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플랫폼 속 분투하는 웹툰·웹소설 작가들의 잔혹사

[웹툰/웹소설 플랫폼, 이윤은 챙기고 건강은 빼고 ①]

등록 2023.05.08 10:17수정 2023.05.0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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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대리운전 기사를 찾으며, 가사노동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많은 사람이 플랫폼을 찾는다. 또, 플랫폼에서 좋아하는 웹툰, 웹소설을 언제든 찾아볼 수도 있다. "복수의 집단이 교류하는 디지털 인프라 구조이며, 소비자, 광고주, 서비스 제공자, 생산자, 공급자, 심지어 물리적 객체까지 서로 다른 이용자를 만나게 하는 매개자"라고 정의할 수 있는 플랫폼.1) 점차 다종다양해지는 플랫폼의 세계에서,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고, 또 좋아하는 것을 즐긴다.

작가와 제작사는 카카오나 네이버 등 플랫폼에 웹툰/웹소설을 게시하고 있다. 이들 플랫폼에는 해마다 몇천 편의 웹툰이 게시되고 있고, 다양한 장르의 웹소설이 연재되거나 단행본으로 출판되고 있다. 웹소설이 웹툰으로 제작되기도,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웹툰 산업의 국내 연 매출액은 매년 증가해 2021년 기준 1조 566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년 대비 48.6%나 증가한 수치다.2) 웹툰작가 수 역시 2021 년 기준 9326명이 활동 중이고 전년 대비 25.9% 증가했다.3) 웹툰 시장은 일본, 북미, 중국, 홍콩 등 해외로도 확장되어, 2021년 기준 47억 달러(약 6조 2500억 원)의 규모를 자랑했다.4) 이렇게 날로 커가는 플랫폼 시장을 자랑하지만 그 속의 수많은 작가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건강을 해쳐가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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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의 빽빽한 노동시간을 보여주는 일정표. 왼쪽은 한 작품만 할 때의 일정이고, 오른쪽은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할 때라서 쉴 틈이 거의 없다. ⓒ 웹툰작가노동조합 하신아 위원장

 
책임은 없고 통제는 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

플랫폼에 작품을 게시하는 웹툰/웹소설 작가는 '프리랜서', '개인 사업자'이기에 작품을 자율적으로 올리고 계약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플랫폼의 노동 통제, 불공정 계약과 수익구조 등 여러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휴재나 컷 수 조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먼저 웹툰, 웹소설 업계에 존재하는 독특한 수익 지급 방식, MG(minimum guarantee)가 있다. MG란 작가가 플랫폼이나 제작사와 최소 수익 보장을 약정하고 이를 미리 지급받는 방식이다. 연재 이후 발생한 수익이 MG 지급액을 넘었을 경우 플랫폼, 제작사, 작가가 배분해 갖게 된다. 많은 작가가 후차감 MG 계약을 맺는데, 이에 따라 수익이 나더라도 MG만큼의 금액을 차감해야 하거나, 기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 그 손해는 '빚'으로 작가가 떠안게 된다. 많은 작가가 수익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차감된 금액에 눈물 흘릴 수밖에 없고, 수익 배분에 대한 불만에 문제 제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작품의 특정 장면에 대한 지시나 요구를 하는 등 플랫폼이 작가들에게 개입, 간섭하기도 한다. 프로모션(플랫폼 페이지상 배너 홍보 등으로 독자의 작품선택을 유도)에서 제외되는 등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기에 이를 거절하기 어려운데, 그 수정의 결과가 어떻든 그 책임은 온전히 작가 몫이다.5)  원청 대기업과 하청업체, 하청 소속 노동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일이 웹툰/웹소설 플랫폼과 제작사, 작가 사이에서 그대로 재연되는 모습이다.

컷 수 문제도 있다. 독자들의 피드백이나 요구, 플랫폼끼리의 경쟁으로 인해 웹툰작가들이 요구받는 컷 수가 증가해왔다. 플랫폼은 인기 순위를 공개하는 등 경쟁을 붙이며 작가들을 통제하지만, 컷 수에 관해서는 '창작자의 자율에 맡긴다'라며 방치하고 있다. 독자의 폭력적인 댓글로부터 작가가 노출되거나 작품이 불법 사이트에 올라가는 등의 일이 발생해도 플랫폼에서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 플랫폼 내 경쟁과 실적 압박으로 인해 고강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린 작가들에게서 근골격계질환이나 불안, 우울증세가 심해져도 마찬가지다. 통제는 하되 보호는 없는 것이다.


플랫폼 웹툰, 불공정 계약을 멈추는 길

플랫폼 및 제작사, 출판사와의 불공정한 수익 배분 기준의 문제, 과도한 비밀 유지 조항을 넣어 동료 혹은 법률 대리인과도 계약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하는 문제, 작품 내용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하거나 변경하 는 문제, 작가에게 부당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이처럼 플랫폼은 작가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고 있지만, 웹툰/웹소설 작가들은 노동관 계법상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보호는 요원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제작한 웹툰작가를 위한 표준계약서가 생겨 기대해봄직도 하지만, 아직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거나 사용하고 싶어도 플랫폼에서 거절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작년 대선 당시 웹툰작가노동조합은 후보들에게 웹툰작가 등 문화예술노동자 관련 질의를 보냈다. 노동자성의 인정, 노동 3권 보장, 표준계약서 의무화, 공정 보수 체계 정비, 고용보험 특례제도 개선, 산재보험 전면 적용, 예술인 공제회, 예술인 복지법 개정, 창작자 보호하는 저작권법, 플랫폼이나 OTT의 창작자 이익침해 방지와 지적권리 보장 등이 그 내용이다. 플랫폼과의 관계에 있어 작가들은 법적 보호 없이 불안정한 상태로 일하고 있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플랫폼이라는 하나의 장이 생기고 이를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할 때는 수익 구조뿐 아니라 여러 주체의 노동권과 건강권이 보장되도록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다른 자본들과 마찬가지로, 플랫폼 자본은 그 많은 이익을 흡수하면서 노동자에게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로 수많은 웹툰 작가들이 건강을 침해당하며 일하고 있다.

플랫폼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고 작가들의 과도한 노동을 방지하며 부당·불공정 계약을 중단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와 가이드 라인을 만들 때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최우선으로 반영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 역시 시장의 성장만 자랑하지 말고, 불공정 계약을 막으면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로서 인정하고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잘못 꿴 단추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1) 『플랫폼 자본주의』. 닉 서르닉, 2020, 킹콩북.
2)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3)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4) "글로벌 웹툰시장, 2030년까지 연평균 40% 성장 전망…네이버·카카오 기대감↑". 2022.11.16., 더 구루(THE GURU). https://www.theguru.co.kr/mobile/article.html?no=45253
5) <웹툰 작가들의 정신 건강 및 신체 건강과 불안정 노동 수준 실태조사>, 202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5월호에도 실립니다.
#웹툰/웹소설_플랫폼 #웹툰/웹소설_불공정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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