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기회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방수림 소나무숲 '기회송림'
김종성
풋풋한 시골풍경, 소나무 숲이 있는 밀양강 상류
밀양강 상류에 자리한 소담한 간이역 상동역에 내리니 등허리에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이 흡사 자외선 마사지를 받는듯하다. 빽빽하고 촘촘한 볕의 도시 밀양(密陽)의 이름값을 하는 햇살이다. 하지만 이런 햇살 덕에 사과, 배, 딸기 등 과수재배가 잘되기로 유명한 고장이 바로 밀양이다. 벌써 초여름 날씨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나무 그늘이나 정자에서 쉬거나, 늦은 오후가 될수록 시원해서 달릴만하다.
역 앞에 여러 '고동식당'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물 맑은 상류에 많이 사는 다슬기 요리가 다양하다. 고동국, 고동무침, 고동덮밥, 고동수제비, 고동부침개 등 다양하기도 하다. 고동수제비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밀양강 둑길로 나섰다. 금호 제방길이라 불리는 강둑길은 밀양강을 바라보며 자전거 타고 달리는데 안성맞춤이다. 그늘이 있는 벤치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오뉴월엔 길가에 장미꽃을 심어 놓아 예쁜 제방길이 된다.
강물이 깨끗하고 먹거리가 많아서인지 평소에 만나기 힘든 흰목물떼새, 천연기념물인 귀한 원앙들이 보여 반가웠다. 짝짓기 철이 끝났는지 원앙새 수컷은 특유의 화려한 깃털을 모두 털어버려 어색한 모습이다. 마치 연애가 끝나고 결혼한 뒤 후줄근해진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밀양은 경지 면적이 경상남도에서 가장 넓다더니 강가에 드넓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자란 깻잎이 전국의 70%를 넘는단다. 비닐하우스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정말 깻잎들이 튼실하다. 둑길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다가 밀양 깻잎을 키우고 따는 외국인 여성 이주민들을 만났다. 손을 살짝 흔들며 '안녕하세요!' 외치니 같이 '안뇽하세요~' 하며 까무잡잡한 얼굴에 환한 미소로 답한다. 요즘 많이 피어나는 금계국 꽃처럼 친근하고 예쁜 미소였다.
밀양강 제일의 자연명소라면 단연 '기회송림'이라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강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폐쇄됐다는 안내판을 마주했다. 기회송림 위탁 관리를 맡은 업체에서 유원지, 캠핑장을 운영하면서 강물을 오염시켰단다. 다리에 힘이 쭉 빠졌지만 다행히 밀양강 중류에서 '삼문송림'이 나타나 위로를 해주었다.
밀양 사람들은 기회송림을 '긴 늪'으로 불러 흥미롭다. 버스정류장 이름도 '긴 늪'이다. 과거 큰 비가 올 때마다 밀양강이 범람해 기회마을 논밭이 침수되면서 긴 늪이 생길 정도로 황폐해진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피해를 막기 위해 1881년 마을 주민들이 함께 수천 그루의 소나무와 밤나무, 버드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방수림으로 심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