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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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소비자운동에 몸담아 온 저는 보험가입 권유와 신용카드 발급 권유를 매정(?)하게 잘 거절하는 편입니다. 더러는 이런 소신에 찬 거절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진 선후배들도 있습니다. 이런 제가 최근에 지인의 부탁으로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것 저것 사업을 하다 잘 안 되어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서 보험영업을 시작했다는데, 자동차 보험을 바꿔달라는 요청은 거절했습니다만, 신용카드 하나 만들어서 6개월만 써달라는 부탁까지 거절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제일 싫어하는 S사의 신용카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신용카드 없이 산 지 2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금융 소비자 교육을 하면서 신용카드를 모두 없애고 체크카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의 진짜 정체는 '부채카드'라는 걸 이야기해주면서 나부터 매달 빚 지면서 사는 삶을 청산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신용(부채)카드에 길들여진 삶을 청산하는 데에 1년쯤 걸렸습니다. 신용카드를 없애려고 마음먹고 보니 통장에 잔고가 없어서 즉시 신용카드 없이 사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매달 카드사에서 돈을 빌리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매달 조금씩 지출을 줄이면서 1년쯤 후에야 체크카드만으로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아무튼 저는 필요치 않은 S사 신용카드를 발급 받았습니다. 카드 발급을 권유한 제 지인은 한 달에 10만원씩 최소 6개월만 유지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자동차 주유할 때만 사용하시면 10만원은 될 겁니다."
"연 회비는 제가 내 드릴께요"
어려운 사정을 뻔히 알면서 연회비 부담을 지울 수 없어서 연회비는 제가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6개월만 쓰고 잘라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막상 카드를 받고보니 깜짝 놀라고 기막히는 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연 회비 2만원, 이용한도 1200만원?
첫 번째는 연회비가 너무 비쌌습니다. 카드사용 등록을 하고나면 첫 달에 청구되는 1년 연회비가 2만원이었습니다. 저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던 시절에도 연회비 1만원이 넘는 카드는 써 본 일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연회비가 2만원이나 되었기 때문에 신용카드 발급을 권유했던 지인이 연회비를 내 주겠다고 했던 것이지요.
두 번째는 이용한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발급되어 온 신용카드 이용한도는 무려 1200만원이었습니다. 일시불 한도 1200만원, 할부한도 1200만원, 단기 카드대출 한도는 480만원이었습니다. 뭣 때문에 제 지갑 속에 1200만원짜리 카드를 들고다녀야 할까요?
이용한도가 1200만원이어도 안 쓰면 그만 아니냐고 하실 분도 있을텐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한도가 1200만원으로 되어 있으면 지출이 늘어나게 마련이구요. 그 보다 더 위험한 것은 도난·분실 등으로 인한 신용카드 부정 사용 사고가 일어 날 경우 피해 금액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신용카드 도난·분실 사고 때, 피해를 줄이려면 이용한도가 낮을 수록 좋겠지요. 저는 스마트폰으로 S 카드사 앱을 다운 받아서 즉시 이용한도를 낮추고 해외사용을 막아버렸습니다.