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모셔진 고 최민석씨 영정사진과 지인들의 메모.
권우성
한 구급대원이 아들이 다쳤다면 병원에 있을 테니 가까운 순천향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다시 길을 물어 병원으로 향했다. 치료 중일 거라는 희망으로 응급실로 들어갔지만 제지당했다. "우리 아들 찾아야 해요" 통곡했다. 다음날인 10월 30일 새벽 3시쯤에는 현장을 지키던 기자들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다른 병원을 가봐야 하나 하던 차. 새벽 3시 20분께, 민석이 번호로 전화가 왔다. 동대문경찰서였다. 아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물어왔다.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검안 의사가 내린 아들의 사망 원인은 압착성 질식사였다. 압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한데도, 경찰은 부검 의사를 물어왔다. "무슨 부검이냐"고 화를 냈다. 민석씨는 코피만 조금 났을 뿐 얼굴 변색 없이 깨끗하게 누워 있었다. 살갗을 만지니 따뜻하기까지 했다. "자는 듯이 얼굴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엄마가 안고 있으면 심장이 다시 뛸 거 같아 떨어질 수가 없었다. 결국 사지가 들려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장례를 치른 후에도 참사 현장을 찾고 또 찾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직접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행 중 생존해 아들의 장례식장을 찾은 친구로부터 그날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민석씨는 그날 친한 형의 생일을 맞아 이태원을 찾았다고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축제 중인 거리를 한 바퀴를 돌고 헤어지는 계획이었다. 엄마는 민석씨가 그날 밤 저녁을 먹었다는 식당에서부터 참사 현장을 며칠에 걸쳐 네 바퀴 돌았다. 골목길 음식점마다 내걸린 CCTV를 볼 때마다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애가 탔다.
사망신고 하지 않은 아들의 금융정보가 털렸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사망신고도 하지 않은 아들의 금융 정보가 열람됐다. 사건 종결 이후 '죄명 : 변사'라고 기입한 수사 결과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엄마는 통지서 곳곳에 수정할 부분을 빨간 펜으로 표시해 직접 경찰에 항의했고, '죄명'이 삭제된 수정본을 다시 받아냈다. 그는 "사망자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없으니 열람해도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민석이는) 사망신고도 안 했는데 (금융 정보를) 열람했다"고 원통해 했다.
마르지 않는 눈물은 시력을 앗아갔다. 장례 후 안경만 서너 번을 갈았다. 짠맛이 어느 순간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혀끝이 갈라져 피가 맺히기 일쑤였다. 심리상담 선생님은 감각기관이 둔화될 수 있다고 했다.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너무 못 자서 아들이 꿈에 찾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어 억지로 잠에 들곤 했다. "병이 올까 봐" 걱정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엄마가 건강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이태원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분향소에 오전 8시에 나가 밤 11시 30분에 돌아오곤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유가족협의회에 들어가 이태원 녹사평역 분향소 설치부터 아이들의 49재, 시청역 시민분향소 설치, 이태원참사 특별법 발의까지 함께 지켜봤다. 최근에는 국민의힘에 특별법 동참을 호소하는 24시간 농성에도 참여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최민석 어머니 김희정씨.
권우성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문자를 보내고 있다.
권우성
좌절하다가도 버틸 수 있는 이유
"내가 살아남아서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그래서 나는 열심히 진실을 알리고 좋은 특별법을 만들도록 더 많은 일을 해야겠구나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만 나면 참석해요. 오늘 아침에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왔어요. 그리고 오후에 손님 두 분 있어 일하고. 밥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 하는 분도 있는데, 밥은 먹고 살겠죠. 밤에는 또 24시간 농성해야 하고, 분향소도 가야하고...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잠은 잘 자요. (참사 이후) 종일 녹사평 분향소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일들, 이제 시작도 안 됐어요. (진상규명) 조사도 제대로 안 됐고 책임자도 그대로 있고요. 특별법으로 (독립적 조사기구에 의한) 조사가 되고 책임자가 내려와야 (피해자들에게) 위로도 되고, 재발방지도 된다고 봐요.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안 된 상태인데... 분향소에 오시는 시민 분들, 촛불행사 때마다 오시는 분들, 피켓 들어주시는 수녀님들... 시민 분들 덕분에 힘이 생겨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좌절하다가도, 응원 한 말씀 때문에 '아 이분들도 안전하려면 우리가 해야겠구나, 지치면 안 되겠구나' 해요. 사람이라서 지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유가족들이) 여러 사람이잖아요. 오늘 민석이 엄마가 힘들면 다음에는 누구 아빠가 하고, 그다음에는 누구 엄마가 하고..."
엄마는 "릴레이로 버티고 버텨서, 힘을 합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스스로 열심히 돕고 최선을 다하면 기적을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엄마가 아들 민석씨에게 전한 메시지를 정리한 내용이다.
[엄마가 아들에게]
"민석아. 너는 지금 하느님 아빠 옆에, 성모님 엄마 옆에. 이 땅에서의 부족한 엄마보다 더 안전하고 훌륭하고 영원하신 분들 옆에서 평안하게 잘 있는 거라고 엄마는 확신해. 마지막 인사는 못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못 한 대신 엄마 꿈에 한 번만 밝고 예쁜 모습으로, 한 번만 꿈에 나와서 엄마가 안아줄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 우리 민석이 열흘 동안 엄마랑 보지 못한 채 헤어졌잖아.
엄마는 민석이 엄마답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어. 엄마가 민석이 만나러 갔을 때 "엄마 잘했어. 역시 엄마가 내 엄마라는 게 자랑스러워! 역시 우리 엄마야" 하도록 엄마가 만나는 그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게. 민석이가 사랑했던 친구들 몫까지 엄마가. 민석이 살아있을 때 친구들을 섬기고 아끼고 챙겨준 거처럼 그 친구들 엄마가 챙길게.
그리고 가끔 엄마 꿈에 나와서 예쁜 민석이 얼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민석이는 엄마한테 올 때도 선물이었어. 엄마는 네가 있어서 행복했어. 그래서 열심히 살았고, 또 민석이 엄마 아들이라 엄마는 정말 행복한 엄마였고, 지금도 행복한 엄마야. 천국에서, 민석이가 있는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도록 엄마가 남은 삶도 민석이 못지않게, 찬란하게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다가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릴게. 그날에는 민석이가 엄마 제일 먼저 마중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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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꿈' 야무지게 말하던 아들..."연기처럼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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