ⓒ 빚은책들

 
2022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등 보수 야당은 이전 정부를 향해 '과학 방역'이 아닌 '정치 방역'이라고 비난했다. 그 뒤 정권은 바뀌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실내외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 방역 정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백신 무용론' 등을 앞세워 '과학 방역'을 방해했던 정치인과 보수 언론도 조용히 입을 닫았다.

'과학적으로 포장된 거짓말'에 맞선 팩트체커 투쟁기

코로나19 시기 편향된 진영 논리나 장삿속을 '과학적'이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유사 과학'이 함께 창궐했다. 팩트체크 전문 매체 '뉴스톱'에서 일하는 선정수 팩트체커가 쓴 <가짜과학 세상을 여행하는 팩트체커를 위한 안내서>(아래 '팩트체커 안내서')는 당시 과학의 탈을 쓴 허위정보 확산을 막으려고 최전선에 싸웠던 팩트체커의 생생한 투쟁기다.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들통 난 '불가리스 참사'가 대표적이다. 남양유업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되던 지난 2021년 4월 13일 자사의 유산균 음료를 마시면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허위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언론 보도가 확산되면서 이날 주요 마트와 편의점에서 불가리스 품절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질병관리청과 감염병 전문가 등을 통한 팩트체크 보도 덕에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과대광고로 드러났고, 남양유업은 더 강한 역풍을 맞았다('팩트체커 안내서' 제2장 '과학을 사칭한 상술, 검증 못한 언론' 편)
 
a

남양유업이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자 실제 효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2021년 4월 1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 연합뉴스

 
언론도 공범이었다. 남양유업 산하 연구소에서 발표한 실험 결과임에도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 보도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과학을 전공한 언론사 기자나 데스크가 드물다 보니 과학을 사칭한 가짜 과학을 거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역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선정수 팩트체커도 환경전문기자가 되려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 환경보건학을 공부했고 생물분류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다른 '문과 출신' 기자들이 놓치기 쉬운 '가짜 과학'을 가려낼 안목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과학 사칭, 언론도 공범이었다

이런 자신감은 그를 행동파 언론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허위정보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정부 부처에 직접 고발까지 했다. 코로나19 예방 제품이라고 속인 '코고리'와의 투쟁기가 대표적이다.


그는 평범한 코골이 방지 제품에 항균 탈취 효과가 있어 코로나19와 호흡기 질환을 퇴치한다고 허위 광고한 제조사를 상대로 팩트체크 기사를 12건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결국 법원은 지난 2022년 12월 이 업체의 유죄를 인정하고 500만 원 벌금형을 내렸다(이 책 제1장 '지적당하지 않은 악의' 중에서).

저자는 "오늘도 많은 업자가 온갖 제품을 만들고 과학적으로 검증됐다는 여러 가지 숫자와 증명을 제시하며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와 인력으로는 모든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다. 언론이 그 중간에서 검증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오히려 돈을 받고 문제 많은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 책 24쪽 중에서).

그렇다면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는 가짜 과학에서 자유로울까? 한동안 아파트나 빌딩 문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 등 사람 손이 닿는 곳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구리 성분이 들어간 항균필름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까지 들여 관내 아파트 등에 항균필름을 배포했지만, 실제 감염 방지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

선정수 팩트체커는 국립보건연구원에서 항균필름 감염력 억제 효능 분석 연구를 발주하고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자, 국회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입수해 공개했다. 국내 시판 중인 항균필름 30종 가운데 8종만 2시간에서 24시간 접촉 후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8종조차 2시간 이내 접촉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얼마나 막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이 책 제7장 '근거 없는 비과학적 권고' 중에서).

이 책은 이처럼 과학을 사칭한 가짜과학 팩트체크 사례를 3부로 나눠 21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는 '음이온 효과'를 강조했지만 오히려 암 발생 위험만 키운 라돈 침대 사태를 비롯해 과학을 사칭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유해한 상품 사례를 소개했고, 2부에서는 과학 사칭에 언론이 큰 역할을 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3부에서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겨냥한 비과학적 흑색선전 등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든 과학 사칭 사례를 짚었다.

최춘식 의원의 통계 왜곡... "감염은 내 편 네 편을 따지지 않는다"

각 장마다 '권위를 등에 업은 호소', '무지에 대한 공포', '일반화의 오류' 등 키워드 별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 코로나19 방역 체계까지 위협한 대표적 키워드가 '통계 왜곡'이다. '백신 미접종자보다 백신 접종 사망자가 절반 이상'이라거나 '코로나는 200% 감기 바이러스' 같은 통계 왜곡이 더 위험했던 이유는, 허위 정보를 퍼뜨린 장본인이 당시 방역 정책에 영향력이 큰 제1야당 국민의힘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a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20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최춘식 의원은 2021년 12월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백신 접종 그룹이 절반을 넘겼다며, 이른바 '백신 무용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백신 접종 완료율은 81.7%에 달했기 때문에 코로나19 사망자 가운데 백신 접종자가 더 많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백신 예방 효과를 정확히 따지려면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수 대비 각각의 코로나19 감염자 수나 사망자 수를 비교해야 했다. 당시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백신 미접종군의 감염률은 2차 접종 완료군보다 2.4배 높았고, 위중증률은 11배, 사망 발생률은 9배나 높았다(이 책 제15장 '왜곡된 통계는 과학과 양립할 수 없다' 중에서).

<오마이뉴스>도 지난 2022년 1월 "우리나라 독감 사망자 수가 코로나19 사망자 수보다 더 많다"는 최 의원 주장을 검증해 '거짓'으로 판정했다. 최 의원은 대형마트 방역 패스 폐지를 주장하면서, 당시 코로나19 사망자 5015명 가운데 기저질환이 확인되지 않은 169명만 독감 사망자 수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통계를 왜곡했다. 하지만 당시 공식적인 코로나19의 누적 치명률은 독감 치명률의 10배에 달했다([오마이팩트] "독감 사망자가 코로나19보다 많다" 최춘식 의원 주장은 '거짓').

'과학 방역'을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대선 당시 최춘식 의원을 선대위 정책본부 코로나회복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저자는 "진영 논리에 매몰됐기 때문이든, 맹목적으로 상대 진영을 비판하기 위함이든, 근거가 빈약한 주장은 반드시 반박당하게 된다. 국회의원이라는 지위가 엉터리 근거에 권위를 부여하지 못한다"면서 "감염은 내 편 네 편을 따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이 책 143-144쪽 중에서).
 
"우리 주위에 온갖 종류의 유사과학과 비과학이 판치고 있습니다. 과학을 사칭하는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약간의 피곤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기꾼은 현대인의 '시간 부족'을 노리고 있으니까요. 이들은 온갖 위험을 부풀려 소비자의 공포심을 극대화한 뒤에 자신들의 물건을 사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듯이 선전합니다. 바로 '공포 마케팅'이죠. 그 대척점에는 현존하는 위험을 억지로 과소평가하는 '안심팔이'가 있습니다. 사기꾼들은 각종 숫자와 화학식을 내세우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전혀 과학적이지 않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이 책 머리말 중에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과학적으로 포장된 거짓말'로 제품이나 음식을 만드는 얄팍한 상술을 꼬집었지만, 유권자의 표를 사려고 공포심을 자극하거나 정권의 안위를 위해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가짜과학 세상을 여행하는 팩트체커를 위한 안내서

선정수 (지은이),
빚은책들, 2023


#가짜과학팩트체커 #선정수 #가짜뉴스 #팩트체크 #최춘식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4. 4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5. 5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