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Pixabay
"아무 것도 몰랐다"는 피해자
모든 원흉은 휴대폰이었다. 당초 책임지고 박씨 자금을 관리해주겠다던 김씨는 '투자의 준비물' 격으로 신분증 사본과 그의 명의로 된 휴대폰을 요구했다. 어디선가 스마트폰 공기계를 마련해 온 것도 김씨였다. 박씨는 의심 없이 김씨가 마련해 온 휴대폰을 개통하겠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작성했다.
박씨 명의의 신분증과 스마트폰. 단 두 개로, 김씨는 높게 세워져 있던 모든 금융 절차의 허들을 가볍게 통과했다. 이후 김씨는 스마트폰 비대면 본인인증을 악용, 박씨 명의로 NH투자증권의 계좌를 개설해 신용융자를 받아 투자를 감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계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김씨는 사건이 터진 뒤 인터넷은행의 '내 명의 계좌 찾기 서비스'를 통해 사기 당한 계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소연이가 내 돈을 어떻게 투자하는지 몰랐어요. 빚을 지고 투자를 하는진 더더욱 몰랐죠. 카카오뱅크를 통해 내 계좌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조회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 ' ○○종합매매'라는 게 나왔어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어느 증권사의 상품인지 알게됐죠."
기자에게 김씨로부터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순간에도, 박씨는 내내 김씨의 이름을 불렀다. 딸의 오랜 친구였던 김씨는 박씨에게도 딸 같은 존재였다. 박씨가 투자를 결정한 그날도 박씨는 김씨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소연이는 호안(주가 조작 의혹의 핵심인물로 지목된 라덕연이 대표로 있던 미등록 투자자문업체) 직원이었어요. 딸한테 몇 번이나 투자를 권유했더라고요. 투자를 하면 매달 최소 10% 이상 수익이 난다고요. 처음엔 나도 의심했죠. 그런데 내 딸이 권유하니까. 딸은 외국에 살기도 하고 해서 내가 대신 투자한 거예요"
'높은 수익률'은 박씨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놨다. 투자를 시작한 후 거짓말처럼 매일 잔고가 불어났다. 무럭무럭 자라나던 돈은 3개월이 흐를 무렵 두 배가 됐다. 수익금 1억을 정산하기로 결정했다. 김씨에게 특정 계좌에 5000만원을 송금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알고 보니 라덕연 일당이 보유하고 있던 콘텐츠 회사였다. 그렇게 박씨 계좌엔 1억5000만 원이라는 금액이 찍혔다.
하지만 두 달 뒤 모든 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평소 믿음직한 지인에게 본인 명의 휴대폰을 개통해준 대가는 참혹했다. 박씨의 노후는 길을 잃었다. 알뜰살뜰 모아뒀던 노후자금은 하루 아침에 날아갔고, 박씨는 늘그막에 1억 7600만원의 빚까지 떠안게 됐다. 얼마 전엔 4월 한 달 신용융자를 사용한 이자를 내라며 증권사에서 보낸 250만원짜리 청구서까지 받아들었다.
"난 돈이 많아서 투자한 게 아니에요. 당연히 주가조작이라는 걸 알고 한 것도 아니고요.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기사를 보고나서야 알았어요. 그저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요. 이제 난 어떡하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70대 주부는 어쩌다 라덕연에 휴대폰을 넘겼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