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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상식의 세태에 건강한 상식인으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 81] 김자동 선생은 그의 삶이 곧 메시지였다.

등록 2023.05.10 15:42수정 2023.05.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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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용궁동 재북인사 묘역 아버지 묘비 앞에 선 김자동 회장 부부. 묘비 앞에 남에서 가져간 어머니 사진이 놓여있다. ⓒ 김자동

 
출생부터가 기구했다. 선대가 망명한 이역에서 태어났다. 철이 들 무렵 부모따라 중원 만리를 떠돌았다. 우리말보다 외국말이 통용되는 땅에서 10대를 보내었다. 부모와 자신의 출생을 이역으로 이끈 할아버지는 1922년 그가 태어나기 4년 전 조국독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투사이지만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아버지의 광복운동을 도우며 자란 그는 고난의 시기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임정의 대표 손자'라는 고유한 별명을 들으면서 청년이 된다. 일제가 패망하고 돌아온 조국, 갈라지고 소외당하고 그래서 해방의 기쁨은 사라지고, 다시 친일파가 설치는 세상을 살아야 했다. 

대학 2학년 때 6.25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는 납북, 어머니는 감옥, 자신은 의용대로 끌려갔다. 그의 동년배들은 물론이고 한국현대사에서 좀처럼 유사한 체험자를 찾기 어려운 삶을,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납북 또는 은둔하는 '이상한 나라'의 실제상황을 지켜보고 겪었다. 

그런 처지에서 '임시정부 소년'은 출생의 자부심을 갖고 언론계에 투신했으나 오래 머물 곳이 못되었다. 사업에 투신했으나 적성이 맞지 않았다. 밥벌이(?)로 번역을 하다가 필화를 입고, 방황하고 마침내 선대의 길, 역사의 길을 찾았다. 힘겨웠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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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오른쪽)이 제1회 민족일보 조용수 언론상을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민족일보기념사업회 고문(왼쪽)이 참석해 김자동 회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축하를 했다. ⓒ 임재근

 
독립운동의 맥을 잇고자 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청년·학생들과 해외 사적지를 탐방하고, 회보를 내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올곧은 그의 성정과 사심없이 역사의 길을 걷는 늠염한 모습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고 시대적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때마다 권력과 그 이웃들의 패악질이 많았고 이죽거림도 따랐으나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에게 세속의 명리는 한낱 티끌이고 높고 낮은 권좌는 닭벼슬이었을 뿐이다. 시답지 않은 권위주의보다 진솔한 소통을 택하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아버지·어머니의 뜻을 잇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정신에 스며드는 속물성을 씻어내고자 노력하고 조직의 도덕성을 유지했다. 앉았던 자리에  향기는커녕 구데기 들끓는 추악한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면서 자계의 자세를  찾았고 소년기에 지켜보아온 독립운동가들의 당당한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그는 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학자 못지않는 독립운동연구가였다. 또한 언론인으로 시종하지 않았으나 정론정신은 그가 남긴 많은 글속에 오롯이 남는다. 어느 학자·언론인보다 맥박이 뛰는 절절한 글이다. 

회한도 없지 않았을 터이다. 대한제국의 대신 중 유일한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의 서훈을 보지 못한 일과, 상하이 공동묘역의 유해를 환국하지 못한 일이다. 북녘에 있는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가족과 함께 참배했으나 선대의 여전한 '이산가족'의 아픔은 해결의 길을 찾기 어려운 회한이었다. 


할아버지는 74세의 고령에도 고국에서의 지위를 버리고 망명길을 택하였고, 어머니는 친정의 해외유학의 권유를 뿌리치며 독립운동의 길을 찾았고, 그리고 팔순에 이르러 회고록을 쓰셨다. 본인은 구순에 이르러서까지 친일잔재 청산과 남북화해 통일의 길을 찾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생전의 소망이 있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나의 소원은 "대한의 완전자주 독립이오"라고 외쳤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그것은 '전쟁이 영원히 종식된 평화의 땅, 한반도'이다. 분단 후 나는 머지않아 조국이 통일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벌써 60년의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흘렀다. 나는 이제 막연한 기대보다는 당장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통일보다는 평화를 더 갈망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확고한 체제가 이루어진다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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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 박도

 

김자동 선생의 파란곡절의 생애는 '몰상식의 세태'에도 건강한 상식인으로 살 수 있다는 전형을 보여주었다. 굳이 '비결'이라면 건강한 역사인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2018년에 발행한 <독립정신> 100호에 직접 쓴 글이 말해준다.

우리는 3.1혁명의 거센 물줄기가 4.19혁명과 5월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오늘날 촛불혁명까지 거세게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주권선언이다.(…) 임시정부 환국 이후 역사의 질곡은 뼈아팠다. 분단기 기생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 주류로 자리잡았고, 독재권력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러나 선열들의 땀과 피로 일군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100년, 마침내 물줄기는 제 길을 찾았다. 한반도 대전환기를 맞게 됐다. 

그가 이 글을 쓸 때는 촛불혁명에 이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6.12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도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서 3.1혁명 100년 만에 대한민국이 제 길을 찾았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연구한 어느 학자가 "한국현대사는 역사가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다."라고 지적했듯이, 그가 살아온 세상은 격동의 시대였다. 덧붙여 그는 이역에서 망명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겹격동'의 생애인 셈이다. 상식이 설 자리를 잃고 바른 길, 정도라는 말을 함부로 쓰기 어려웠던 시기에 그는 강직한 품성으로, 고결한 인품으로, 건강한 상식인으로 살았다. 몰상식의 세태에 상식인이 되기도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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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김자동 씨를 대신해 부인 김숙정 씨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김자동 선생은 건강한 상식인으로 선대의 유덕을 자식들에게 전하면서 한 시대를 올곧게 살았다. 곧은 상대 밭의 삼대는 곧게 자란다고 했다.(麻中之達) 그래서 자식들 역시 시대정신에 충실한 역군이 되었다.  

나는 아내 김숙정씨와의 사이에 김진현 김선현 김준현(남) 김미현 3녀 1남을 두었다. 큰 딸(김진현)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노조위원장이다. 1984년 입사해서 10년 이상을 노조상근자로 보냈다. 노조활동의 계기로 만난 맏사위(곽태원)은 전국사무금융노련 위원장이다.

둘째 딸(김선현)은 1987녀 이후 한국과 호주 땅을 떠들썩하게 했던 웨스트팩 은행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둘째는 대학 졸업 후 호주계 웨스트팩 은행에서 근무했다. 1987년 이 은행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은행은 노조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은행이 김선현을 '투사'로 만들었다. 김선현은 위원장을 맡아 6년 동안 민족차별, 남녀차별, 권위주의와 싸웠다. 

셋째인 외아들(김준현)은 1994년 은행 퇴직 후 섬유기계 수출업을 하다 1999년부터 내가 조그마하게 세운 (주)재이스 경영을 맡았다. 한 해 매출 49억 원인 회사를 지난해에 매출 540억 원으로 키웠다. 재이스는 품질과 납기관리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업체다. 막내딸(김미현)은 전업주부다. 

마하트마 간디는 암살당하기 몇 달 전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짧게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 삶이 곧 내 메시지다."라고 적었다. 김자동 선생은 그의 삶이 곧 메시지였다.


주석
4> <민족화해>, 2005년 9~10월호.
5> 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상식인 김자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 김자동 #김자동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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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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