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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이룰 수 없는 그녀의 버킷리스트 '멋진 할머니 되기'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름처럼 단단했던, 김단이씨의 꿈과 바람 그리고 사랑

등록 2023.05.27 18:34수정 2023.05.2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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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경찰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압사당할 거 같다." 공권력이 제대로 대응만 했다면 15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34분 이태원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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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단이씨 어머니가, 단이씨 생전에 적은 '버킷리스트'를 꺼내 보여주고 있다. ⓒ 이주연

 
혼자 여행가기는 해봤지만, 유럽 여행은 못 가봤다. 남동생 용돈 주기는 해봤지만, 엄마·아빠 여행보내주기는 못했다. 버킷리스트 1번으로 적었던 '모아이 석상보기', 5번으로 적었던 '엄마 명품백 사주기'에도 완료∨ 표시를 남기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김단이(1997년생)씨는 '내 이름으로 된 책 내보기, 출판사 관련 일해보기'를 바랐지만 이루지 못했다. 무사히 서른 혹은 마흔을 맞았다면 끝내 해냈을지 모를 바람들이었다.

지난 21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서 만난 엄마(51)·아빠(57)는 "말주변이 없다"며, 대신 단이씨가 적었던 수첩을 꺼내보였다. 2018년에 적고, 2020년에 1차 체크, 2022년에 2차 체크를 마친 단이씨의 버킷리스트였다. 이 목록들에 "단이가 하고 싶던 것들이 잘 적혀있다"고 했다. 총 32개가 빼곡히 적힌 리스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감을 더해갔다. '옷 가게 큰 데에서 일해보기' 옆에는 '힘들어'라는 코멘트를, '적당히 유명한 사람 되기' 옆에는 '안돼도 돼'라는 코멘트를 단이씨 스스로 달았다.

그리고, 엄마의 손 끝은 9번 버킷리스트 '멋진 할머니 되기'에 오래 머물렀다. 

무뚝뚝했던 아빠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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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단이씨의 유년시절 사진. 단이씨 엄마 표현으로는 "부안 시골에 살던" 단이에게, "도시에서나 살 수 있는 옷과 신발을 사다 나른 것"은 모두 이모·삼촌들이었다고 했다. ⓒ 이주연

 
딸, 단이씨가 떠났다. 엄마 나이 만 스물여섯, 아빠 나이 만 서른 둘에 낳아 스물 다섯해 키운 딸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단이씨는 2022년 10월 29일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5남매 중 맏이인 엄마가 낳은 첫째 딸. 첫 조카인 단이씨를 이모 둘과 삼촌 둘은 닳게 예뻐했다고 한다. 엄마 표현으로는 "(전북) 부안 시골에 살던" 단이에게, "도시에서나 살 수 있는 옷과 신발을 사다 나른 것"은 모두 이모·삼촌들이었다. 막내 삼촌은 군대에서 휴가 나올 적마다 단이를 보러 와 목마를 태우고 다녔다고 했다. 단이씨를 보내는 49재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브랜드 옷을 장만해 함께 태워준 것도 큰이모였다. "딸한테 비싼 옷 한 벌 못해준 게 한이 된" 언니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엄마는 휴대폰에 단이씨를 '우리 공주'라 저장해뒀다. 엄마는 '더더더'를 말했다. "예쁜 거 더 많이 사주고, 용돈도 더 많이 주고, 더 많이 안아 주고, 더 사랑한다고 얘기해줄 걸..." 하는 후회다. 

무뚝뚝한 아빠도 표현은 못했지만 딸을 아꼈다. 변산에서 가게를 해 부안에 사는 가족들과는 주말에만 만났다. 짧게 볼 수 있는 딸이 아까웠다. "내내 안고만 댕겼다"고 했다. 단이씨 얘기만 나와도 손수건을 눈에 가져다대던 엄마는 옆에서 "이이는 저보다 단이가 좋다 했어요"라며 슬몃 웃었다. 아빠는 다같이 모여 밥을 먹을 때 수시로 젓가락을 내려놨다고 했다. 아빠만의 사랑법이었다.
 
"생선이 나오면 가시 싹 발라주고, 고기가 있으면 한 점이라도 더 먹으라고 덜 먹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입이 짧은 줄 알아. 내가 먹어봐서 맛있으면 일부러 안 먹었거든. 우리 단이는 뭐든 잘 먹었어요. 육고기도 잘 먹고 바닷고기도 잘 먹고 과일도 잘 먹고. 맛있게 먹는 거 보면 예뻐서 난 안 먹었지요."(아빠) 



딸이 직접 지은 냉장고 속 밥 먹으며 눈물 쏟은 엄마 

가족들의 사랑을 담뿍 받은 단이씨는, 단단한 사람이 됐다. 미래를 그리고, 스스로 결정해 준비했다. 2022년 8월에만 해도 단이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대전에서 보건대를 졸업한 단이씨는 개인병원에서 3년 남짓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쳐 일을 그만두고 알아본 것이 영상편집 일이었다. "학원에 다니려면 생활비가 있어야 한다"며 600만 원 가량을 바짝 모았다. 큰이모가 사는 인천에서 자취를 시작한 단이씨는 8월부터 서울 구로에 있는 영상편집 학원에 다녔다.

"우리한테 부담 안 준다고 돈을 모았나보더라고요. 집에서도 도와줄 수 있는데... 자립심 키워준다고 그리 키웠는데 후회돼요.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으니까요."(엄마)

이미 '어른'이 됐지만 아빠에겐 마냥 아이 같던 딸. 그 딸이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건 한 번 안 하던 안부 전화를 때때로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1년 전부터인가 갑자기 전화가 오더라고요. 처음엔 뭔 일 생겼나 하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근데 '밥 먹었어?', '밥 잘 챙겨드셔' 이러는 거예요. '우리 딸 철 많이 들었네' 했어요, 내색은 안 했지만." (아빠)

"어깨에 이고 다니던" 딸은 어느새 20대 중반을 지나왔지만 아빠는 다 큰 딸과 술 한 잔을 못 나눠봤다고 했다. 그게 사무친다고 했다. '나가서 한 잔 할까' 소리가 차마 입 밖으로 안 나왔다고 했다. 

"아직 어린데... 싶어서 얘기를 못 꺼내고 있었어요. 그때 밖에 기회가 없었는데..."

엄마는 "아이 같던 단이가" 손수 지은 밥을 울면서 먹었다. 
 
"인천 자취집을 정리하는데 냉동고에 단이가 지어놓은 밥이 요만큼씩 하나하나 포장돼있더라고요. 단이가 한 거라서 일부러 가져와서 (단이) 큰이모랑 나눠 먹었어요."


친구의 사랑 "가족같은 친구가 아니라, 친구같던 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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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 합동 분향소에서 만난 김단이씨 어머니(51)가 김단이씨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이주연

 
뭐든 불평불만 없고 '싫다' 한 적 없던 딸.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갔을 정도로 순했던 아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타지로 대학을 가, 품에 없던 아이. 엄마·아빠는 단이씨의 발랄한 면모를 친구들한테 전해들었다고 했다.

"친구들한테는 엄청 재미있게 했나봐요. 나름대로는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십도 있었던 거 같아." (아빠)

단이가 안치돼있던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서 장례를 치렀다. 교통편이 불편한데도 많은 이들이 단이씨의 마지막을 보러 찾아왔다. 그리고 단이씨 친구들은 단이가 얼마나 좋은 친구였는지, 얼마나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 전해줬다고 한다. 

"친구들, 지인들, 선생님들 거의 100여명이 왔어요. 대전에서 하숙할 때 친했던 친구들도 이틀을 꼬박 장례식장에 같이 있었어요. 진짜 그 분들한테, 단이 마지막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엄마)

친구들의 발길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친구들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단이 봉안당에 갔다가 부안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돌아갔다.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을 보내왔다. 지난 3월에는 단이씨 남동생 생일까지 챙겨줬다.

"친구들이 단이 대신 누나 노릇하겠다고 동생 생일에 스마트 워치를 사서 보냈더라고요. 어버이날에는 홍삼 보내주고, 카네이션 보내주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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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슬씨(왼쪽)와 김단이씨(오른쪽) ⓒ 김이슬

 
단이씨와 대학시절 내내 같은 하숙집에서 지냈다는 김이슬(26)씨는 "단이가 우리한테 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단이가 눈을 감는 순간에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가족을 부탁했을 거 같아서,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한 일"이라며 "단이 가족을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챙기게 된다"고 했다. 

"하숙집에 동갑이 여섯명 있었는데, 아침에 눈 떠서 잠드는 순간까지 하루종일 붙어있었어요. 그래서 서로 '우리는 가족같은 친구가 아니라 친구같은 가족이다' 그랬어요. 단이는 특히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친구였어요. 제가 취업하고 대학원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활비가 조금 부족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 때 단이가 자기 통장에 있던 돈의 절반 이상을 보내주면서 '이제 네가 나보다 갖고 있는 돈이 더 많으니까, 밥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했어요. 친구들한테도 '보고싶다, 사랑한다' 이런 표현 정말 많이 해주고요. 각자 목표에 따라 준비하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이었어요. 주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마음으로 품어주는, 그런 친구였어요. 

단이가 가고, '하숙집 친구', '과 친구' 다 모여서 단톡방을 만들었어요. 원래는 서로 '단이 친구'로 이름만 알았었는데 다 친구가 됐죠. 저희끼리는 '남은 친구들 외롭지 말라고 단이가 자기 대신 필요한 친구들 주고 갔다'고 했어요."


단이씨를 보내는데 쓴 영정사진도 이슬씨가 찍어준 사진이라고 했다. 그는 "고작 열달 후에 단이가 세상에서 없어지고 그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울음을 삼켰다.

"2022년 새해가 될 때, 저희 집에 다 모였어요. 케이크에 단이가 '가장 행복할 스물여섯에게'라고 남기자고 해서, 그렇게 케이크도 맞추고 각자 소원도 말했어요. 단이는 '새해에도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소박하게 소원을 빌었어요. 서로 예쁜 사진도 하나씩 남겨주었는데, 그날 찍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됐네요... 시간이 흐른다고 잔잔해지는 게 아니라 고통이 깊어져요. 더 그립고 더 보고 싶어요. 단이 말투, 행동을 까먹을까 봐 의식적으로 더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이슬씨는 "단이가 이 모습을 보면 너무 슬퍼할까봐 덜 울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단이야,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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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는 김단이씨를 포함해, 전북지역 희생자 9명의 영정이 올려져 있다. ⓒ 이주연

 
이슬씨는 단이씨 엄마에게도 "단이는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너무 속상해했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곱씹으며 엄마도 스스로를 다잡았다. "걱정 끼치지 말아야지"싶어, 엄마는 단이씨 사고 나고 일주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하다 조금의 여유만 생겨도 울컥했다. 엄마는 "식품회사에서 일해, 일하는 동안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다른 사람한테 우는 걸 감출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아빠는 "울화가 치민다는 게 어떤 건지", 단이가 가고 난 후 알았다고 했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해서, 이태원에 가야 할 인력들이 거기 가 있던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이태원 인력 통제, 차량 통제 다 했잖아요. 근데 왜 지난해 10월 29일에만 안 했냐 이거죠." (아빠)

단이씨에게 못해준 것만 자꾸 떠오르는 엄마는 "부모로서 조금이라도 뭘 해줬다는 기분이 들어" 매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 합동 분향소를 찾는다. 엄마와 아빠는 일요일마다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분향소를 지킨다.

"(참사 이후) 막 엉망이 된 그런 기분이거든요. 삶이 완전 틀어져버렸잖아요. 그래도 여기 왔다 가면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안정돼요. 뭐 누구는 보상 받기 위해 이러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요. 나중에 우리 단이 만났을 때 안 미안하려고. 할 수 있는만큼은 (유가족 활동에) 동참해서 단이에게 창피하지 않으려고요. 시간이 지나면 단이를 만날 거니까요." (아빠)

인터뷰 내내 "말을 잘 못한다"며 손사래 치던 엄마도 이 말만큼은 힘주어 말했다. 

"저는 주변사람들한테도 제 얘기를 잘 안 해요. 근데 세월이 흘러도 우리 딸에 대해 왜곡된 건 없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기록으로 남기려고 해요. 이런 게 쌓여야, 우리 애들 어떻게 갔는지도 정확히 알 수 있고, 그래야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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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광장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 합동분향소. 그 옆에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 시민 분향소가 차려졌다. ⓒ 이주연

 
단이씨를 다시 만날 어느 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엄마와 아빠는 하루하루를 살아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단이씨가 적은 글귀를 보여줬다.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자', '긍정적으로 살고 싶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항상 웃고 지내며 솔직하게',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소중하게, 무시하지 말고 깔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곧 최선의 존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라.'

또박 또박 적은 삶의 다짐들이었다. 이슬씨는 단이씨가 그렇게 "사랑으로 살았다"고 전했다. 

"우리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위로해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친구 단이야. 너로 인해서 우린 너무 행복했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어. 그동안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줘서 고마워. 너랑 함께 했던 추억이 많이 떠오르는데 네가 없어서 너무 허전하고 슬프다. 다시 만나면 못다한 이야기 다 하자. 우린 네가 주던 사랑 기억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게 항상 지켜봐줘. 너를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잊지 않을게, 사랑해." (단이 친구, 김세경·김송지·김이슬·방하은·신선희·심예진·서윤지·지혜원·최진아가 함께 작성한 메시지) 

엄마·아빠도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겼다. 

"우리 딸 어디에 있든 엄마가 찾아갈게. 잘 지내고 있어. 씩씩하고 예쁘게 지내주어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엄마)

"사랑스러운 우리 딸,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이 순간이 거짓말 같기만 하구나.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조금 더 배워보겠다고 상경한 게 엊그제인데...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세상 구경도 못하고, 이렇게 가다니 미안하고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보고 싶다, 보고 싶어. 훗날 아빠가 널 만나러 갈게." (아빠)
#김단이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주 합동 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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