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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1년, 전국적으로 닥친 인권 위기

[위기의 충남인권조례, 해법은 ⑫] 소수자, 인권조례 희생양 삼는 기성권력이 위기의 주범

등록 2023.05.18 11:04수정 2023.05.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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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발의로 어렵게 제정된 충남 인권 기본조례와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릴레이 기고를 통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이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인권조례가 만들어온 변화와 성과, 한계를 살핀다. 나아가 다양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모아 인권조례가 지자체 행정과 시민의 삶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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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3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당선증을 청년보좌역에게 전달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년 전을 돌아봅니다. 연초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횡행했던 지난 대선 동안 성평등과 인권의 가치는 크게 위협받았습니다. 여성인권과 성평등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희생양 또는 도구로 전락했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칼처럼 휘두르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대선 이후 곧바로 지방선거 정국이 이어졌고,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변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지방선거 이후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를 미루려던 국회를 상대로 서울의 활동가들은 국회 앞에서, 충남의 활동가들은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 당사에서 각각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곡기를 끊어가며 외친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서 투표하겠다'는 절규를 국회와 주류정치는 끝끝내 외면했고, 차별금지와 인권에 대한 갈망이 철저하게 묵살당한 가운데 치러졌던 지방선거는 혐오선동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로부터 1년이 지나 어느덧 윤석열 정부와 각 광역지자체 시·도정 출범 1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제정되지 않았고, 여성은 인구와 가족으로 대체되었으며, 교육과정에서는 성소수자가 삭제되었습니다.

지역인권행정의 후퇴 역시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서울, 대구, 울산, 부산 등의 지역에서는 사회서비스원과 여성 관련 기금 등이 통폐합 또는 축소·삭감되었고, 충남, 대전과 경남 등의 지자체는 인권·성평등전담부처를 폐지·축소하거나 이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경우에는 인권센터가 반(反)인권단체에 수탁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위기의 공범들

이러한 전국적 인권 위기 상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지자체별 인권조례 폐지·개악 시도입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서울과 충남에서 보수기독교세력이 주도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발의안이 도의회에 제출되었고, 특히 충남에서는 인권기본조례 폐지 주민발의안도 추가적으로 제출되었습니다.


전북에서는 졸속 통과된 교육인권조례의 부칙으로 인해 학생인권조례의 실질적 기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조항들이 대거 삭제되었고, 경기 역시 교육감을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 개악의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충남의 경우 2018년에 이미 한 차례 인권조례가 폐지된 전례가 있어 인권 후퇴에 대한 위기감이 더욱 큽니다. 지역사회 성소수자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당시의 인권조례 폐지 정국은 아직까지도 큰 악몽으로 남아 있는데, 인권조례가 폐지되었다는 사실 자체만큼이나 폐지의 과정 역시 큰 충격이긴 매한가지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폐지를 주도했던 당시 자유한국당이 7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며 인권조례가 재제정되긴 하였으나, 거리마다 노골적인 혐오발언이 담긴 현수막이 걸리고, 지역의 주요 거점마다 혐오적 언사가 난무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의 집회가 열리던 당시의 경험은 쉽사리 지우기 힘든 상처가 되었습니다.

2023년 현재 충남의 인권조례 폐지시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18년 인권조례 폐지를 보수 기독교 세력과 혐오정치 세력이 밀어붙였던 것처럼, 지금 역시 혐오정치 세력이 주민발의 제도를 이용해 보수기독교세력에게 외주를 주는 형태로 인권조례 폐지를 밀어붙이는 모양새입니다.

주민발의 제도의 취지인 지역사회의 공론은 사라지고, 교회 조직과 원색적 혐오를 동원하는 힘의 논리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와 인권조례를 희생양 삼아 줄어드는 교세의 반등을 노리는 보수기독교 세력, 도민 인권보장을 위한 자기 역할을 적극적으로 방기하고 있는 김태흠 도정, 혐오정치 세력에게 점령당한 충남도의회가 모두 충남 도민인권 위기의 공범들입니다.

지역사회 공론장의 회복으로 대안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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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혐오반대 캠페인 중인 사루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에 캠페인하고 있는 충남차제연 활동가 사루 ⓒ 이진숙

  
지자체와 도의회의 존재 의의는 도민들의 권리 실현에 있고, 도지사와 도의원들은 도민 인권 보장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선거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승리하느냐와는 무관하게 지켜져야 할 이러한 원칙에도 지금까지 충남에서는 선거 일정에 따라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사라지고 무력화되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도민이 아닌 '우리 편'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오던 기성정치 세력들이 선거를 민의의 장(場)이 아닌 땅따먹기 놀음판으로 만들었고, 도정과 도의회 권력이 도민 권리 보장을 위한 수단이 아닌 선거 승리에 대한 전리품으로 전락한 결과입니다. 이런 정치환경은 인권조례를 비롯한 도민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들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하며, 결과적으로 충남 도민 모두의 존엄을 위태롭게 만듭니다.

이는 단순히 '투표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하기 난망한 문제입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도정과 도의회 권력이 전리품처럼 배분되고, 선거가 끝나면 이런 권력의 사유화(私有化)를 도민들이 견제할 수 없게 만든 기성정치의 시스템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에, 혐오정치 세력이 아닌 다른 한쪽에 투표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최선의 경우라도 위기의 출현을 유예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인권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고, 지역 인권제도의 지속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판을 새로 짜는 대안의 정치를 고민해야 합니다.

대안의 정치는 지역사회의 공론장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어느 정당이 도의회 다수의석을 점유하는지, 누가 도정을 맡게 되는지와는 관계 없이 지역 인권조례는 지속·발전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가령 인권조례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인권조례는 언제든 폐지되거나 개악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혐오정치 세력이 인권조례 폐지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더라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지역사회 내에서 뿌리내리게 된다면 그 이후를 도모할 수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혐오정치 세력에 대한 견제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도민들을 만나 인권과 평등의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흩어져 있는 지역사회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며, 이를 또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 낼 때, 우리는 비로소 권력을 전리품 삼는 기성정치를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사회적 소수자의 정당을 응원해 주세요

그런 대안정치를 지금의 진보정치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의 진보정치는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으며, 확장보다는 고립이 더 익숙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기성정치를 견제하기는커녕 당장의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힘이 미약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인권과 평등을 위한 대안정치의 건설은 해야만 하는 일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입니다.

그것이 당위적으로 옳기 때문만은 아니며, 모두의 존엄한 삶을 위한 싸움은 진보정당 자신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은 노동자의 정당이고, 여성의 정당이며, 성소수자의 정당인 동시의 장애인의 정당입니다.

진보정당 활동가인 저는 성소수자 당사자이며, 진보정당의 정치활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자기 권리 실현을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실존과 직결된 목표이기에 힘에 부칠지언정 결코 멈춰 서지 않습니다. 진보정당의 정치가 갖는 잠재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인권조례 폐지를 막고 도민인권 위기를 돌파하는 것에서부터 대안정치의 첫 삽을 뜨려고 합니다. 응원의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노동당 충남도당 사무처장입니다.
#충남 #인권조례 #인권위기 #대안정치 #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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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인권교육활동가모임 부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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