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에 참가한 이들이 발표 전 '비건'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 공유한 쪽지들. 대량 생산, 한정된 선택권, 삶의 방식, 대량생산, 대체품들과 같은 단어들이 보인다.
최미연
지난 4월 말 독일 쾰른에서 열린 '아시아의 날(Asientag)'이란 포럼에 '한국 시민사회에서의 비거니즘에 대한 동향'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독일에 기반을 둔 아시아계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행사로 필자는 코리아협의회 단체를 대표해 참가했다. 포럼은 기후위기가 어떻게 아시아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책임감을 갖고 그것에 대응할지를 주제로 열렸다.
포럼 발제는 한국과 독일 양국이 어떻게 식문화를 소비하는지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우선 30년을 넘게 거주해온 서울에만 한정해서 보면 24시간 편의점이나 배달 음식에 대한 접근성이 이렇게 높은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베를린은 중앙 기차역 인근에 1, 2군데의 마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는데, 이는 독일 전역에 해당되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지인들에게 여기서는 모든 배달 음식이 '자전거'로 배달된다는 얘기를 덧붙이면 굉장히 놀란다.
코로나를 겪으며 독일 내에도 배달 음식 문화가 지난 몇 년 새에 활발해졌지만 함께 거주하는 플랫메이트만 해도 한 달에 1회 이하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며 본인은 영국과 독일 2년차 거주를 통틀어 코로나 격리 당시에 한 차례 주문했던 것이 유일하다. 물론 배달 음식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으나 친구를 초대해서 요리해먹는 문화가 일반적인 독일에서는 한국처럼 배달 음식 회사가 대중교통 광고판을 점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식문화 소비를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광고 문구로 "당신은 오늘 치킨이 먹고 싶다"가 떠오른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기도 전에 바쁜 현대사회에서 수고로운 선택을 대행해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독일에 거주하며 달라진 점은 바로 이런 '부추김'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전국 각지의 슈퍼마켓에서 허니버터칩이 불티나게 팔려 단종되는 사태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식문화 뿐만 아니라 대체로 모두가 자신만의 고유 소비 취향과 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건 사야만 해'라는 사회 풍조가 한국에 비해 낮아 보인다.
그렇기에 10대부터 편의점에서 많은 끼니를 인스턴트 제품으로 소비했던 세대로서 이곳 독일에서 대부분의 식사를 집에서 요리로 떼우는 생활은 많은 감각을 가져다준다. 장을 볼 때 식재료의 특성에 따라 그리고 날씨와 스스로의 일주일 동선과 일정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의 소비가 간소해진다.
한국의 배달 음식 문화가 활발해진데에는 1인 가구의 증가, 코로나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인들이 먹는 것에 있어 진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날씨와 상황 그리고 특정 주류에 따라 조합해서 먹는 식단들이 모두 있다.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아몬드에만 온갖가지 양념을 발라내고 심지어는 민트초코 치킨이라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제품 출시도 기꺼이 한다. 다소 보수적인 독일의 주 식단(햄, 치즈. 빵, 버터, 감자)에 비하면 더 많은 상상력이 동원된다.
포럼에서 한국의 비거니즘 운동 사례로 든 것들은 채식선택권 헌법 소원, 채식 식당, 도시 농장, 제로 웨이스트샵의 증가였다. 이제는 먹거리에 대한 열의만큼이나 기후 위기 시대에 한정된 자원으로 어떻게 '적절한' 소비를 해나갈 것인지에 상상력이 더 필요한 때다.
포럼에 참석한 이들은 발표를 들은 후 '비건'을 '정치적이다'라고 인상과 소감을 나누었다. 단지 동물성 섭취 지양 뿐 아니라 소비 주체로서 우리가 가진 것들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치를 고민하고자 하는 제안이자 가장 정치적인 행동. 각자에게 '비건'이란 어떤 의미이며 그리고 어떤 변화들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기회를 만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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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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