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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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는 우리 얘기는 안 듣고 휴대폰만 본다. 갑자기 우리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모두 '헉' 소리가 튀어나온다. 방 한쪽이 몽땅 화분이다. 벽에 걸린 덩굴은 푸미라, 옆에 공룡발처럼 생긴 식물은 새로 들여온 필로덴드론, 팝콘처럼 잎사귀가 작고 귀여운 것은 오렌지쟈스민…. 이게 식물원인지, 자취방인지. 왠지 친구가 말할 때마다 음이온이 퍼지는 느낌이 든다.
그 밖에도 애견카페를 방불케 하는 반려동물 위주의 인테리어를 한 친구, PC방처럼 RGB 빛이 번쩍번쩍한 게이밍 컴퓨터로 도배한 친구 등 모두 자신의 '비합리적인 소비'를 털어놓기 바쁘다. 이상한 일이다. 그럴수록 우리의 개성이 살아난다. 모두 똑같아 보였던 단칸방이 진정 나만의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틀은 바꿀 수 없지만 내용은 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베짱이까지 될 용기는 없는 개미다. 뉴스에서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저축도 직장도 소용없다 해도 모든 것을 놔 버리기엔 걱정이 많은 개미다. 우리가 정한 방법은 개미굴을 바꾸는 것이다.
여왕개미를 따르고, 그저 일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효율적 인테리어'를 바꿔버리는 것. 개성 있는 개미가 되는 것. 되려 이것이 고여버린 우물을 다시 맑게 할지도 모른다. 왠지 "1인 가구에게 딱"이라는 말은 "네 수준엔 그 정도면 만족하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1인 가구도 고상한 취미가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자.
인테리어를 새로 바꾸고, 나의 밥친구인 <무한도전>을 보는 데 웬일로 유시민 작가가 나온다. "아끼는 게 능사냐"는 박명수의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쓸 수 있으면 쓰는 게 좋다고 봐요. 오늘이 내일을 위한 디딤돌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어딘가에 갇힌 순간 답답함을 느낀다. 사피어-워프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당황했다. 자유롭고 끝없을 줄 알았던 사유가 한순간 '언어'라는 틀에 갇혀버렸다. 이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본인의 세계가 거대한 촬영장임을 깨달았을 때와 같은 충격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틀'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안의 내용물이다. 트루먼의 세상이 바뀐 것은, 세트장을 깨부셨을 때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이상행동'을 했을 때부터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면, 어떤 언어를 쓸지는 내 몫이다.
'방'도 마찬가지다. 인테리어가 공간의 정체성을 정한다. 공부방도 파티룸도 똑같은 원룸이다. 그 안에 문제집이 쌓여있는지, 노래방 기계가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뿐이다. 그렇다면 '자취방'도 나 하기 나름이다. 내 결정에 따라 이곳은 감옥이 될 수도, 둥지가 될 수도 있다. 원룸이라고 마음까지 작을 필요 있겠는가.
과감히 틀을 벗어나 내용물을 채워보자. 원룸에 침대 하나 크게 들어찬들, 벽면 한 쪽을 모두 채우는 빔프로젝트가 있다 한들 큰일 나겠는가. 세트장을 깨부순 트루먼도 있는데. 세상의 모든 '비합리적인' 자취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또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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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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