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이승만 띄우기'에 빠진 박민식 보훈처장에게 꼭 전하고픈 말

[공개 편지] 느닷없는 '이승만 띄우기'는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짓입니다

등록 2023.05.21 20:13수정 2023.05.21 20:13
50
원고료로 응원
a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면식도 없는데 불쑥 달갑지 않을 편지글을 보내드려 송구합니다. 지난 17일 우연히 <한겨레>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하도 당혹스러워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처장님께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아래 직함 생략)을 제대로 '포지셔닝'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처장님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승만과 백선엽, 두 인물에 대해 독재자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부정적 평가에 매몰되지 말고 공적을 재평가하자는 겁니다. 이승만은 독재자지만 한미동맹을 이끈 공이 있고, 백선엽은 친일파지만 6.25 전쟁 때 공산군의 도발을 막아낸 영웅 아니냐고 반문하셨습니다.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납작한 시각으로 눙칠 수 없는 학문입니다. 그래서는 현재의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도 없고 미래를 제대로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모름지기 과거 인물의 행적과 사건의 이면을 살펴 미래 세대에게 교훈을 심어주는 것이 역사의 본령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 인물의 공과 과를 다 보아야 한다는 처장님의 말씀은 백 번 동의합니다. 그러나 공과 과의 '크기'는 비교해야 마땅하며, 나아가 보편적 상식처럼 여겨지는 공조차 그것이 지닌 역사적 맥락과 인과관계를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존재하는 학문이 역사학이고, 곧, 역사학자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이승만을 '제대로' 평가하자? 
 

처장님은 이승만에 대한 공과를 학계에 맡겨서는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 같지 않다며, 국민의 눈높이로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승만이 1965년 하와이에서 사망 후 유해가 국내로 송환됐을 때, 국장이 아니었는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면서, 그것이 진짜 국민의 평가이자 감정이라고 예시하셨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느닷없이 '의문의 1패'를 당한 모양새입니다.

장례 인파 숫자를 공정한 역사적 평가로 퉁치는 처장님의 소신에 솔직히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유튜브 조회 수로 역사적 정당성을 따지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2년 장기 독재의 비뚤어진 유산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김일성과 김정일이 죽었을 때 북한 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 구한말 이승만이 봉건왕조를 타파하고 민주 공화정을 주창한 점을 대단한 업적으로 칭송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공화주의를 내걸고 일제 침략에 맞서 친일파들을 단죄하려다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은 숱합니다. 당장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인 이회영과 형제들, 판사로 임용됐지만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이 떠오릅니다.


만민공동회 사건에 연루되어 잠깐 옥살이한 걸 두고 위대하다고 본다면, 일제의 감옥에서 순국한 이회영과 총살당한 박상진의 생애에 대해선 어떻게 형용하시겠습니까. 국가보훈처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 잘 아실 테지만, 이승만은 건국훈장의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 1호 수훈자입니다. 그러나 이회영과 박상진은 그보다 한참 아래 등급인 '독립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승만을 지금의 시각에서 '민주화 투사'였다고 하셨는데, 제 소견으로는 이회영과 박상진 두 분에 감히 견줄 바는 못 된다는 생각입니다. 굳이 차이라면, 이승만은 해방 후에도 살아남아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두 분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일찍이 순국했다는 점입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일진대, 이승만의 공적은 필연적으로 '과대 포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a

이승만 대통령과 조병옥 내무부 장관. 1951.3.23 ⓒ 연합뉴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도장을 찍게 했다는 점을 사례로 들며, 한미동맹을 현실 정치와 국제 외교에서 큰 공적이라고 상찬한 말씀도 어처구니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이승만은 오로지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미국을 적극 활용했을 뿐입니다. 그걸 '국제정치적 안목'으로 포장한 처장님의 인식은 이후 파생된 숱한 문제점에 대해 외면하려는 행태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합니다.

백 보 양보해도, 처장님이 신줏단지 삼는 한미동맹은 양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산물일 뿐입니다. 모든 국가 간 동맹이 그러하듯, 서로 득 될 게 없으면 깨지는 것이고, 당시의 상황에서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면 다른 한쪽에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게 불문율입니다. 한미동맹 자체를 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7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국가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온 점을 자랑하는 건 남우세스러운 일입니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 느닷없이 참전한 것도, 숱한 미군의 범죄를 손 놓고 지켜봐야 했던 것도, 여전히 작전권이 남의 나라 손에 쥐여 있는 것도, 처장님이 그토록 추어올리는 한미동맹의 '기회비용'입니다.

처장님은 이승만을 두고 '분단의 원흉'이자 '친일파'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처장님을 가르치신 분이 뉘신지는 모르나, 예나 지금이나 이승만을 그렇게 단정하는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에도 김일성과 이승만이 전쟁 후 남북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고 서술돼 있고, 해방 후 반민특위를 해체하는 등 친일 청산을 방해했다는 사실만 전할 뿐입니다.

다만 그 후과가 너무 크다는 의미에서 과장되게 표현했을 수는 있습니다. 해방 후 미군정이 친일 관료들을 중용했고,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이승만이 친일파를 활용해 권력을 장악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노회한 정치가였던 이승만과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가 공생 관계였고, 청산되지 않은 친일 문제는 아직도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친일파의 극적인 회생은 6.25 전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미소 냉전과 극단적인 좌우 대립 속에서 활로를 찾은 그들은 전쟁을 통해 '능력'을 뽐냈고, 이후 분단 체제 아래에서 승승장구해 기득권층으로 편입됩니다. 기실 그들의 '능력'은 일제의 주구로서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하며 쌓은 것입니다. 6.25 전쟁을 '친일파의 해방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일부 개신교단과 극우 세력이 앞장서 이승만의 공적을 추앙하는 건 일견 수긍할 수 있습니다. 그가 미국 남장로교단의 후원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정치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입니다. 나아가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개신교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던 것도 대통령이 된 이승만을 빼놓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선 곤란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명토 박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승만 정권은 불의한 권력이라는 의미입니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전 대통령조차 이승만 정권을 철저히 부정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처장님은 당신이 이끄시는 국가보훈처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를 지향하는 부처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건 국가 통치체제의 기초인 헌법이지, 이승만 개인이 아닙니다. 되레 이승만은 6.25 전쟁 중에 자행한 발췌개헌과 전쟁 직후 장기 집권을 위해 획책한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헌법 정신을 짓밟았습니다.

부디,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지 마십시오 
 
a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1월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모쪼록,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이승만 띄우기'에 매몰되어 정작 헌법 정신을 희화화하는 일을 멈춰주시길 간청합니다. 승격될 '국가보훈부'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받기 위해 정권과 코드를 맞춰 이른바 '역사 전쟁'의 총대를 멘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떠돌고 있습니다. 자칫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장관직을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족 하나 덧붙입니다. 지금 고등학생들이 기억하는 이승만은 이렇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탄핵된 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한 자, 제주 4.3 당시 민간인 학살을 방조하거나 명령한 자,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고 해체한 자, 여순 사건 당시 부역자 색출을 이유로 숱한 민간인을 학살한 자, 6.25 전쟁 중 서울시민에게 안심하라는 거짓말을 하고 피난민이 건너던 한강철교를 폭파한 자, 조봉암 등 숱한 정적들을 제거한 자, 부정 선거를 통해 영구집권을 꾀한 독재자.

이승만에 대한 '포지셔닝'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으니, 부디 처장님이 일일 역사 교사가 되어 아이들의 '편견'을 설득해보시면 어떨는지요. 아니, 그보다 교실에서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제게 이승만의 과를 덮을 만한 공에는 어떤 게 있는지 소상히 들려주십시오. 다른 부처도 아닌 국가보훈처장님께서 설마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양시론을 들먹이시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이승만 띄우기 #한미동맹 #4.19 민주 이념 #국가보훈부
댓글5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다시는 고등어구이 안 먹을랍니다
  2. 2 가수로 데뷔한 2011년 이후... 날 무너뜨린 섭식장애
  3. 3 윤 대통령의 8가지 착각... 그래서 나라 꼴이 이 모양
  4. 4 신동엽-성시경의 '성+인물'이 외면한 네덜란드 성매매 현실
  5. 5 제주서 먹는 흑돼지가 비싼 이유... 이거 알면 화날 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